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무관용" 이후 평화시위마저 '혐오'가 됐다

전장연, 19일까지 지하철 탑승시위 유보 … "오 시장, 공개방송 통해 만나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지하철 탑승시위를 유보한다. 지난 4일 오후 서울교통공사 측과 면담을 가진 전장연은 공사 측 제안에 따라 오는 19일까지 11일간 지하철 탑승 시위를 멈추고 '냉각기'를 갖기로 5일 밝혔다.

냉각기 동안 전장연 활동가들은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탑승하지 않고 시민들을 향한 선전전만 진행"한다. 전장연은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면담' 약속을 조건으로 이번 냉각기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2021년부터 12월부터 47차례 진행된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는 잠시 멈췄다.

47회라는 숫자는 "1시간 이상 지연되는 지하철 행동"을 기준으로 계산된 것이다. 지난해 12월 47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이후 지난 2일과 3일 진행된 '1박2일 지하철행동'의 경우 교통공사 측의 원천봉쇄로 활동가들의 지하철 탑승 자체가 차단됐다. 반면 승강장에서의 시민 선전전인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은 지하철에 탑승하는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와 달리 별도의 교통 불편을 유발하지 않는다. 5일로 256일차를 맞은 해당 선전전은 지금껏 "현장에서 서울교통공사와의 협조를 통해 마찰 없이 진행"돼왔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서울교통공사와의 면담 자리에서 "그러나 오세훈 서울시장의 '무관용', '무정차' 발언 이후, 평화로웠던 선전전 진행마저 혐오와 욕설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고 강조했다. 오 시장이 열차 지연을 유발하지 않는 집회마저도 "무관용"의 대상으로 규정하며, 장애인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 3일 서울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서 진행된 전장연의 1박 2일 지하철 행동 해단식 선전전의 경우, 열차 탑승 시위가 아님에도 공사 측 '맞불방송' 등으로 역내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활동가들이 시민들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통상 활용하는 승강장 벽면의 공간은 공사 측이 설치한 펜스로 막혀있기도 했다.

당일 전장연 활동가들은 시위 종료를 선언한 뒤 "1명씩 1분 이내로 열차에 탑승"해 삼각지역을 벗어나려 했지만 공사 측 직원들과 경찰들이 이를 원천봉쇄했다. (관련기사 ☞ 지하철 탑승 막아선 수십 개 방패, 장애인은 끝내 타지 못했다) 이에 관해, 지난 4일 진행된 255일차 지하철 선전전에 참여한 이지훈 노들야학 교사는 오 시장의 '무정차' 발언 이후 교통공사 직원들의 태도가 "지난 해 지하철 선전전에서 보아왔던 사람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들"로 변했다고 지적했다.

<프레시안>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측의 동의를 얻어 당일 이지훈 활동가의 발언 전문을 기사에 싣는다.

▲지난 3일 서울지하철 4호산 삼각지역 승강장에서 열린 전장연 1박2일 지하철 행동이 종료된 이후, 문경희 세종보람센터 소장이 열차 탑승을 막아선 경찰들과 대치하고 있다. ⓒ프레시안(한예섭)

2023년 1월 4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255일차 지하철 선전전 발언문

안녕하세요. 노들야학에서 신입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지훈입니다. 하고 싶은 말들을 모아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지금부터 이어질 제 발언은, 며칠 사이 쌓이다 못해 터질 것만 같은 분노로부터 쓰였습니다. '진압'이라도 하는 듯이 몸을 거세게 들이미는 사람들, 역사와 열차 내 안전을 운운하며 장애인들을 힘으로 가로막는 사람들, 채증을 해야 한다며 휠체어 사용 장애인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밀치며 달려오는 사람들, 활동가에게 폭력을 당했다며 거짓으로 연기하는 사람들, 자기들을 그만 좀 괴롭히라며 히죽거리는 사람들을 향한 분노 말입니다. 이들은 모두 방패로 무장한 경찰, 퇴거를 강제하는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들은 제가 지난해 지하철 선전전에서 보아왔던 사람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들을 지금 보이고 있습니다.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이들의 변화는 고작 하루 이틀 사이에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에겐 지하철에 탑승할 자격이 없다며 이른바 '무정차'를 정책이랍시고 내세우고, 단 1분의 멈춤도 허용할 수 없다는 망언을 내지른 오세훈 서울시장의 말이 있은 다음부터 말이죠. 경찰과 서울교통공사의 폭력적인 행태들을 모두 충성 경쟁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적어도 지금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여러분들, 즉 경찰과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은 우리에게 이럴 수 없습니다.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지난 수십 년 동안 수없이 외쳐왔던 우리들의 목소리는 모를지언정, 지난 해 1년 내내 우리가 보여 왔던 절실함과 정직함을 모른단 말입니까? 141일 동안 177명의 활동가들이 삭발을 한 현장, 1년 내내 출근길 선전전에 나서는 현장에 분명 같이 있지 않았습니까? 매일 아침 삭발 결의자들의 투쟁결의문을 함께 듣고, 출근길의 시민들을 같이 만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지금은 아무것도 몰랐던 것처럼, 마치 우리가 범죄라도 저지르고 있는 것처럼 쳐다보고 있습니까? 왜 듣지 않습니까? 달라진 사람은 누구입니까? 직시하고 경청하십시오. 지난 1년을 되돌아보십시오.

다시 말하건대, 우리는 절실했고 정직했습니다.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지역사회에서 함께 사는 권리를 요구하는 우리의 목소리는 긴박했습니다. 누구의 삶도 미뤄져서는 안 되고 내팽개쳐질 수 없는 것이니까요. 살아야 하니까요. 그리고 정직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장애인차별금지법,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 있으니 말이죠. 법과 국제협약을 제대로 잘 시행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절실하지만 비굴하지 않았고, 정직하므로 당당했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시민들을 만나지 못합니까? 경찰과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은 왜 우리를 가로막습니까? 이 비장애 중심 사회에 판연한 차별을 없애고자, 그 실체를 심문하고 시민들과 공유하려는 우리의 말과 행동을 어떻게 감히 '불법'으로 재단할 수 있습니까? 없애야 할 것은 차별이지, 매일같이 차별당하는 장애인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두렵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그 두려움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장애인들이 출근하고,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사는 것이 두렵습니까? 무엇이 그토록 두렵길래 장애인 활동가들의 휠체어를 망가뜨리고 비장애인 활동가들을 밀어 넘어뜨립니까? 지금 이곳에 시민들을 위한 치안과 행정은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들은 시민이 아닙니까? 우리들이 시민이 될 수 없다면, 그 까닭에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면 그 근거를 이야기해보십시오. 확실히 말하건대, 그 근거와 말들은 절실하지도 정직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분명 틀렸을 테니 말이죠.

어떤 분노는 세상을 바꿉니다. 우리의 역사가 그랬습니다. 2005년의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 제정, 2007년의 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장애인등의특수교육법 제정. 이들 모두 우리의 분노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분노는 정확했습니다. 차별적인 현실을 직시했고, 억압의 경험들을 경청했습니다. 2023년 새해 벽두부터 경찰과 서울교통공사, 서울시와 윤석열 정부가 우리에게 심는 분노를 기억할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우리가 서로를 외면하지 않고 버텨온 세월들, 투쟁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온 시간들은 그 분노를 보다 정확하게 활용하도록 이끌어왔습니다. 이를 자원 삼아 새로운 역사는 더욱 힘 있게 쓰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당부합니다. 1월 3일, 어제의 우리는 동대문역사공원역에서 6시간가량 지하철 탑승을 거부당했습니다. 경찰, 서울교통공사, 언론들은 이를 두고 우리가 '기습' 시위를 한 결과라고 말하더군요. 단지 잠시 하차했을 뿐이었습니다. 하차하면 다시는 열차를 탑승하지 못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던 경찰과 서울교통공사 직원의 말과 행동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욕설과 비아냥을 일삼고, 몸싸움에 앞장섰던 이들의 모습도 잊지 않겠습니다. 거듭 사과를 요구했지만 그 누구도 들은 체조차 하지 않았던 어제의 현장에서, 이들에게 쌓인 제 분노를 오래도록 간직하겠습니다. 제때에 정확하게 활용할 것입니다. 늘 곁을 지켜주는 동지들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투쟁.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교육장에서 진행된 전장연·서울교통공사 면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한편 전장연은 교통공사와의 면담을 통해 오 시장에게 △'5분 이내 탑승' 허용 등 법원조정안 수용 △지하철리프트 추락참사 사과 △2004년과 2022년 지하철 엘리베이터 100% 설치에 대한 서울시의 약속 미이행 사과 △전장연과의 직접 면담 등을 요구한 상태다. 면담 요청을 전해들은 오 시장은 4일 페이스북 게시물을 통해 "전장연,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라 언급했다.

이에 전장연도 5일 "오 시장은 방송을 통해 서울교통공사에게 서울중앙지법원 조정안을 거부한 바 있다"라며 "시장님과 공개방송을 통한 만남을 제안드린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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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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