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점 맞은 전장연 시위, 4월까지 '지하철 탑승' 없다

내달 7일 서울시와 실무회의… 시측 '대화' 의지가 관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모든 역에서의 '지하철 탑승 시위'를 일시 중단한다.

24일 전장연은 "서울시와 실무협의를 통한 대화자리를 마련"했다며 전날 예고한 서울지하철 1호선 시청역에서의 '지하철 탑승 선전전'과 '시청광장 천막농성' 계획을 협의일자인 4월 7일까지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전장연은 전날 기자회견에서도 "앞으로 지하철 4호선은 타지 않겠다"라며 최소 4월 20일까지 삼각지역에서의 지하철 탑승시위를 중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이들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전장연 죽이기'를 규탄"한다는 취지에서 열차운행을 유발하지 않는 일반탑승 방식의 1호선 탑승시위를 이어간다는 입장이었는데, 하루만에 4호선에 이어 1호선 시위에도 유보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로써 적어도 4월 7일까지는 서울지하철 내 전 역사에서 전장연의 지하철 탑승 시위는 중단된다. 전장연은 오는 27일부터 지하철4호선 혜화역에서 지하철에 탑승하지 않는 무탑승 선전전만 진행한다.

▲23일 오후 서울지하철4호선 삼각지역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피켓 등 시위 물품을 소지하지 않은 채 지하철에 탑승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프레시안(한예섭)

"다시 기다리겠다는 것 … 서울시·정부 대화 나서달라"

"20년 동안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그 어떤 말도 귀 담아 듣지 않더라. 그러다 재작년부터 지하철을 탔다. 불과 1년 정도의 탑승시위가 20년 넘은 투쟁보다 반응이 뜨겁더라." -권달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그러나 20년 기다린 만큼, 우리는 또 기다리겠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지난 23일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4호선 탑승시위 중단 조치의 배경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다시 기다리겠다는 것"이라 답했다. △장애인 권리예산 보장 △지하철 전 역사 내 엘리베이터 설치 △장애인 이동권 지역 간 차별 해소 등 탑승시위를 통해 촉구해온 장애인 권리 의제들을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화를 통해 해결하자"는 취지다.

박 대표는 "현재 국회의원 연구단체 '약자의눈' 의원모임에서 (전장연과) 국무총리 면담 약속을 잡았다고 전달 받았다"라며 "(탈시설 등 다른 의제를 떠나) 이동권 예산 문제만이라도 풀어달라는 입장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다양한 장애인 의제의 '완전해소'가 아니더라도, 개별의제 대화 의지가 전달된다면 지하철 탑승시위를 멈출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이동권 등과 관련한 '예산' 문제는 1년여 간 이어지고 있는 지하철 탑승시위의 핵심 쟁점으로 꼽힌다. 지난 2021년 12월 1일 지하철 탑승시위가 처음 시작될 무렵 전장연 측의 핵심의제는 '정치권이 장애인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약속만 하고, 정작 예산을 배정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이후 같은 달 31일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교통약자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중앙정부의 운영비 지원이 의무가 아닌 '선택' 사항으로 남으면서 예산문제는 결국 해결되지 못했다.

다시 1년이 지난 2022년 12월, 전장연은 "국회 예산안에 장애인 권리예산 보장이 반영되길 바란다"며 예산안 통과시점인 당월 24일까지 탑승시위를 중단했지만, 통과된 예산안에 반영된 장애인권리예산이 요구안의 0.8퍼센트(%)에 불과하자 시위를 즉각 재개했다.

정부는 지난 3월 9일엔 국무총리 주재의 장애인 정책 통합계획을 발표하며 △약자복지 △사회서비스고도화 △글로벌스탠다드(유엔 권리협약)라는 세 가지 정책기준을 밝혔지만 이날 전장연 측은 "이 역시 권리보장법 제정을 통한 예산배정이 없다면 말뿐인 약속"이라고 말했다.

▲23일 오후 서울지하철4호선 삼각지역 승강장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및 연대 단체 활동가들 ⓒ프레시안(한예섭)

강경대응 기조 유지하고 있는 서울시, 대화 의지는?

전장연이 '대화' 상대로 지정하고 있는 주체는 크게 대통령실 등 윤석열 정부와 예산 배정 주체인 기획재정부, 그리고 서울시다. 국무총리 면담 약속으로 정부를 겨냥한 4호선 탑승시위가 4월 20일까지 유보된 상황에서, 이후 지하철 탑승시위의 최대 쟁점은 '서울시와 전장연의 대화'가 과연 정상적으로 이어질지에 달렸다.

전장연은 특히 서울시를 과거 이명박·박원순 전 시장 재직 당시 '서울시내 지하철 역사 엘리베이터 100% 설치'를 약속했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은, 장애인 이동권의 주요 책임주체로 꼽고 있다.

이에 전장연은 앞서 지난 2월 전장연·서울시 면담에서 △지하철 리프트 추락 참사와 엘리베이터 100% 설치 약속 미이행 사과 △기획재정부에 장애인 권리예산 반영 촉구 △UN장애인권리위원회 초청간담회 이행 △2024년 서울시 장애인권리예산 등 4가지 요구사안에 대한 답변을 서울시 측에 요구한 상태다.

전장연과 서울시가 대화를 통해 실질적인 협의점을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박경석 대표는 23일 '4대 요구안에 대해 서울시 측과 협의가 진행되고 있는가' 묻는 기자의 질문에 "탈시설 조사 등 일부 주제에 관해서는 얘기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지난해 대선 국면에서부터 "전장연의 시위는 불법", "전장연은 약자가 아닌 강자"라는 등의 입장을 취해오고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강경대응 기조도 불안지점이다.

오 시장은 지난 23일에도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 글을 통해 전장연의 시위를 "장애인에 대한 인식에 피해를 주는 행위"라 규정하며 "불법행위는 반드시 바로잡겠다"라는 입장을 확실히 한 바 있다.

같은 날 오후 서울지하철1호선 시청역에는 전장연 등 진보적 장애인 운동 단체 소속 장애인 활동가들이 모여 "전장연은 서울시의 적군이 아니다", "오세훈 시장은 전장연 죽이기를 멈추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규탄대회를 열었다.

▲서울지하철4호선 삼각지역 승강장에 붙어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홍모불들. ⓒ프레시안(한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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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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