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 늦가을 폭우가 내린 지난달 19일,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A 중학교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했다. 행정실장 B씨가 교사동 옥상에 설치된 수배전반 교체를 위해 모델 번호를 촬영하던 중 빗물이 튀어 감전됐다. B씨는 이 사고로 3~4도 중증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다. B씨의 가족은 의료진으로부터 '양 팔의 화상이 심각해 두 손을 절단해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행정실장은 학교에서 교육활동 지원을 위해 필요한 행정 업무를 수행한다. B씨는 회계출납 업무를 담당했다. 본연의 업무와 달리 B씨는 시설 관리 업무를 수행하던 중 사고를 당한 셈. 행정실장에게 시설 업무를 도맡아 처리하게 하는 학교는 A 중학교 뿐일까?
경기도 다른 학교에서 행정실장으로 일하는 이지호(가명) 씨는 행정실장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고라고 말했다.
시설관리 업무와 공사 감독 업무 도맡는 행정실장
2000년대 초반 교육행정직 공무원으로 임용된 이 씨가 일하는 학교 행정실은 급여, 회계, 비품 구입 등 교육활동 외 학교 행정 업무의 대부분을 수행한다.
시설관리 업무도 그 중 하나다. 이 씨는 "학교 문이 삐걱거리거나 화장실에 물이 새면 가서 상황을 살펴 보고 수리업체 섭외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일이 업무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이 씨는 작년 여름 B씨와 같은 수배전반 교체 업무를 하기도 했다.
학교에 필요한 공사를 발주하고 이를 관리‧감독하는 것도 행정실 업무다. 이 씨는 "행정실장이 하는 시설관리 업무 중 공사 관련 업무 비중이 가장 크다"며 "특히 방학 때마다 공사가 없는 학교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학교의 시설관리 업무와 공사 업무는 꾸준히 늘어왔다. 학교 시설이 노후화돼 이를 정비할 필요성이 커진 탓이다. 석면의 유해성이 알려진 뒤부터는 관련 설비를 교체했다. 오래된 냉난방 장치를 바꾸는 것도 행정실의 주요 업무다.
행정실에 일이 쏠리면서 학교는 시설관리직 인력 충원을 소홀히 했다. 이 씨는 "시설관리직 중 고령자가 많아 인력이 자연 감소했다"며 "(시설관리직 공무원이) 정년퇴직을 해도 충원이 없기에 시설관리직이 아예 없는 학교도 많다"고 말했다.
학교 행정실장, 전문가 아닌데 안전교육도 받지 못했다
자연스레 시설관리 업무에 전문성이 없는 행정실장들이 대부분의 일을 떠맡았다. 이 씨는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행정실장이 일반직 공무원으로 임용 준비를 했고, 시설관리나 공사 감독의 전문가는 아니다"며 "공사 내용을 숙지하는 등 나름대로 공부도 하고 준비도 하지만 한계가 느껴질 때가 많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행정실장들에게 안전교육이 제대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초중고등학교 노동자는 산안법상 '안전보건교육', '안전보건관리체제' 관련 조항을 적용받지 않는다. 시설관리, 조리 등 '현업업무' 종사자로서 고용노동부 장관이 정해 고시하는 사람만 해당 조항의 적용을 받는다. 올해 초 고용노동부는 '현업업무' 종사자를 정하는 고시를 발표한 당시, 경기도 교육청은 자체 지침으로 행정실장을 '현업업무' 종사자에서 제외했다.
B씨 사고 이후 경기도 교육청은 지난 18일 △ 학교 시설물 점검 시 각 교육지원청 단위로 설치된 교육시설관리센터 담당 직원 동행 △ 교직원 안전 교육 내실화 등 대책을 공문 형태로 발표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절실히 필요로 하는 시설관리 인력 충원 관련 대책은 담기지 않았다. 학교에 급박한 시설관리 업무를 행정실장에게 떠넘기는 구조는 그대로 둔 셈이다.
이 씨는 이런 대책으론 산재사고 예방에 어림없다고 본다. 이 씨는 "감전 사고 소식을 듣고 너무 안타까웠고 남 일 같지 않았다"며 "경기도 교육청이 '개인이 실수해서 사고가 난 거야'라고 보지 말고 행정실장의 위험한 업무 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 안전 위해서는 시설관리 공사감독 등 위한 전문인력 충원 필요"
B씨 사고 이후 행정실장들이 가입해있는 경기도교육청일반직공무원노동조합(경일노)은 경기도 교육청을 상대로 학교 행정실장의 산재 사고 재발 방안 수립을 촉구하며 교육감 면담 등을 요청하고 있다. 이들의 주요 요구는 '시설관리 전문 인력 충원'이다.
이혜정 경일노 위원장은 "안전 관련 법규가 강화되고 시설이 노후화되며 학교 시설관리 업무는 늘어나고 있다"며 "학교라는 공간은 아이들이 같이 생활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시설이나 안전과 관련한 전문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당장 전문 인력을 충원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단계적인 충원 방안 등을 두고 소통이 필요하다"며 "경기도 교육청과 실질적인 안전 대책을 두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하루빨리 마련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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