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국가의 적?" 30년 여당 독주 뚫는 르완다의 '녹색' 대선 주자

[녹색 시대가 온다] ④ 프랑크 하비네자 르완다 민주녹색당 대표 인터뷰

2023년 6월 8일, 전 세계 녹색 정치 활동가들이 모이는 글로벌그린즈(세계녹색당) 제5차 총회가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열린다. 각 대륙의 녹색당 전·현직 의원들과 청년 녹색 정치인들 약 450명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세계녹색당과 <프레시안>은 글로벌그린스 총회에 참석하는 각 국가 별 녹색당의 역사, 현황, 주요 정책, 주요 정치인 및 활동가 등을 소개하고, 그들과의 인터뷰를 한국 독자들께 전한다. 환경, 민주주의, 평화, 다양성 등 '녹색 가치'에 동의하는 분들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 편집자 주

'99%의 벽'에도 멈추지 않는 르완다의 녹색 달리기

지난 5월, 르완다 민주녹색당(Democratic Green Party of Rwanda) 대표이자 현직 의원으로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프랑크 하비네자(Frank Habineza)가 2024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2017년에 이은 두 번째 대선 출마이자 지난 대선 당시 투표율 98%의 선거에서 99%에 육박하는 득표를 기록한 3선 대통령 폴 카가메(Paul Kagame)와의 재대결이다.

당시 하비네자 대표는 0.5%를 득표하며 무소속 후보보다도 낮은 3위로 선거를 마쳤다. 하지만 장거리 달리기를 좋아한다는 하비네자 대표는 멈추지 않았다. 이어지는 2018년 총선에서는 자신을 포함한 두 명의 당 정치인과 함께 원내에 진출했다. 민주녹색당의 원내 진출은 창당 이래 처음, 멈추지 않고 하비네자는 내년 대선에 다시 출사표를 던졌다.

▲2018년 전당대회에서 민주녹색당 당원들이 의결하는 모습 ⓒ르완다 민주녹색당

민주녹색당의 이름이 실제 투표용지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르완다에서 정부여당에 반대하거나 대안을 제시하는 야당의 활동은 쉽지 않다. 29년 전, 100일여 동안 80만 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간 제노사이드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한 르완다에서 자유로운 주장과 제노사이드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분열·선동 사이의 경계는 때때로 모호해지곤 한다.

2009년 하비네자와 동료들이 민주녹색당을 창당했을 때, 당원들은 불특정 다수로부터의 따돌림과 협박, 폭력에 시달렸다. 어느 날 아침, 부대표가 사망한 채 발견되었을 때, 하비네자 대표는 스웨덴으로 망명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70% 공약 실천, 공간 창출의 정치학

하비네자 대표는 2012년 르완다로 돌아왔고, 2013년 민주녹색당은 마침내 공식 등록되었다. 민주녹색당은 그 이름처럼 민주 국가와 녹색 국가 실현을 동시에 추구한다. 정부여당 르완다애국전선(Rwandan Patriotic Front)이 국민 통합과 화합, 그리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강조하며 높은 경제 성장을 이끌고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르완다의 정치 토양에서 민주녹색당의 활동은 곧 야당과 생태 정당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의 창출'을 의미한다.

▲프랑크 하비네자 르완다 민주녹색당 대표 ⓒ프랑크 하비네자(본인 제공)

민주녹색당은 사람들의 삶과 가까운 정책들에 집중했다. 지난 총선 직전 당에서 발표한 주요 공약에는 기후변화 입법 추진, 청정 산업 지원, 헌법재판소 설치, 정치범 특별 재심 같은 공약도 있었지만, 빗물 수집과 활용을 위한 시설 설치 의무화, 최저임금 도입, 국가의 지역별 작물 지정 과정에 대한 농민 참여 보장처럼 생활 밀착형 공약도 많이 포함되었다. 최근 민주녹색당은 총선 공약의 70%를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르완다 민주녹색당의 이야기엔 다른 녹색당이 앞세우는 녹색 전환이나 기후위기가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민주주의, 인권, 보건, 사회보장 같은 주제가 더 많이 언급된다. 사람과 당의 생존처럼 더 '시급한' 과제를 고려한 결과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사회와 환경, 민주주의와 환경보호를 특별히 구별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더 많이 받았다. 세계 어디보다도 먼저 기후위기가 삶의 일부가 된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환경운동은 더 나은 분배, 인권, 민주주의와 같은 사회정의 운동과 같은 의미가 되었다.

필자가 르완다에서 국제개발협력 활동을 하며 만난 농민들도 늘 기후변화에 대해 말했다. 점점 더 예측할 수 없는 계절, 극심해지는 폭우와 가뭄부터 주거가 불안해지고 생필품 가격이 오르고 가난해지는 문제까지, 이미 이들은 자신의 일상을 기후변화와 연결 짓고 있었다.

유엔기후협약 당사국 총회(COP)와 같은 '국제사회'는 아프리카를 기후변화의 피해자 이상으로 잘 보지 않는 듯하지만,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발 딛고 있는 아프리카의 환경주의에는 우리의 갇힌 상상력을 해방할 힘이 있다.

▲2017년 대선에서 유세 중인 프랑크 하비네자 대표 ⓒ르완다 민주녹색당

경계를 넘는 녹색 정치의 힘

민주녹색당 공약이 사회정의와 환경정의를 넘나드는 것처럼, 하비네자 대표의 여정도 '트랜스내셔널'하다. 르완다 출신 부모님이 정치적 박해를 피해 피난 중이던 우간다에서 태어났고, 제노사이드 종식 이후 돌아온 르완다에서 환경, 시민운동을 시작했으며, 창당 직후엔 살해 위협을 피해 스웨덴으로 2년간 망명했다가 다시 르완다로 돌아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그는 첫 번째 대선에 앞서 영국 리버풀에서 열린 2017년 세계녹색당총회에 참가해 아프리카 각국의 가혹한 정치 환경을 언급하며 "여러분들이 함께 해주신다면 선거에서 진 뒤 4~5년 동안 감옥에 갇히는 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설령 제가 감옥에 가더라도 저와 함께 해주신다면 저는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르완다 민주녹색당의 정치는 모두의 정치가 된다.

다행히 그는 선거 이후 감옥에 가지 않았고, 지금은 국회의원이 되어 정치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번 주 열리는 2023 세계녹색당총회 참석을 위해 곧 한국에 온다.

총회 둘째 날인 9일 오전 11시부터 열리는 "생물 다양성 및 토지 보전(BIODIVERSITY AND LAND)" 세션에서 하비네자 대표는 생물다양성을 위한 르완다 민주녹색당 목표를 주제로 스피커로 나설 예정이다.(☞ 총회 프로그램 안내)

르완다에서도 만나지 못한 그를 송도에서 만날 수 있다는 설렘 반, 국회의원이 된 그가 '야성'을 잃은 것은 아닐지 걱정하는 마음 반으로 이메일과 메신저를 통해 하비네자 대표와 미리 짧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아래는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필자 : 몇 년 전 인터뷰에서 달리기를 좋아하신다고 하셨는데요, 요즘도 달리시나요? 달리기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하비네자 : 네, 여전히 달리기를 하고 있는데요, 그때보다 더 길게 뛰고 있어요. 일주일에 사흘은 아침에 10km 정도씩 달려요. 수영도 좋아하긴 하는데요, 요즘은 골프에도 취미가 생겼어요. 이렇게 운동하면서 건강도 챙기고 스스로를 다잡기도 합니다. 특히 스트레스를 줄이거나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는데 참 좋아요.

필자 : 최근 소식을 보니 모교인 르완다 대학교를 다녀오셨던데요, 대학생 시절부터 환경운동을 하셨다고요?

하비네자 : 지난주 르완다 대학교에 가서 제가 20년 전 심었던 나무들을 다시 찾아봤어요. 제가 대학교 신입생이던 1999년, 친구들을 모아 환경보호 모임을 만들었어요. 학교와 주변 지역에서 환경보호를 위해 수천 그루의 나무를 심었죠. 저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을 사랑했어요. 동물을 괴롭히는 사람들에게서 새나 작은 동물들을 데려와 돌보곤 했어요.

필자 : 쉽지 않은 정치 여건에서도 르완다 민주녹색당을 창당하게 된 이유와 마음이 궁금합니다.

하비네자 : 창당 당시 상황은 정말 힘들었어요. 사람들에게 정치적 의견을 말하는 것조차 어려웠으니까요. 반대의견을 내는 사람들에겐 '국가의 적'이란 딱지가 붙었어요. 언론인들도 정부에 대해 비판적 기사를 냈다는 이유로 박해받아 몇몇은 나라를 떠나야만 했어요. 저도 언론인으로 일하면서 같은 일을 겪었습니다. 정당들도 제 역할을 하기가 어려워요. 수도와 주(Province) 단위가 아니라 진짜 마을로 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아요.

르완다의 환경 문제도 중요한 창당 이유였어요. 많은 국립공원과 보전지역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해 토양이 파괴되고 물도 많이 오염됐어요. 광산의 작업 환경도 좋지 않아 많은 분이 돌아가셨어요. 이제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민주적이고 진정한 변화를 이끌 새로운 정당을 만들었어요.

필자 : 국회에서의 첫 5년을 보내셨네요. 국회의원으로, 그리고 녹색 정치인으로의 5년은 어떠셨나요?

하비네자 : 새로운 선거 일정 덕분에 앞으로 1년을 더 국회에서 보내게 되었는데요, 지난 5년은 정말 모험의 연속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민주녹색당의 의석수는 적었지만 (민주녹색당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치러진 2018년 총선에서 4.5%를 득표, 전체 80석 중 2석을 얻어 최초로 원내에 진출했다. 필자 주.) 저희 공약의 최소 70%는 지킬 수 있었습니다. 저희 당은 여당에 이어 두 번째로 활발한 정당이에요.

필자 : 최근에 르완다 민주녹색당 활동에서 보람을 느낀 적이 있으신가요?

하비네자 : 앞서 말했듯 공약의 70%를 달성한 점이 정말 기뻤어요. 정부가 저희와 생각은 다를지라도 건강하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 또한 몇몇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국가의 적'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필자 : 내년 대선에 도전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2017년에 이어, 한 번 더 99% 지지율의 카카메 대통령과 경쟁하게 되시는데요, 예전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을 봤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대통령이 이길 거라고 말할 겁니다. 괜찮아요, 적어도 제 생각을 알릴 기회가 생기는거니까요." 내년 대선에서 알리고 싶은 생각은 무엇인가요?

하비네자 : 우리는 계속해서 자유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정치적 결사의 자유, 그리고 인권에 대한 존중까지, 자유가 실현되고 보장되는 정치를 말하려고 합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참여민주주의에 대해서도 선거운동을 하며 강조할 것입니다.

사회와 경제 정의도 빼놓을 수 없죠. 특히 농업 영역에서 유기 퇴비를 활용하고 사람들을 병들게 하는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의 전환을 이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식량 안보와 식량 안전, 그리고 완화와 적응, 두 접근을 모두 고려하는 기후변화 대응도 선거운동에서 중요한 주제가 될 것입니다.

▲2018년 총선에서 유세 중인 프랑크 하비네자 대표 ⓒ르완다 민주녹색당

필자 : 70% 공약 달성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요, 여러 공약 중 가장 의미 있거나 효과가 컸다고 생각하는 정책 하나만 소개 부탁드립니다.

하비네자 : 토지 소유권에 특히 많은 힘을 쏟았어요. 르완다에서는 땅을 20년 동안 임대하는 것만 가능한데요, 이젠 정책이 바뀌어서 99년까지 임대할 수 있습니다. 평방미터당 300프랑(약 350 원)이었던 토지세 인하 제안도 정부가 받아들여서 지금은 평방미터당 80프랑이 되었어요. 모든 학생을 위한 급식 정책 캠페인도 정부가 모든 학교에서 급식이 제공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만들면서 실현되었어요. 이렇게 정말 많은 것을 이뤘습니다.

필자 : 한국은 소위 '선진국'이 된 이후에도 경제성장이 환경이나 기후와 관련된 의제보다 영향력이 큽니다. 르완다 시민들은 환경과 발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하비네자 : 사람들이 여전히 환경 관련 법률과 규제를 지키지 않고 있어요. 예를 들어 법에서는 수원으로부터 50m 이상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농사나 건설을 할 수 없게 되어있는데 잘 지켜지지 않는 식이죠.

열악한 광산 문제도 심각한데요, 지난주에도 광산에서 몇 분이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광산이 일으키는 수질 오염도 심각합니다. 저희 당에선 이점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를 했고 많은 증거를 수집할 수 있었어요. 환경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대응해 나가야할 싸움이에요.

필자 : 글로벌그린즈(Global Greens)와 아프리카녹색연합(AGF)이 협력해야 할 의제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하비네자 : 더 나은 환경 보호를 위한 대안을 만들 수 있는 탈경계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권위주의나 군사 독재 국가에서 어려움을 겪는 당에 대한 지원도 필요합니다.

필자 : 르완다 민주녹색당의 꿈은 무엇인가요?

하비네자 : 르완다에서 가장 탄탄한 당이 되어 민주주의와 녹색 가치로 나라를 이끄는 것입니다.

필자 : 르완다는 정말 매력적인 나라인데요, 여러 가지 매력 중 딱 한 가지만 한국 시민들에게 소개한다면 무엇을 꼽으시겠어요?

하비네자 : 마운틴 고릴라요. 인간과 99%에 가까운 유사성을 가진 동물이에요. 르완다로 오세요! "#VisitRwanda" (Visit Rwanda는 르완다 관광산업 및 투자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캠페인이다. 유명 축구팀인 영국 아스날,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과 파트너십을 맺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필자 주)

필자: 마지막으로 한국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하비네자 : 한반도의 완전한 평화와 전쟁 종식,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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