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쿠팡발 코로나 피해자대책위원회(쿠팡대책위)' 활동가들이 <쿠팡 코로나 노동자 인권실태 조사 보고서(쿠팡보고서)>를 발간했다. 18명의 활동가로 구성된 조사단이 24명의 쿠팡 노동자를 인터뷰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불안정한 노동'과 '노동자의 무권리'를 기초로 하는 쿠팡의 노무관리가 집단감염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 <쿠팡보고서>의 골자다. 이를 바탕으로 쿠팡대책위 활동가들이 쓴 기고글 4편이 <프레시안>에 실리기도 했다.
<쿠팡보고서> 발표 뒤 쿠팡은 자사 뉴스룸 등을 통해 이를 반박했다. 쿠팡의 주장은 다시 여러 경로로 퍼졌다. 처음은 아니었다. 쿠팡은 그간 코로나19 방역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반박했다. 지난 11월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가 쿠팡 대구 물류센터 단기직 사망이 산재라고 주장했을 때도 쿠팡은 뉴스룸을 통해 이를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그간 쿠팡의 주장에 대한 검증은 잘 이뤄지지 않았다. <프레시안>이 쿠팡의 노동 및 방역과 관련해 쿠팡이 주장한 주요 내용의 신빙성을 살폈다. 총 네 편으로 준비한 기사 중 둘째 편에서는 노동과 관련한 쿠팡의 주장을 살폈다.
노동과 관련한 <쿠팡보고서>의 주요 주장은 다음 두 가지다.
첫째, <쿠팡보고서>는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가 강도 높은 노동을 하고 있다고 묘사한다. 노동자의 노동 강도를 높이는 데는 'UPH(Unit per Hour, 시간당 생산량) 측정'이라는 도구가 사용된다. 관리자들은 자신이 담당한 모든 노동자의 UPH를 알 수 있다. 관리자들은 이를 올리기 위해 애쓴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쉴 틈 없이 일하게 된다.
둘째, <쿠팡보고서>는 쿠팡 노동자들이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놓여 있다고 전한다. 쿠팡 노동자는 대부분 단기직(일용직)이나 3개월, 9개월, 1년 계약직으로 일한다. 고용 기간이 정해져있고 다음 계약을 걱정해야 하는 노동자가 회사에 불만이나 개선점을 말하기는 어렵다. 결과는 노동자의 '무권리 상태'다.
이에 대한 쿠팡의 반박을 살펴보자.
쿠팡이 말하는 노동강도 관리의 근거, 노동시간 주 52시간 준수
쿠팡은 노동자의 노동강도가 높아지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가장 중요한 근거는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 준수다. 지난 10월 16일 자사 뉴스룸에서 쿠팡은 '물류센터는 주52시간 근무 예외사업장이지만 단기직까지도 주 52시간 이상 근무하지 못하도록 근무시간을 모니터링한다'고 적었다.
쿠팡의 주장대로 물류센터는 주52시간 근무 예외사업장이 맞다. 쿠팡 측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법률에 따라 노사 대표자 협의회를 통해 주 52시간 이상 근무 서면 합의를 완료했지만 주 52시간 이내로 노동시간을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주 52시간 노동이 노동강도를 재는 유일한 척도가 될 수 없다는 데 있다. 노동 강도는 시간만이 아닌 근로환경, 작업 내용, 휴식시간, 업무강도 등 복합적인 요소들이 합쳐져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노동강도가 높아지지 않도록 관리한다'는 쿠팡의 주장에는 온전한 진실이 담겨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프레시안>이 취재한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노동강도에 대한 한결같은 반응은 '물 마실 시간이나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쁘다'는 것이었다. 노동자들은 '하루 1000개 포장', '하루 2만5000 ~ 3만 보'와 같은 수로 자신의 업무량을 표현했다.
쿠팡은 물류센터 노동자의 노동 강도를 일정 수준으로 끌어올리려 노력한다. 대표적인 장치가 주문받은 물품을 박스에 담는 집품 노동자와 박스에 담긴 물품을 포장하고 송장을 붙이는 출고 노동자의 업무량을 측정하는 것이다.
이때 UPH라는 값이 사용된다. 포장 노동자를 예로 들면, 1시간 동안 100개의 물품 포장을 완료했다면 UPH는 100이다. 자신의 단말기에 업무량이 실시간으로 수치화되어 표시되고 기록되니 집품 노동자와 출고 노동자는 업무 시간 내내 끊임없이 더 빠르게 일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여기에 관리자의 감독이 더해진다. 관리자 역시 단말기를 통해 집품 노동자와 출고 노동자의 UPH를 보고 있다. UPH가 낮은 노동자는 관리자로부터 주의를 듣는다. 포장 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경우 관리자 바로 앞에 있는 라인으로 가 일하게 되기도 한다.
쿠팡은 UPH를 통한 업무관리에 대해 <프레시안>에 "UPH는 물류 및 제조업체에서 공정 관리를 위해 사용되는 일반적 개념"이라며 "UPH로 업무를 독려하거나 불이익을 받는 일은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프레시안>이 취재한 노동자 중에는 UPH가 낮은 노동자에게 험한 말을 하거나 바구니를 집어던지는 관리자를 봤다는 노동자도 있었다.
집품 노동자와 출고 노동자의 높은 UPH는 이들과 다른 업무를 하는 노동자의 바쁜 노동을 방증한다. 빠른 포장을 위해서는 이를 위해 필요한 부자재의 빠른 공급이 필요하다. 빠른 집품을 위해서는 빠른 물품 하차 작업이 필요하다. 물류센터의 모든 노동은 유기적으로 연결돼있다.
결국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의 작업속도와 이를 감독하는 체계 면에서 보면, "근로 강도가 높아지지 않도록 관리한다"는 쿠팡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는 어렵다.
'상시직' 채용 늘린다는데 '정규직' 비율은 왜 3%일까
쿠팡은 자신들이 물류센터에서 불안정한 고용을 양산한다는 주장을 부정한다. 주요 근거는 일용직을 뜻하는 '단기직' 노동자에게 매월 '상시직' 전환 문자를 보낸다는 것이다.
먼저 쿠팡이 '정규직'이 아닌 '상시직'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이 취재한 노동자들은 쿠팡 물류센터 단기직 노동자가 '정규직' 전환이 아닌 '계약직' 전환 의사를 묻는 문자를 받는다고 했다.
실제로 쿠팡이 쓰는 '상시직'을 흔히 사용되는 말로 풀면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이다. 일용직 노동자를 3개월, 9개월, 1년 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쿠팡이 이야기하는 '상시직' 채용 확대다. 결국 쿠팡의 '상시직'은 고용기간과는 관계가 없다. 쿠팡 측은 이에 대해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한달 간 16일 이상 일하는 노동자를 상시직이라고 하는 법률 용어를 그대로 쓴 것"이라고 해명했다.
쿠팡은 9개월 계약직에서 1년 계약직으로의 전환이 어렵다는 <쿠팡보고서> 주장도 반박한다. 9개월 계약직에서 1년 계약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은 90%로 3개월 계약직에서 9개월 계약직으로 전환되는 비율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1년 계약직 전환 비율과 관련한 주장은 전체 데이터를 갖고 있는 쿠팡의 주장이 정확할 가능성이 높다. 단, 쿠팡은 1년 계약직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는 노동자의 비율은 공개하지 않는다. 쿠팡 측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문제 없는 인원은 다 무기계약직이 된다"면서도 "정확한 비율을 확인해주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쿠팡에서 무기계약직 노동자로의 전환 비율이 높지 않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는 자료는 있다. 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책단에 따르면, 지난 5월 집단감염 발생 직후 쿠팡 부천물류센터 인원 3790명 중 정규직은 98명뿐이었다. 게다가 계약직은 936명인 반면, 일용직은 2588명이나 됐다. 나머지는 외주(120명)와 퇴직자(48명)가 채웠다.
계약직 중 일부에 무기계약직이 포함되어 있다 하더라도 쿠팡이 안정적 일자리를 늘리려 노력하고 있다면, 68%에 달하는 일용직 고용 비율은 나오기 어려운 수치다.
쿠팡이 진정으로 노동자의 좋은 노동환경을 위해 노력하려 한다면
쿠팡은 법정 노동시간을 준수하는 한편, 'UPH 측정'이라는 노무관리 도구를 활용해 물류센터 노동자의 노동 강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려 노력한다.
또, 쿠팡은 물류센터 고용의 상당 부분을 불안정 일자리로 채우고 있다. 실제로 단기직에서 3개월 계약직, 9개월 계약직에서 1년 계약직으로 이동하는 비율은 90%에 달하지만, 1년 계약직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이동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일용직이든 1년 계약직이든 고용이 불안정하기는 마찬가지다.
바쁜 노동을 강제하는 강압적인 관리자를 마주하고 매 계약 때마다 다음 번 재계약을 걱정해야 하는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조건이나 회사의 방역 조치에 대해 원하는 바를 제대로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쿠팡보고서>의 쿠팡 노동자들이 '무권리 상태'에 놓여 있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에는 일리가 있다.
쿠팡대책위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은 "쿠팡의 노동강도가 심하다는 이야기는 유튜브나 검색창에 쿠팡 알바만 쳐봐도 무수하게 쏟아지고, 실제 일을 해본 노동자도 열이면 열 다 말하는 것"이라며 "이게 사실과 다르다면 쿠팡이 실제 기준이 되는 UPH 등을 시민사회에 제출해 어느 정도 노동량을 설계하는지를 설명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전 연구원은 또 "쿠팡이 자신들이 말하는대로 안정적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려면 일단 정규직으로 오래 일하고 싶을 정도의 노동강도와 임금이 있어야 한다"며 "정규직 전환 과정도 승진 절차처럼 운영해 계약직 노동자를 통제하는 장치로 쓸 게 아니라 3개월이든 6개월이든 일해본 노동자가 적성에 맞으면 정규직이 될 수 있는 정도로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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