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 없는 농촌의 탄소중립은 불가능하다

[초록發光] 농정 변화가 곧 사회 패러다임 변화다

지난 10월 정부가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 농축수산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8년 2,470만 톤 대비 2030년 1,800만 톤으로, 감축목표는 670만 톤(27.1%)으로 잡혔다. 그런데 농축수산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근 30년 이상 2천만 톤을 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감축목표는 쉽지 않은 과제이다.

더구나 농축수산 부문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과제만이 아니라 기후위기로 초래될 식량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곡물자급률을 올려야 하는 과제까지 떠안고 있다. 농축수산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원 비중이 직접적인 에너지 사용보다 농작물 재배와 축산분뇨, 폐기물 매립 등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은 다소 모순되는 과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이다. 어려움은 이것만이 아니다. 지방소멸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인구가 빠르게 줄어드는 지역은 비수도권 농어촌지역이다. 그렇다면 누가 농어촌 탄소중립의 주체가 될 것인가?

물론 정부 안에서는 축산의 경우 가축분뇨자원순환이나 조사료 개선이 대안으로, 농수산 부문은 영농법 개선과 화학비료 저감, 저탄소·무탄소 어선 보급 등이 대안으로 얘기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기술적인 대안은 농촌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유기농업으로의 전환은 대체 누가 맡을 건가? 저탄소 어선에는 누가 오를 건가? 경축순환농법을 위해 분뇨와 부산물을 자원화하고 이를 다시 농사에 쓸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농림어업총조사가 실시된 2010년 이래 농림어가 인구는 2010년 348만 명에서 2020년 265만 명으로 83만 명이 줄었고, 2020년 기준으로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41.7%이다. 자, 2030년까지 농어업의 탄소중립을 추진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단순한 숫자 대비로도 어려움을 알 수 있다.

사람만이 문제는 아니다. 2020년 농가소득은 평균 4,503만 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지만, 도시근로자 가구소득의 62.2% 수준이다. 그런데 이 농가소득에서 농업소득이 아닌, 농업외소득이나 이전소득 비중이 70%에 달한다. 즉 농사만으로는 생활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는 게 불가능하다. 더구나 하위 90%의 중·소농과 상위 10% 대농의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고, 농촌 내 소득분위를 비교하면 상위 20% 농가소득이 하위 20% 농가소득보다 10.9배나 높다. 즉 양극화는 도시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농법을 바꾸며 이득을 취할 수 있는 농민은 누구일까? 기술전환 중심의 탄소중립정책은 외려 농촌의 양극화를 심화할 수 있다.

제조업을 비롯한 산업계에서의 정의로운 전환이 노동자의 일자리를 보전하고 정의로운 전환을 목표로 삼는다면, 농업에서의 정의로운 전환은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할까? 지금은 목표조차 세워져 있지 않다. 제조업과 같은 산업의 경우 일자리가 수치로 계산되어 대대적인 정부 지원을 요구할 근거가 되지만 농업의 경우 계열산업화되거나 고용관계를 발생시킴에도 자영업으로 여겨진다. 그러니 전환에 대한 지원도 부족하고 양극화를 완화할 방안도 없다.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은 정부정책에서 빠져 있고 농촌의 현실을 고려한 지원책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농어민단체들은 정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단순히 탄소중립위원회에 농민의 자리가 없었다는 점만이 문제가 아니다. 한편에서 식량자급률과 식량주권을 얘기하면서도 정부정책에는 농업의 자리가 없고, 농민단체의 요구는 무시된다. 지난 12월 10일에도 기획재정부는 조류 인플루엔자(AI)가 발생해 계란 가격이 오를 거란 예측이 나오자 내년 6월까지 계란의 무관세 수입을 허용했다. 물가 안정 명분이 농정의 필요성을 언제나 압도한다. 농민이 농사를 지어서 생활할 수 없는 나라에서 농업의 탄소중립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나마 농민기본소득이나 농민수당이 얘기되고 있지만 제대로 된 농정이 수립되지 않는 이상 언 발에 오줌누기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임에도 농림축산식품부의 2022년 예산안은 무척 태평스럽다. 식량자급, 탄소중립, 지방소멸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함에도 농림부의 예산은 전체 예산의 2.8% 수준인 16조 6천억 원 정도이다. 총 12개, 824억 규모의 신규사업이 있지만 주요 사업은 기술개발이다. 이 예산안에서 우리는 어떤 정책의지를 엿볼 수 있을까? 여전히 정부정책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다음 정부를 책임질 후보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윤석열 후보의 농업정책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는데, 그동안의 발언만 보면 농업을 하나의 산업으로만 보고 경자유전의 원칙마저 훼손하고 있다. 한마디로 농정에 대한 고민이 없다. 그나마 이재명 후보는 유전자변형농산물 완전표시제 도입 등 먹거리 정책을 세우고 농민기본소득을 제시하고 있지만, 농업보다는 먹거리, 식량안보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그리고 농정보다는 신성장 동력에 무게중심이 있다.

그나마 농정이라 부를만한 정책을 제시하고 있는 쪽은 심상정, 김재연 후보이다. 심상정 후보는 모든 농어민에게 월 30만 원 기본소득 지급, 농어민을 준공무원으로 대우, 농지총량제 실시, 국가식량주권위원회 설치, 먹거리기본법 제정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김재연 후보도 청년에게 최대 3억 원의 영농정착금 지원, 불법투기 농지 무상 임대, 농민이 농산물 가격을 결정할 농민기본법과 매월 150만 원의 농민수당법 제정, 에너지 공영화, 주요농산물 공공수급제, 농업재해보상법 제정 등을 제시했다. 두 후보의 공약이 농어촌에 필요한 여러 정책들을 반영하고 있지만, 탄소중립을 고려한 농정의 변화를 유도하려면 몇 가지 고민이 더 필요하다.

첫째, 다른 산업과 비교할 때 농업에서는 기술만큼 사람의 몫이 중요하고 전환은 더 많은 일손을 필요로 한다. 그런 점에서 사람에 대한 지원은 필요한데, 새로 들어올 사람만큼 이미 살고 있는 사람에 대한 적절한 지원이 특히 중요하다. 이미 생활하는 사람들의 존엄과 건강, 생활 유지를 위한 기본 인프라를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떠나지 못해 농어업에 종사하는 무능한 사람들이 아니라, 꼭 필요하고 소중한 터전을 지키는 사람에 대한 지원이라는 관점이 명확해져야 한다. '열외국민'이라는 한탄 속에 농정이 어떻게 자리잡을 수 있는가? 어떤 위기이든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적응할 주체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농촌에는 주체가 없진 않지만 무기력이 팽배하다. 이 무기력함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전환이 불가능하다.

둘째, 도시와 농촌 모두의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미 농업은 규모와 품종에 따라 다층화되어 농민이라는 단일군으로 묶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계약관계에 종속된 농민의 처지나 이주노동자들로 대표되는 농업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산업부문의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자들과 비교되지 못할 정도로 열악하다. 이런 열악함은 일시적인 지원책으로 바로잡기 어렵고 생산-유통-소비-순환의 체계가 바뀌어야 개선이 가능하다. <푸도폴리>의 저자 위노나 하우터가 제안하듯이, 기본적으로 "과잉 생산을 장려하고 대형 농기업에 득이 되는 농장 프로그램을 유지하는 대신 상식적인 공급 관리 정책과 가격 안전망을 복원해야"하고 "망가진 먹거리 체계의 개선이 우리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에 대처하는 더 광범위한 전략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셋째, 식량위기 극복은 농촌만의 과제인가? 기후위기가 초래할 식량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면 농촌만이 아니라 도시에서도 농업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먹거리 체계의 탄소발자국을 줄이고 기본적인 자급체계를 마련할 뿐 아니라, 농업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은 체험을 통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도시는 농업과 계속 무관할 수 없고, 도시농업은 주말텃밭을 넘어 먹거리의 공공성과 기본권을 강화하는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넷째, 탄소중립은 단기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계속 추진되어야 할 정책이다. 그렇다면 이와 관련된 체계적인 교육과 농업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특색을 잃고 사양화된 특성화고 교육만이 아니라 일반고에서도 농업을 다룰 방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농정은 단지 농업 부문의 특화된 정책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패러다임의 변화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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