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릉 신도시 개발에, 육아조합 어린이집 아이들이 내몰렸다

평등·생태교육 내건 사회적 협동조합 도토리 어린이집의 위기

"큰일이에요. 애를 보낼 데가 없어지게 생겼어요."

예은(3, 가명) 엄마 임진주(41, 가명) 씨가 한숨을 쉬었다. 신도시 개발로 인해 어린이집이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했다. 답이 보이질 않으니 한숨만 늘어간다.

예은이는 경기 고양시 덕양구 소재 도토리 어린이집에 다닌다. 이 어린이집은 덕양구민이 직접 육아조합으로 1999년 설립했다. 지난 2015년 비영리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변경됐다. 오늘날 아이 29명, 학부모 50명, 교사 8명이 이곳에서 평등을 지향하는 공동체 육아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 가운데 부모 50명, 교사 5명이 협동조합의 조합원이다.

조합은 처음부터 '지역'을 기반으로 '자연'을 벗삼아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평등'한 관계를 맺는 걸 목표로 했다. 다른 어린이집과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교사와 학부모는 각자의 별칭을 갖고 있다. 원장 선생님은 '아자작', 예은이 담임 선생님은 '사슴벌레', 진주 씨는 '만두'인 식이다. 아이들은 이들을 별칭으로 부른다. 존대하지 않는다. 아이도 어린이집을 꾸려가는 주체임을 몸으로 깨닫게 하려는 교육 철학이 반영됐다. 평등을 추구하는 '관계교육', 자연을 가까이 하는 '생태교육'은 이 어린이집의 가장 중요한 교육 철학이다.

이곳이 존폐의 위기에 처한 건 지난 2019년의 일이다. 당시 전국의 부동산이 그야말로 폭주하고 있었다. 집값을 잡으라는 국민적 공분이 건설사의 이해와 맞아 떨어져 대규모 공급 정책으로 이어졌다. 그 핵심이 3기 신도시 개발 사업이다. 이 사업이 도토리 어린이집에 영향을 미쳤다.

어린이집이 위치한 곳은 덕양구 도내동이다. 이곳은 3기 신도시의 하나인 창릉 신도시 개발 대상지다. 이에 따라 어린이집 의사와는 무관하게, 소재지가 강제 토지수용에 들어갔다. 현재는 토지수용을 위한 토지와 지장물 감정이 완료된 상태다. 토지 수용 보상금 12억4000만 원이 확정됐다. 여기에 어린이집 설립 당시 대출금 1억6000만 원을 제외하면, 신도시 개발에 따라 어린이집이 받을 금액은 약 11억여 원이다. 어린이집은 이 금액으로 새로운 터전을 찾아야 한다. 문제가 있다.

첫째 문제는 지급 시기다. 보상금의 지급 예정월은 내년 6월이다. 그런데 어린이집 소재지 인근은 내년 1월경부터 철거에 들어간다. 아이들이 위험한 공사 현장에 온전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자연을 몸으로 체험하고 자라도록 육아 일정을 짰어요. 주변 환경이 무척 중요한 셈이죠. 공사가 시작되면 아이들이 고스란히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어요."

'아자작(원장 선생님)'의 설명에 따라, 예은이의 통상 일과를 정리해봤다. 보통 아침 7시 30분경 어린이집에 등원해 그곳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아이들 부모 대부분이 맞벌이인 특성상 이곳 어린이집 운영도 그만큼 일찍 시작된다.

오전 간식까지 먹은 후, 아이들은 아침 10시경부터 어린이집을 나와 근처 산길에 오른다. 인근을 산책하고, 숲에서 자연물을 만지며 아이들은 논다. 오후에도 바깥놀이 일정이 있다. 어린이집 마당 안팎이 아이들의 놀이터다. 학부모와 선생님들이 신도시 개발 소식에 크게 흔들리는 배경이다.

▲도토리 어린이집 아이들은 자연을 벗삼아 논다. ⓒ도토리 어린이집

두 번째 문제는 이전 가능성이다. 지난 수년간 이 지역 집값이 크게 올랐다. 최근 집값이 떨어지고 있다손 쳐도, 이전 보상금만으로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집값을 감당해 새 터전을 찾기가 쉽잖다. 이전하려면 결국 추가 대출이 필요하다.

어린이집 교사와 학부모들이 손수 고양시, LH 등을 찾아 이전 보상금 지급 시기를 내년 1월로 앞당겨 줄 수 없는지, 보상금 채권을 담보로 추가 대출을 해 줄 수 없는지 문의하는 이유다. 둘 다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예정된 사업 일정을 '고작 어린이집 하나' 때문에 사업주들이 늦출 가능성은 없다. 사회적 협동조합은 비영리 조직이다. 이익을 낼 수 없는 사업체에 금융사가 담보대출을 해 줄리 만무하다.

이대로는 어린이집이 공중 분해될 위기다. 좋은 교육 공동체가 사라진다는, 미래를 위한 위기감이 물론 있다. 한발 뒤로 물러나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다. 어린이집이 사라진다면, 과연 맞벌이하는 아이 29명의 엄마 중 얼마나 많은 이가 직업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 사정이 비단 이곳만의 일일까. 아이 울음 소리가 귀해지는 오늘날 한국의 민낯에, 얼마나 많은 도토리 어린이집과 같은 사례가 있었을까. 경기도의 작은 어린이집이 떠안은 모순은 한국의 오늘을 정면으로 비춘다.

▲도토리 어린이집 아이들. ⓒ도토리 어린이집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이대희

독자 여러분의 제보는 소중합니다. eday@pressian.com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