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업무보고를 위해 국회에 출석한 최재형 감사원장에게 집중 공세를 퍼부었다. 월성 1호기 영구중단 결정 감사 과정에서 최 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득표율을 언급했다는 등의 보도가 빌미가 됐다.
민주당 의원들은 29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최 원장에게 해당 발언을 한 것이 사실인지, 배경이 무엇인지 물으며 그를 강하게 질책했다. "감사원장 자격이 없다"는 비판, "사퇴하세요!"라는 압박까지 나왔다.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오전에 있었던 여당의 법안 강행처리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오후 회의에 불참한 가운데, 열린민주당 김진애 의원도 여당의 공세에 가세하면서 최 원장은 12명의 법사위원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다.
민주당 소속 윤호중 법사위원장도 위원장으로서 기관장에게 입장을 요구하는 형식을 빌려 비판했다. 최 원장이 의원 질의에 답변하려다 발언을 제지받은 적도 여러 번이었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최 원장에게 "'대선에서 41% 밖에 못 받은 대통령의 국정과제가 국민의 동의를 받은 것이냐', '대통령이 한수원장 일을 대신 하고 있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느냐"면서 "'대통령이 시키면 다 하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느냐"고 물었다.
박 의원은 "총선 사나흘 전에 연속해서 세 번이나 대통령을 언급하면서 직권심사를 했어야 했느냐"며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오해할 수 있는 소지에 대해 감사원 직원들이 불편해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 뜻이 그게 아니라고 아무리 강변한다 한들 대통령 공약을 부정한 것 아니냐"고 했다.
소병철 의원은 "저 분(최 원장)을 저기에 앉혀놓고 질문을 해야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법사위에서 정치적으로 편향된 감사원장을 상대로 질문하는 것이 맞느냐"고 최 원장을 '정치적으로 편향된 사람'으로 규정했다. 소 의원은 "감사원장이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냐"며 "적격이 아니다"라고 했다.
송기헌 의원은 "최 원장의 공정성은 이미 상당한 의심을 받고 있다"며 "총선을 앞두고 연속해서 감사를 연 것도 한 쪽으로 치우진 입장을 보인 것이다. 공정성이 흔들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신동근 의원은 "대선 불복이라는 반헌법적, 위헌적 발상을 하고 있다"며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고, '원전 마피아'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고 최 원장을 몰아붙였다. 이어 "대통령 국정 운영이 불편하고 맞지 않으면 사퇴하세요! 사퇴하시고 정치를 하시든지 비판을 하시든지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언성을 높였다.
최 원장은 자신이 한 것으로 알려진 발언에 대해 거듭 해명했다. 최 원장은 지난 4월 감사 과정의 일환으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신문하는 과정에서, 백 전 장관이 밝힌 월성 1호기 영구정지 결정한 근거에 대해 자신이 되묻는 과정에서 해당 발언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최 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백 전 장관은 당시 월성 1호기 폐쇄 방침의 근거를 설명하면서 "월성 1호기에 문제가 많다는 것은 전 국민이 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최 원장이 "저는 잘 알지 못한다.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반론을 했다. 그러자 백 전 장관은 다시 "그 내용은 문 대통령 대선 공약에 포함됐고, 대선(에서 문 대통령이 당선됨)을 통해 국민적 합의가 도출됐다"고 했다.
문제의 발언은 이후에 나왔다. 최 원장은 자신이 "그 내용이 대선 공약에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국민적 합의가 있었다고 할 수 있느냐"고 다시 되물었다고 했다. 백 전 장관이 여기에 대해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은 사안"이라고 말하자 최 원장은 "문 대통령께서 41%의 지지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과연 국민 대다수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최 원장은 이 대화 내용을 전하며 "이게 관련된 내용의 전부"라고 했다. 그는 "나중에 감사원 녹취록을 확인하면 그 내용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며 "대통령 득표율을 들어 국정과제 정당성을 폄훼하려 한다는 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고 그럴 의도도 없었다"고 했다.
또 최 원장은 자신이 '대통령이 시킨다고 다 하느냐'는 발언을 했다는 백 전 장관의 주장에 대해서는 "그런 기억이 없어서 녹취록을 다 살펴봤는데 기록돼 있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최 원장은 "저도 대통령님께 임명받았다"고 자신이 대통령의 정치적 정통성을 공격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강조하면서 "다만 공약, 국정과제도 적법 절차와 합리적 근거에 따라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 감사원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정치적 중립성에 반하는 처신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다만 그는 '득표율 41%' 등의 발언과 관련해 "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정치적인 논란이 됐다는 점에 대해서 부적절한 부분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고 한 발 물러서면서 "제가 말한 전체적 취지를 봐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문 대통령이 2017년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언급한 데 대해 자신이 '한수원 사장이 할 일을 대신 한 것'이라고 발언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는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구체적 규정을 자세하게 고려하기보다 에너지 전환 정책의 큰 틀에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말씀한 것인데 제가 불필요하고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유감을 표했다.
최 원장은 자신이 찬핵론자여서 감사를 특정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취지의 민주당 의원들의 주장에는 "제가 원전에 대해 특정한 방향의 의견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그는 자신의 가족 일부가 핵발전 관련 업계에 종사하고 있어서 제척 사유가 된다는 지적에는 "제 동서 중 1명이 원자력연구소 연구직에 재직하고 있다"고 시인하면서도 "그 업무가 현재 감사 사항인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의문을 갖고 있고, 제척당하거나 스스로 회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편 최 원장은 청와대로부터 김오수 법무차관을 감사위원으로 인사 제청을 해 달라는 요청이 왔지만 자신이 '정부 편이라 안 된다'며 거부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제가 그렇게 표현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지난 4월부터 감사위원 한 자리가 공석인데 후속 인사 제청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이유를 묻자 그는 "(인사 관련) 자세한 내용은 답변드리기 어렵다"고만 했다.
이날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해당 보도와 관련, "인사 관련 사안은 확인해줄 수 없다"면서도 "감사위원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해 묘한 뉘앙스를 남겼다. 대통령이 인사권자임을 강조함으로써 최 원장에게 간접적으로 불편함을 표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감사원법 5조 1항은 '감사위원은 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정하고 있다.
여권에서 최 원장에 대한 비판론이 제기되는 것은, 최근 언론 보도와 맞물려 주목된다. 일부 언론은 감사원이 월성 1호기 영구정지 결정이 잘못된 것이라는 취지의 내부 결론을 이미 내렸다고 보도했고, 이에 앞서 다른 신문에서는 백 전 장관을 인용해 최 원장이 문 대통령 대선 득표율을 운운하며 국정과제 정통성을 폄하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 2017년 12월 7일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최 원장을 신임 감사원장으로 지명했다고 밝히며 "최 후보자는 1986년 판사 임용 후 30여 년간 법관으로서의 소신에 따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익 보호,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노력해온 법조인(으로서), 감사원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수호하면서 감사 운영의 독립성·투명성·공정성을 강화하고, 공공 부문 내의 불합리한 부분을 걷어낼 적임자"라고 했었다.
월성 1호기에 대한 감사원 감사는 감사원이 직권으로 실시한 것이 아니라 국회가 여야 합의로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9월 30일 국회는 '월성1호기 조기폐쇄 결정의 타당성 및 이사회 이사들의 배임행위'에 대한 감사원 감사요구안을 여야 합의로 의결했다. 당시 본회의 표결 결과는 재석 203인 중 찬성 162인, 반대 16인, 기권 25인이었다. 작년 9월 당시 국회 의석은 민주당 128석, 자유한국당(현 통합당) 110석, 구 바른미래당 24석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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