동성혼 합법 국가 대만에는 진보의 숨은 공신 녹색당이 있다

[녹색 시대가 온다] ⑤ 왕얜한(王彥涵) 전 대만 녹색당 대표 인터뷰  

2023년 6월 8일, 전 세계 녹색 정치 활동가들이 모이는 글로벌그린즈(세계녹색당) 제5차 총회가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열린다. 각 대륙의 녹색당 전·현직 의원들과 청년 녹색 정치인들 약 450명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세계녹색당과 <프레시안>은 글로벌그린스 총회에 참석하는 각 국가 별 녹색당의 역사, 현황, 주요 정책, 주요 정치인 및 활동가 등을 소개하고, 그들과의 인터뷰를 한국 독자들께 전한다. 환경, 민주주의, 평화, 다양성 등 '녹색 가치'에 동의하는 분들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편집자 주.)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국가가 있다. 바로 대만이다. 대만 입법원(국회)은 2019년 5월 동성결혼을 법제화하는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4년 후 지난 5월, 동성 부부가 아이를 공동 입양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률 개정안까지 입법원을 통과했다.

동성결혼 법제화 운동에 함께 했던 대만 녹색당은 독신 또는 이성 부부만 가능했던 기존의 입양권이 동성부부에게 확대된 것을 기뻐했다. 그동안 녹색당은 동성 커플의 입양권, 대리모 제도, 동성애를 반대하는 학교 내 보수 종교 교육 필수 금지 및 성평등 교육 실시 등을 요구하며 젠더 정치 이슈에 집중해 왔다.

창당 이래 대만 녹색당의 모든 대표가 반핵 운동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녹색당의 주요 활동가들은 대만의 거의 모든 환경 캠페인의 최전선에서 활동해 온 사람들이다. 또한 대만 녹색당은 2010년 성소수자 후보를 공천한 최초의 정당이었으며, 일찍이 '평등한 결혼권'(혼인평등)을 옹호해 온 정당이다. 지금도 이들은 △말기 암 환자의 안락사 권리 △의료용 마리화나 합법화 등 논쟁적인 의제를 대만 사회에 던지고 있다.

▲2023년 5월 동성 부부도 이성 부부와 마찬가지로 혈연관계가 아닌 아이를 입양할 수 있게 된 법안이 통과된 것에 환영 메시지를 전하는 대만 녹색당 ⓒ대만 녹색당
▲의료용 마리화나 합법화를 지지하는 인권 변호사이자, 팟캐스터인 리징치(李菁琪, Zoe Lee) 대만 녹색당 당원. 그는 대만 녹색당의 공동 대표이자 2020년 대만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로 총선에 나섰다. 2023년 6월 인천 송도에서 열리는 글로벌그린즈 총회 둘째 날, 6월 9일 금요일 오후 5시 "전 지구적인 위기와 분쟁"이란 주제로 열리는 본회의 스피커로 참여한다. ⓒ대만 녹색당

대만 녹색당(台灣綠黨, Green Party Taiwan)은 아시아태평양 녹색당 연합과 글로벌그린즈 모두에서 매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대만 내 가장 국제적인 정당이라 평할 수 있다. 1970년대 말 유럽에서 '환경운동'이 '녹색정치 운동'으로 전환되었던 것처럼, 아시아의 일부 국가들에서도 비슷한 과정이 있었다. 대만 녹색당은 대만 민주화 과정에서 중요한 시기였던 1995~1996년, 양안(대만과 중국) 위기 당시인 1996년 1월 25일에 설립됐다.

당시 양대 정당 중 하나인 민진당(민주진보당)은 기존 정치 구조와 타협하고 전략을 바꿨다. 진보진영 내 주류정당인 민진당에 대한 신뢰를 잃은 것이 녹색당 창당의 주요 동기가 됐다. 1990년대 환경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민진당이 집권당인 국민당과 점점 더 가까워지고, 지역적 이익을 우선시하고 있다고 느꼈다. 진보정당이었던 민진당이 제4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국민당 예산안을 막지 못한 것은 주류정당에 대한 환멸을 더욱 키웠다.

환경 문제와 더불어 기존 대만 사회에서 문제시되어 온 △사회 복지 및 노동자들의 권리 약화 △유교 및 가부장제로 인한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 △보수화되는 정치 등을 바꾸고자 하는 사회적 요구가 커졌다. 이런 사회적 열망들이 모여 녹색당이 창당되었으며, 창당 시 환경단체, 사회복지 단체, 여성 단체 등 대만 내 다양한 사회운동 그룹이 함께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창당 이후 대만 녹색당은 1998년 처음 지방선거와 총선에 참여했다. 하지만 민진당과 국민당 양대 정당이 의회를 장악하는 상황, 5% 저지 조항은 소수정당인 녹색당의 국회 및 지역의회 진출을 어렵게 하는 요소 중의 하나였다. 그 악조건을 뚫고, 대만 녹색당은 2014년 11월 열린 지방선거에서 최초로 2명의 지역구 시의원(타오위안시)과 현의원(신주현)을 배출했다. 창당 18년 만에 달성한 쾌거였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각각 10인, 6인 선거구에서 녹색당 소속으로 당선된 왕하위(王浩宇)와 저우장지에(周江杰). 저우장지에는 2017년 7월 사임하고 2018년 민진당으로 입당했다. 왕하위는 2018년 녹색당으로 재선에 성공했지만, 2020년에 탈당하여 민진당에 입당했다. ⓒ대만 녹색당
▲2014년 지방선거에서 각각 10인, 6인 선거구에서 녹색당 소속으로 당선된 왕하위(王浩宇)와 저우장지에(周江杰). 저우장지에는 2017년 7월 사임하고 2018년 민진당으로 입당했다. 왕하위는 2018년 녹색당으로 재선에 성공했지만, 2020년에 탈당하여 민진당에 입당했다. ⓒ대만 녹색당

이어지는 2018년 11월 지방선거에서 녹색당은 또다시 3명의 지역구 의원을 배출했고, 그중 신주시의 리우총시앤(劉崇顯)은 2022년 재선에도 성공했다. 리우총시앤 의원은 2014년 해바라기 운동(국민당의 '양안서비스무역협정(CSSTA)' 비준안 날치기 통과에 항의해 일어난 학생시민운동. 당시 3월 18일부터 약 한 달간 의회를 점거했다. 필자주)을 통해 정계에 진출했고, 녹색당에 가입해 처음 출마한 선거에서 당선됐다.

대만 녹색당은 당시 해바라기 운동 동안 현장에서 지지와 지원을 제공한 최초의 정당 중 하나였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대만 녹색당이 처음으로 시의원을 배출할 수 있었던 것도 해바라기 운동을 통해 보여진 진보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이 녹색당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해바라기 운동 세력들을 중심으로 2015년 1월에 창당한 시대역량(時代力量)은 2016년 총선에서 5명의 초선의원(지역구 3명, 비례대표 2명)을 원내로 진출시켰다. 필자주.)

2022년 <대만 녹색당(Taiwan’s Green Parties)>이란 책을 발간한 런던 소호대학 다피드 펠(Dafydd Fell) 교수는 그의 책에서 "2014년 해바라기 운동의 여파로 군소 정당이 지방 의회와 국회에 제한적으로 진출했지만, 운동의 실질적 이익을 얻은 것은 민진당이었다"고 언급했다.

대신 그는 군소 정당 정치인이 당선된 곳에서 해당 정치인이 활약하는 활동은 훨씬 더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는 것에 주목했다. 예를 들어 영국 의회의 유일한 녹색당 하원의원이었던 캐롤라인 루카스(Caroline Lucas)도 재직 동안 언론의 높은 관심을 받았고, 이에 의원과 당에 대한 호감도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펠 교수는 대만에서도 마찬가지로 2018년 11월 지방선거 결과 전체 900명이 넘는 시의원과 현의원 중 당선된 3명의 대만 녹색당 지방의원에 대한 언론의 관심도가 매우 높았으며, 그중 한 명인 왕하위 의원은 2019년 대만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의원이었다고 평가했다. 한 명의 지역정치인이 절실하다는 사실은 한국 녹색당에게 주는 메세지도 크다.

▲2022년 11월 대만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신주시의 리우총시안(劉崇顯) 의원. 12인 선거구에서 5.08%를 득표하며 당선됐다. 현재 유일한 녹색당 시의원이다. ⓒ리우총시안 의원 페이스북

6월 8일 인천 송도에서 열리는 글로벌그린즈에는 아시아태평양 여성 네트워크의 대만 녹색당 대표이자 2018년 대만 녹색당 공동대표를 역임했던 왕얜한(王彥涵) 전 대표도 참가한다. 그는 2010년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제2차 아시아태평양 연합 총회에 자원봉사자로 참가한 이후 녹색당에 가입했다. 2018년 11월 지방선거에도 출마한 경험이 있다.

공동대표시절 왕얜한은 "성평등 실무그룹 운영지침"을 마련해 당내 성평등한 구조와 문화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가 글로벌그린즈 헌장에 기반해 작성한 초안이 수정 과정을 거쳐 당내 승인을 받고 시행됐다. 지침은 당내 형식적 평등 조치(성별 할당제, 공동 대표/공동 지도자 제도 등)와 실질적 평등 조치(성소수자 후보 지원, 사내외 규정에 따른 성희롱 불만 적극 처리 등)를 통해 당내 성평등을 실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총회에 참석하는 왕얜한 대만 녹색당 전 대표와 미리 만나 대만 녹색당이 현재 가장 주력하고 있는 의제, 일상을 바꾸는 대만 녹색당의 녹색 정책에 대해 들어보고자 한다.

▲2022년 12월 대만 타이베이시의 중앙연구원에서 "운동정당은 선거 패배를 통해 무엇을 배울까"라는 주제로 열린 컨퍼런스에서 발언하는 대만 녹색당 왕얜한(王彥涵) 전 대표. 이날 런던 소호대학 다피드 펠(Dafydd Fell) 교수가 <대만 녹색당(Taiwan’s Green Parties)> 책 내용을 중심으로 발표했다. ⓒ왕얜한 본인 제공

필자 : 녹색당에 언제 입당하셨고 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왕얜한 : 저는 2013년 말에 대만 녹색당에 입당했습니다. 대학 재학 중이던 2010년에 타이베이에서 열린 아시아 태평양 녹색당 연합 총회에서 대만 녹색당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저는 당시 대만의 양대 정당에 실망하고 있었는데, 명확한 핵심 가치를 가진 녹색당을 발견해 매우 기뻤습니다.

2010년 총회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동안, 저는 녹색당이 여러 나라에 존재하고, 모두 평등의 원칙에 따라 환경과 사회 정의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당시 대만 녹색당의 지도자들은 사회운동에 대한 폭넓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이러한 신념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총회가 끝난 후에 저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 학업에 집중했는데, 2013년 대만 녹색당 당원들로부터 국제 문제 프로젝트의 사무국장으로 일해 달라는 제안을 받고 정식으로 입당했습니다. 당시 저의 주된 동기는 글로벌그린즈 업무에 참여하면서 대만 녹색당을 지원하는 것이었습니다.

필자 : 녹색당이 최근 대만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이슈는 무엇인가요?

왕얜한 : 먼저는 성평등 의제입니다. 남성과 여성 모두 비경제적 사회 활동(예: 육아 및 가사 노동)에 완전히 참여할 권리와 책임이 있어야 합니다. 또 출산과 육아에 대한 권리를 포함해서 생물학적 성별과 성적 지향으로 어떤 차별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누구도 이러한 권리를 박탈당해서는 안 됩니다.

천연자원을 보존하고, '균형'을 이루면서 에너지 전환을 이루는 일 또한 매우 필수적입니다. 예를 들어, 천연가스를 저장하고 운반하고 보관하는 스테이션과 같이 과도기적인 에너지 인프라를 건설할 때 개발을 최소화하고 연안 생태계에 대한 잠재적 피해를 완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중국과 대만 사이의 양안 문제는 녹색당에게도 중요한 의제인데요, 녹색당 안에서도 굉장히 다양한 의견들이 있습니다. 주요 정치인들의 발언을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필자 : 대만의 민주화, 민주주의의 발전과 관련해 녹색당은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나요?

왕얜한 : 대만 녹색당은 사회운동을 위한 정치적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어요. 당원 중에는 다양한 시민단체의 간부들이 포함되어 있고요. 녹색당은 설립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창의적인 전략으로 선거 캠페인을 운영하고 있고, 대만의 정치 환경을 개선하는 새로운 정책 제안들도 내놓고 있습니다.

또한 녹색당은 특히 대만이 중국과의 관계에서 외교적 도전에 직면했을 때 대만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저희 당은 대만의 국제적 참여를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차원의 시민 외교를 개방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대만의 많은 정당이 추구하는 정치의 주요 목표는 돈과 권력이에요. 우리 녹색당은 선거와 정치활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면서 사회적 가치를 옹호하고, 환경과 사회 정의를 중시하며, 국제적인 정당이라는 것을 계속 입증하고 있어요. 대만에서 녹색당의 존재감은 진짜입니다. 우리의 비전은 '더 나은 미래'이고, 사실 정치는 대만 녹색당의 '수단'일 뿐입니다.

필자 : 일상생활에 직접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녹색당 정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왕얜한 : 참여와 평등, 포용적인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대만 녹색당은 어떤 사안에 관해 토론하고, 합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는 참여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만약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는 투표로 대체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고요. 이러한 전제 덕분에 다른 조직에 비해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내부 토론 방식이 만들어졌습니다. 의사 결정에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 있지만, 개인이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도록 해서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포용적인 문화를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어요.

제가 2010년 글로벌그린즈와 대륙별 녹색당 활동에 입문한 이후로 지금까지 아시아 태평양 녹색당 연합 총회, 세계청년녹색당 총회, 세계녹색당총회, 대만 녹색당에서 경험한 다양한 회의 형식과 투표 방식은 기존 전당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방식입니다. 이것은 참여 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핵심 가치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이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

필자 : 대만 녹색당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특히 관심을 갖고 있는 이슈는 무엇이고, 글로벌그린즈와 아태 녹색당 연합이 협력해야 할 이슈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왕얜한 : 인권 범주에는 △국가 폭력 △교육 및 정치 영역에서 여성의 권리 △차별로부터의 자유와 같은 주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후변화와 관련해, 홍수 등 기후로 인한 재난과 에너지 전환 문제도 특히 관심이 있는 주제입니다.

글로벌그린즈와 아태녹색당연합은 글로벌 녹색당 헌장에 명시된 모든 원칙과 정치적 행동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앞에서 얘기한 이슈들을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서로 업데이트하고, 각자의 필요에 따라 상호 지원하는 것이 정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필자 : 대만 녹색당이 갖고 있는 꿈은 무엇인가요?

왕얜한 : 단기적으로는 2024년 총선에서 대만 녹색당이 5%의 득표율을 달성해 비례대표 국회의원 2석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정당 보조금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중장기적으로는 대만 녹색당이 지방의회와 입법원에서 중요한 존재가 되어서 사회 정의와 환경 정의를 증진하는 법안과 결의안을 만들고 이를 통과시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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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어진

한국과 독일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현재 프랑스 파리에서 정치/사회 부문 기고, 번역, 리서치, 팟캐스트 제작, 라디오 방송 리포팅을 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삶'이란 키워드로 독일에 사는 한국 녹색당원들과 만든 <움벨트>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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