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위기' 농업의 미래, 스위스와 프랑스에서 배우자

[복지국가SOCIETY] CPTPP 농업 피해 최소화는 '저탄소발자국 및 가치소비' 지원정책으로

지난 5월 19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에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공식화했다. "피해가 예상되는 부분, 또 피해가 실제 발생하는 부분에 대해서 충분한 보상이 되면서 진행해야 한다"고 했으니 눈 크게 뜨고 지켜볼 일이다. 전문가들의 전망에 의하면, CPTPP 가입으로 인한 농업 및 수산업의 피해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의 농수산업이 거의 초토화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하지만 CPTPP 가입은 이제 목전의 현실이 되고 말았다. 철저히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 피해를 최소화하고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첫 번째 방안은 스위스의 농업 정책 및 농산물 소비 지원 정책, 프랑스의 농산물 제값 받기 제도화를 벤치마킹하여 한국 농정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두 번째 방안은 '가까운 먹거리 저탄소발자국' 표시 확대와 홍보, 대·중·소 모든 단위의 공동체 지원 농업 및 가치 소비 지원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것이다. 서둘러야 한다.

CPTPP가입과 농어업의 피해

정부는 CPTPP 가입으로 소비자 후생이 약 3조7000억 원 증가한다고 한다. 반면에 농업 분야 피해는 막대하다. CPTPP의 관세 철폐율은 기존 자유무역협정(FTA)보다 훨씬 높은 96.1%이다. 수입 농수축산물의 검역 기준도 대폭 완화되고 값싼 농수축산물이 물밀듯이 들어올 것이다. 우리나라의 CPTPP 가입에 따른 농업 분야 피해액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 추산으로 15년간 연평균 853억~4400억 원에 달한다. 부경대학교 전망에 따르면 수산업에서는 15년간 69억∼724억 원의 생산 감소가 발생한다. 그러나 중국 가입을 상정하면 이런 추산조차 무의미해진다. 동식물 위생‧검역(SPS) 범위 축소 등을 고려하여 농업계가 추산한 피해 수준은 2조 원이 넘는다.

2004년 한·칠레 FTA 이후 국내 농업 경쟁력 강화 정책은 생산-유통-소비 전 분야를 아우르지 못한 채 규모화, 전문화를 통한 생산력 증대에만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곡물자급률은 20% 이하로 낙하했고, 풍년이면 농민들이 밭을 갈아엎는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도매시장 경매에 의존하는 전근대적 유통구조가 35년 이상 지속되고 있으며, 농업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도시민이 생각하는 농업의 중요도가 2011년 73.1%에서 2020년에는 약 50%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또한 세계적으로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사활을 걸고 있는 시대에 탄소 발생의 외주화나 다름없는 수입 농산물의 탄소 배출량 조사는 2012년 이후로 전무하다. 이쯤 되면 환골탈태 수준으로 농업 정책을 확 바꾸어야 할 때가 아닌가! 당장 '가치소비 농축산식품부'라는 슬로건이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다. 공공재이자 '관계재'인 농업의 공익적 가치 확산 및 국민 공감대를 넓혀가야 할 것이다. 실제 CPTPP 가입까지는 1~2년 이상 소요될 것이므로 이 동안에라도 피해를 최소화하고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 농정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CPTPP 가입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지난달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계천 인근에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저지를 위한 시민대상 거리서명 운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위스와 프랑스의 농정에서 단초를!

첫 번째 대책은 스위스의 농업 정책 및 농산물 소비 지원 정책과 프랑스의 농산물 제값 받기 제도화를 벤치마킹하는 것이다. 스위스 농업 정책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간한 <세계농업> 제220호(2018년 12월호)에 상세하게 나와 있다. 스위스 농업인구 비중은 약 3%다. 소규모 가족농 위주의 농업구조에다 농업생산액은 전체 산업 생산액의 1%에 불과하다. 따라서 수입 농산물에 비해 가격경쟁력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다. 스위스의 농정 패러다임 전환은 우루과이 라운드가 촉발시켰다. 대표적인 정책 수단은 직접지불제와 생산기반 정비 및 농산물 소비지원정책이다.

스위스가 농정 패러다임을 전환한 바탕에는 농민과 소비자의 연대 및 시민운동의 노력이 있었다. 농민과 소비자가 연대해 농업 의제의 정치적 중요성을 확장하는 한편, 시민운동을 전개하면서 얻은 국민의 지지와 공감이 패러다임 전환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농촌 유지, 안전한 먹거리 생산, 생태환경 보전 등 국토와 농산물의 가치를 높이는 농업인에게는 경제적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 이와 함께 그들의 삶의 질을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는 것에 국민들이 공감한 결과, 직불금을 포함한 농업예산으로 연방정부 총예산의 5.5%가 편성되고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 2022년 농업예산 비중은 2.8%이다. 스위스의 현 농정은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발굴하고 장려하기 위한 정책 인센티브 개발과 제도화에 역점을 두고 있다.

농업 강국 프랑스는 대형 유통업체들의 횡포가 문제였다. 상습화된 농산물 가격 할인과 무리한 판촉 행사로 농가 부담이 가중되고 농민의 소득 기반이 크게 위협을 받았다. 과도한 할인행사는 유통구조를 왜곡하고 결국 소비자에게 그 피해가 간다. 정상적으로 농산물을 구매한 소비자도 손해를 봤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지나친 농산물 가격 경쟁으로 농민은 빈곤해지고, 프랑스 농식품산업 전체의 경쟁력도 떨어졌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는 2017년 농민단체·식품유통업체 등과 함께 '푸드 컨벤션(Food Convetion)'을 결성했다. 여기서 농산물 생산가격을 기초로 판매가격을 결정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처럼 생산비용에 기반을 둔 농산물 가격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프랑스는 농산물 제값 받기 제도화에 성공했다.

프랑스 예에서 주목할 것은 농산물 가치의 적정한 분배에 주력했다는 점이다. 농민들의 정당한 소득 보장을 위해 유통업체와의 거래 협상에서 농민단체가 판매가격을 제안하도록 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농민이 아무리 열심히 생산을 해봤자 가격 결정권을 갖지 못한다. 뼈저리게 아픈 현실이다. CPTPP 가입을 앞두고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가 나서서 농업 부문 피해 최소화를 위한 농업 가치 국민공감대 형성 '먹거리국민총회'라도 개최해야 하지 않을까.

'저탄소발자국 및 가치소비' 지원정책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두 번째 대책은 '가까운 먹거리 저탄소발자국' 표시 확대와 홍보, 대·중·소 모든 단위의 공동체 지원농업 및 가치소비 지원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MZ세대를 중심으로 가치소비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성장관리 앱 '그로우'가 MZ세대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79%가 자신을 가치소비자라고 응답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펴낸 <2021 MZ세대 친환경 실천 및 소비 트렌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MZ세대의 88.5%는 환경문제가 심각하다고 여긴다. 환경을 생각해서 '가치소비'를 하는 채식 인구가 MZ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환경문제에 민감한 소비자들이 증가하면서 제품의 탄소 배출량 정보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저탄소 소비문화 확산을 위해 2009년부터 시행된 탄소성적표지제도(온실가스 라벨링)와 푸드 마일리지(Food Mileage) 제도를 보다 광범위하게 실시할 필요가 있다. 푸드 마일(Food Miles)은 먹거리가 생산지에서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이동 거리를 뜻하며, 푸드 마일리지는 식재료가 생산, 운송, 소비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부담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사용된다(환경용어사전).

저탄소 소비문화 확산을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중국에서 코로나19 이후 뜨고 있는 커뮤니티형 공동구매 방식인 '지역공동구매'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지역 주민들이 구매단을 만들어 식재료 등을 공동 구매하는 방식이다. 지역공동구매 회원은 플랫폼을 통해 구매를 하고, 공급업체는 지역공동구매단 단장이 지정한 장소로 배송한다. '한살림' 초기에 공동체 단위로 주문하고 배송된 식재료 등을 공동체 구성원끼리 나눴던 것과 유사하다. 또한 유럽에서 활발하기 이루어지고 있는 '공동체지원농업(CSA:Community-Supported Agriculture)'과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공동체 단위 주문은 물류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최근 서울에서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식의 공동체지원농업이 꿈틀거리고 있다. 강남, 송파 지역 두 곳이다. 지역 커뮤니티가 꾸러미 단위로 식재료를 주문하면, 농부들이 정해진 장소로 꾸러미와 제철 농식품을 가져온다. 거기서 소규모 장터도 열고, 꾸러미를 나눠 가져가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송파는 아름다운 가게 앞, 강남은 못골도서관 앞에서 열렸다. 강남·송파와 가까운 경기도 양평 '두물뭍 농부의 시장'의 농부들이 참여했다. '가까운 먹거리 저탄소발자국'을 실현하는 이러한 공동체지원농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참여하는 농민에게는 저탄소직불금 지급과 운송비 지원을, 시민에게는 탄소마일리지 부여를, 운영단에게는 재사용 꾸러미 박스 지원과 함께 '저탄소농식품 직거래 코디네이터' 육성 및 운영비를 지원해야 한다.

공동체지원농업에는 생산자와 소비자 간 농산물의 공정가격 및 가치가격에 대한 동의와 공감이 내포되어 있다. 일반 농산물의 대단위 계약재배 또한 공정가격 및 가치가격을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공동체지원농업과 대단위 계약재배는 '생산과 소비는 하나'이며 '저탄소농식품 직거래'라는 개념을 소비자에게 인식시켜 가치소비의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나아가 CPTPP로 밀려들어 올 수입 농산물과 국내산 농산물의 가격 경쟁에서 벗어나 지역산 농산물 인지 및 선호 분위기가 확산할 수 있게 된다.

지역단위 외에 도매시장 단위의 공동체지원농업도 추진 중에 있다. 사례는 해남군농민회와 시장도매인의 계약재배다. 해남군농민회 소속 농가가 생산하는 배추, 양파, 마늘 등의 품목이 재배 대상이다. 강서시장 시장도매인들이 지역 마트 주문물량을 미리 파악하여 계약재배하는 방식이다. 이는 최저생산비를 보장하는 신뢰 거래가 바탕이 되어야 가능한 방식이다. 지방자치단체는 운송비 및 포장비 일부를 지원하고, 강서시장을 관리하는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브랜딩 및 마케팅을 지원하는 다자간 협력 공동체지원농업이라 할 수 있다.

공동체지원농업 계약재배 농산물의 공정가격 산출에는 몇 가지 방식을 참고할 수 있다. 좋은 예시로는 학교급식 친환경농산물 가격 협상과 생활협동조합의 가격 협상 방식이 있다. 또한 농촌진흥청에서 제시하고 있는 경영비와 통계청에서 발간하는 직접생산비를 참고하여 현실에 맞는 생산비 및 경영비를 산출하고 가격을 협상할 수 있다. 2017년 2월부터 농림축산식품부 고시로 시행하고 있는 '계약재배 채소류 하한가격 예시'를 참고할 수도 있다. 계약재배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장려하고 있으므로 적극 활용하자.

국제 곡물 가격이 치솟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를 무시할 수 없으나, 기상이변 등으로 인해 갈수록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 게다가 우리는 곡물자급률이 20% 이하로 떨어진 상황에서 CPTPP 가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로 인한 농업피해를 최소화하려면 공공이 나서서 '저탄소발자국 및 가치소비' 지원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 또한 가치소비 진작과 선한 영향력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하고 먹거리 회복력을 높이는 의제를 던질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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