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미래 가져올 尹의 선거제도 개혁안, 최선책은?

[장석준 칼럼] '개방명부형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과 대통령제 개혁 함께 진행해야

2020년 선거법 개정과 총선은 최선의 개혁을 약속하는 듯싶었다가 오히려 최악의 결말을 선사했다. 한때는, 진보정당과 사회운동이 오랫동안 주장해온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마침내 도입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준연동형'이라는 기이한 타협과 비례위성정당 사태를 거치며 양당 독점 정치가 더 강화되는 결과로 끝나고 말았다.

이후 3년 동안 선거제도 문제는 계속 쉬쉬 하는 쟁점이 되었다. 준연동형이라는 기묘한 제도의 손질과 비례위성정당 사태의 재연 방지를 위한 논의가 반드시 필요했지만, 누구도, 심지어는 진보정당조차 제대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만큼 2020년의 경험이 불러온 트라우마가 컸다.

그러다 이제 다시 차기 총선을 1년 조금 넘게 앞둔 시점이 됐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갑자기 선거제도 개혁이 정가의 최대 쟁점으로 급부상했다. 이번에 화두는 '중대선거구제 도입'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그래도 소선거구제를 바꾸자는 목소리가 다시 일고 있으니 일단 환영하고 볼 일인가? 한데 환영만 하기에는 불안하고 걱정되는 대목이 더 많다. 무엇보다도 중대선거구제 도입 논의 안에 최선의 선택지와 최악의 선택지가 공존하기 때문에 그렇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논란 때에도 최선의 가능성과 최악의 가능성이 함께 했지만, 그 진폭은 지금이 더 크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최선'이고, 무엇이 '최악'이란 말인가?

▲ 2020년 4월 17일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주최로 제21대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 소송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이들은 위성정당이 참여한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는 무효라고 주장했다.ⓒ연합뉴스

박주민 의원안, 지금껏 제출된 최선의 선거제도 개혁안

최선의 안은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박주민 의원안')이다. 사실 이 법안은 정확히 말해 중대선거구제 도입안은 아니다. 개정안 스스로 밝히듯이 '개방명부형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개정안이 상정하는 국회의원 선출단위는 '중대선거구제'라는 틀에서는 '대선거구제'로 분류된다. 이 점 때문에 아직도 일부 언론은 이 안을 중대선거구제 도입 논의의 한 흐름처럼 소개하곤 한다.

이 안은 기본적으로 17개 광역시도를 '권역'이라 칭하고 각 권역마다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복수의 국회의원을 선출하자는 것이다. 다만, 인구가 너무 많은 광역시도는 6인 이상 12인 미만의 국회의원을 뽑는 몇 개의 대선거구로 나눈다는 조항을 덧붙인다. 중요한 점은 행정구획과 일치하는 권역이든, 권역을 나눈 대선거구든, 유권자는 일단 (후보가 아니라) 지지 정당에 투표한다는 것이다. 선거구별 의석은 각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비례적으로' 배분된다.

예를 들어, 10인의 당선자를 내는 '가' 권역이 있다고 하자. 여기에서 '중도'당은 40%를 득표했고, '보수'당은 30%, '좌파'당은 20%, '녹색'당은 10%를 득표했다. 그러면 '중도'당은 4개, '보수'당은 3개, '좌파'당은 2개, '녹색'당은 1개의 의석을 배정받는다. 이 의석들을 각 정당의 '가' 권역 국회의원 후보 명부에 올라온 후보들이 채우게 된다.

그런데 박주민 의원안은 여기에 한 가지 중요한 사항이 덧붙는다. 그것은 유권자들이 기본적으로 정당에 표를 던지지만, 원할 경우에는 지지 정당의 후보에게도 투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개방명부형' 권역별 비례대표제다. 정당이 자체적으로 정한 후보명부 내 순위에 따라 당선자가 결정되는 '폐쇄명부형' 비례대표제(한국의 현행 방식도 이것이다)가 아니라 유권자가 우선 당선자 순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개방명부형'이다.

가령 앞의 사례에서 '좌파'당은 '가' 권역에서 2인의 당선자를 내게 되었다. 이때 '좌파'당의 후보명부에 '갑', '을', '병' 세 후보가 있다고 치자. '좌파'당에 표를 던진 유권자들 가운데 5만 명이 '갑' 후보에게도 표를 던졌다. 반면 '을' 후보는 이보다 적은 3만 표를 받았고, '병' 후보는 더 많은 8만 표를 받았다. 그러면 '좌파'당의 당선자는 '병'과 '갑'이 된다. '좌파'당의 당원들의 의사가 아니라 '가' 권역 전체의 '좌파'당 지지자들의 의사에 따라 '가' 권역 '좌파'당 당선자가 결정되는 셈이다.

박주민 의원안은 현행 지역대표 의석 253석을 이 방식으로 선출하자고 제안한다. 그럼 비례대표 의석 47석은? 이 47석은 이른바 '조정의석' 역할을 한다. 권역별로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면, 투표 결과를 전국 합산했을 때 각 정당이 권역별 선거를 거쳐 얻은 의석 비율과 전국 득표율 사이에 괴리가 발생한다. '조정의석'은 이 불비례성을 교정하기 위해 각 당에 추가로 배분하는 의석이다. 이런 조정 절차까지 거치면 총 300석의 국회 의석은 각 당의 전국 득표율과 거의 같아진다.

박주민 의원안이 제안하는 이 방식은 실은 유서 깊은 제도이며, 가장 보편적인 제도이기도 하다. 한국처럼 단순다수대표제로, 즉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의 최다 득표자를 대표로 선출하는 미국, 영국, 캐나다, 인도 등을 제외하면, 대다수 민주 국가는 비례대표제로 의회를 구성한다. 그리고 이때의 비례대표제는 대부분 권역별 비례대표제다. 이제껏 한국의 비례대표제 도입 시도에서 주된 참고가 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실은 독일, 뉴질랜드 등 몇 국가에서만 실시하는 극히 예외적 방식이다.

게다가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개방명부 방식이 결합된 선거제도는 의회민주주의와 사회국가(복지국가)가 가장 유기적으로 결합된 나라들인 북유럽 국가들의 특징적인 제도다. 박주민 의원안이 밝히듯이, 스웨덴과 덴마크의 선거 방식이다. 개방명부형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조정의석까지 갖췄다는 점에서 스웨덴, 덴마크의 공직선거법을 거의 그대로 원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박주민 의원안은 비례위성정당 사태를 겪고 난 뒤의 한국 정치에서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제도로 나아가는 가장 바람직한 방안이며 또한 거의 유일한 방안이다. 2020년 총선을 통해 우리는 한국 정치에서 양대 정당 안팎 세력들이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으며 이를 법률로 원천 금지하기도 힘들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한국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뼈아픈 진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제는 박주민 의원안이 제안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말고는 비례성이 보장된 선거제도를 도입할 다른 길이 '없다'.

더구나 개방명부형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양대 정당 바깥에서 새로운 정치 세력이 성장하는 데에도 훨씬 건강한 경로를 열어줄 수 있다. 이 제도에서는 유권자가 병립형이나 준연동형, 연동형에서처럼 지역구 선거와 비례대표 선거에서 각기 다른 정당에 투표하는 '교차 투표'를 할 수 없다. 교차 투표는 그간 신진 제3당이 결국 양대 정당 중 어느 한 쪽에 구조적으로 복속되도록 만드는 덫 노릇을 했다. 그러나 박주민 의원안과 같은 내용에서는 이 경로는 이제 닫히게 된다.

다만, 박주민 의원안에 담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한국 정치에 도입하려 할 경우에 반드시 함께 고민해야 할 근본 문제가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이런 온전한 비례대표제는 대통령제와는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의회제(의원내각제)와 함께 발전된 선거제도다. 따라서 박주민 의원안이 제시하는 선거제도가 원활히 작동하려면, 한국의 현행 대통령제가 의회제나 최소한 핀란드형 이원집정부제(대통령제보다는 의회제 요소가 더 강한 이원집정부제)로 바뀌어야 한다. 즉, 제6공화국 질서를 넘어선 새로운 정치 체제를 만들어가는 과정과 함께 해야만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말하는 '2~4인 중대선거구제', 최악의 미래

그러나 '중대선거구제'라 이야기되는 여러 방안들 가운데에는 어쩌면 기존 소선거구제보다도 못한 최악의 제안도 있다. '중대선거구제'를 단박에 가장 뜨거운 정치 쟁점으로 부상시킨 윤석열 대통령의 <조선일보> 인터뷰 속 내용이 그것이다. 이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2명, 3명, 4명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언급했다.

막연한 이야기다. 그래서 막연한 희망도 불러일으킨다. 대통령의 입에서 "4명을 선출" 운운하는 말이 나왔으니 4명 정도를 뽑는 커다란 선거구가 생기겠거니 생각하기 쉽다. 그러면 양대 정당 말고 다른 정당들이 당선자를 내기도 지금보다는 쉽지 않겠는가? 비록 만족스럽지는 못하더라도 지금보다야 양당 독점이 이완된 원내 정당 구도가 등장하지 않겠는가? 그것만 해도 진전이 아닌가?

그러나 여기에서 우선 정색하고 봐야 할 것은 이런 식의 '중대선거구제'론은 기존 소선거구제의 문제점을 온전히 포착하지 않으며 그 중요한 일부를 일부러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당선자의 숫자만 이야기할 뿐 유권자의 투표 방식은 말하지 않는다. 당선자를 2~4인으로 늘리겠다고 하지만, 그런 당선자들을 내기 위해 유권자들이 어떻게 투표하는 게 바람직한지는 관심 밖으로 내몬다.

여러 명의 당선자를 내는 '중' 혹은 '대' 선거구를 운영하면서 소선거구제처럼 유권자가 단순히 한 명의 후보에게 투표하는 방식을 취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복수의 당선자들 면면에 유권자들의 지지 성향이 좀 더 비례적으로 반영되도록 훨씬 진보한 투표 방식을 택한다. 그 중 일반적인 것이 박주민 의원안이 제시하는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이고, 특수한 사례로는 아일랜드 의회 선거에서 쓰는 단기 이양식 투표제도(정당명부 방식과는 또 다른 방식의 비례대표제라 할 수 있다)가 있다. 하지만 윤석열식 논의에는 이런 중대한 '절반'의 내용이 빠져 있다.

사실 윤석열식 '중대선거구제'론은 모순적이다. 막연한 만큼이나 또한 확실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2~4인의 중대선거구제'는 이미 한국 정치에서 사용되고 있다. 바로 기초의원 선거다. 다른 부연 없는 모호한 '2~4인의 중대선거구제'론은 실은 현행 기초의원 선거 방식이라는 뚜렷한 전례를 국회로 확대하자는 진의를 숨기고 있다고 봐야 한다.

지금 한국의 기초의원들은 어떻게 선출되고 있는가? '2~4인의 중대선거구제'라고 하지만, 양대 정당이 주도하여 획정한 선거구는 대개 2인 선거구다. 그리고 2인 선거구를 중심으로 선출된 기초의회의 구성은 소선거구를 중심으로 선출된 국회의 구성보다도 더 문제적이다. 양대 정당이 사이좋게 한 명씩 당선시키며 양당 독점 정치를 더욱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물론 3인이나 4인 선거구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양당 이외의 정당들이나 지역 사회운동 세력이 지겹도록 비판하니까 마지못해 3~4인 선거구를 몇 곳 만들어주는 수준이다. 애초에 2인 선거구를 만들 수 있게 열어놓았기에 마치 중력의 작용인 양 2인 선거구가 획정되는 게 기본이고 예외적으로만 3~4인 선거구를 만들어준다. 양대 정당 이외 세력들은 단 한 곳이라도 3인 이상 선거구를 따내려는 시지포스의 노동을 선거 때마다 반복해야 한다. 이것이 소선거구제보다 더 교묘한 '2~4인 중대선거구제'의 마술이다.

앞으로 중대선거구제 논의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눈앞에 그려지고도 남는다. 기초의회에서 훈련된 저 마술이 온갖 번잡한 논의의 안개를 뚫고 결국은 국회 법안 심의의 최종 안건으로 올라올 것이다. 처음에는 박주민 의원안처럼 열의와 포부, 기대로 가득 찬 의안들과 함께 논의되겠지만, 온갖 복잡한 논란과 모호한 단어의 속임수 끝에 결국 남는 것은 기초의회에서 이미 오랫동안 실시됐다는 배경을 갖춘 '2~4인 중대선거구제'일 것이다.

그때에 진지한 선거제도 개혁론자들이 이 막판 선택지를 기를 쓰고 반대하고 나서면, 마침내 양대 정당에서는 진실한 외침이 터져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2020년 이전 선거제도로 돌아가자." 그렇게 제6공화국의 심장과도 같은 승자독식 선거제도는 다시 한 번 승리를 구가할 것이고, 양당 독점 정치 또한 그 지겨운 승리를 반복할 것이다.

▲ 지난 2월 3일 대선 후보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TV 토론을 하고 있다. 한국방송(KBS) 화면 갈무리.

최선과 최악이 공존하는 혼란 속에서 선거제도 개혁 세력의 길은?

그럼 이렇게 강력한 최악의 가능성과 미약한 최선의 가능성이 공존하는 혼란 속에서 선거제도 개혁에 진심인 이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지면 사정상, 여기에서는 위의 여러 판단에서 곧바로 끄집어 낼 수 있는 몇 가지 제안만 정리하며 끝맺겠다.

첫째, 선거제도 개혁 세력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미련을 접고 시급히 박주민 의원안을 통일된 대안으로 채택해야 한다. 비례위성정당의 재연을 입법으로 막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더 이상 전통적 개혁안(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만 고집할 수는 없다. 오히려 전통적 개혁안보다 더 전향적인 내용을 담은 박주민 의원안을 선거제도 개혁 세력의 공동안으로 합의하고 추진해야 한다.

둘째, 개방명부형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주장하고 싶다면, 현 대통령제의 개혁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선거제도 개혁과 함께 의회제 혹은 핀란드형 이원집정부제로 나아가는 개헌을 주장해야 한다. 제6공화국 정치 질서를 극복하려는 거대한 흐름의 일부로서 제시되지 않는 선거제도 개혁론은 더는 진지하거나 솔직한 주장으로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현 대통령제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선거제도 개혁 세력이 반드시 먼저 풀어야 할 내면의 족쇄다.

셋째, 2020년 선거법 개정(개악)의 패착을 절대 반복해서는 안 된다. 최선의 의도가 최악의 결말로 굴절되어가던 동안에도 당시 정의당을 비롯한 선거제도 개혁 세력은 그런 최악의 결말 안에서 조금이나마 실리를 얻는 데 집착했다. 이런 행태는 선거제도 개혁 세력의 의도와 능력에 대한 대중의 의심만 더욱 부추겼을 뿐이다.

이번 선거법 개정 논의에서는 오로지 최선의 선택지, 즉 개방명부형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현 대통령 개혁이라는 대안을 설득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그럴 경우에만 최악의 경로를 약간이나마 반대쪽으로 굴절시키는 일도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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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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