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의 남용'이 부른 쌍용차 강경 진압의 교훈

[최창렬 칼럼] 공권력 투입은 해결책이 아니다

현대정치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원리가 '법의 지배', 또는 '법에 의한 지배'다. 이른바 법치주의의 개념으로서 법 앞에서의 평등과 주권자의 대의기구인 의회에서 만든 법에 의해 통치되는 규범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법의 지배는 민주주의에 못지않게 논쟁적인 개념으로서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는 함정이 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법의 지배에 관한 이론은 크게 형식적 이론(formal theory)과 실질적 이론(substantive theory)의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형식적 이론은 법이 공포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법의 실질적 내용에 관해서는 판단하지 않는다. 법조문에 의하여 사회구성원이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고 질서와 치안이 지켜질 수 있다면 법의 지배가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형식적 조건에 부합한다면 어떤 법이 좋은 법인지 나쁜 법인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대의제 국가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반면에 실질적 이론은 법의 형식적 조건(합법성의 조건)을 넘어서 법의 내용이 정의와 도덕적 내용에 부합하는지의 여부에 관심을 갖는다.

형식적 이론과 실질적 이론의 두 가지 이론들은 법의 지배에 관한 대척의 관점을 제시한다. 일반적으로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로 알려져 있는 법치의 개념은 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실질적 내용과는 상관없이 국가가 법에 의해 통치되는 법의 수단적 개념을 의미한다.

그러나 법에 의한 지배는 종종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비민주적 통치와 양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심해서 사용해야 할 개념이다. 이러한 이론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실제 정치공간과 법의 영역에서 법치는 민주주의의 평등 및 사회 통합과 양립하지 않는 경우를 수 없이 목도할 수 있다.

권위주의적 군사정권 시절, 법을 빙자한 정치적 배제와 억압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문제와 관련하여 우리 사회는 법치를 앞세운 강경 진압으로 사회적 갈등과 큰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이명박 정부 때 일어났던 '용산 참사'와 '쌍용차 사태' 역시 명분으로 내걸었던 법치와 사회질서의 확립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회적 원심력이 작용하고 사태 해결을 더욱 꼬이게 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동조합 파업이 50일째인 21일 오후 경남이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내부를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우조선해양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정권 차원에서 공권력 투입을 암시하는 듯한 메시지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의 불법 파업사태와 관련하여 "노사관계에 있어서 노든 사든 불법은 방치되거나 용인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파업이 법에 정한 절차를 벗어났다면 원상복구함으로써 법치를 확립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말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파업으로 대우조선에 많은 손실이 발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오로지 파업에 따른 대우조선의 손실, 지역사회의 피해만 강조할 일은 아니다. 강경 진압은 정권 지지율을 더욱 떨어뜨릴 것이다. 그리고 사태 해결에 도움은커녕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악화될 수도 있다.

공권력 투입이라는 이름의 강경 진압은 법치를 남용하는 것이다. 대표적 사회 갈등인 노사 갈등과 이해관계의 충돌을 법이라는 잣대만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자발적 동의에 기반하지 않은 강제 해결은 갈등을 증폭시킬 뿐이고 더 많은 희생과 상처를 남길 뿐이다.

결국 문제 해결은 타협과 양보의 정치적 해결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지난 주말부터 대우조선 협력업체(하청)와 사내 하청 노조 간 교섭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강경 대응의 분위기는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사회에 존재하는 숱한 갈등을 실정법의 잣대만을 가지고 접근해서는 안 된다. 물론 법실증주의 차원에서 엄중한 법 적용과 집행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첨예하게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무작정 법으로 일방을 제압한다면 정치가 존재할 공간은 사라지고 법 만능주의에 입각한 통제와 통치만 남는다.

법에 정해진 절차를 무시하고 불법 파업에 의존하는 노동행태가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된다면 여론의 향배를 봐서 공권력이 개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모든 노력을 경주한 이후에 최종 수단으로서 강구해야 한다. 법에 의한 지배를 앞세운 공권력 투입은 최대한 자제되어야 한다. 실질적 이론으로서의 법에 의한 지배가 이루어질 때 법이 사회적 통합과 정의 편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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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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