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그린뉴딜은 '녹색 가면'일 뿐인가

[초록發光] 그린뉴딜 시대, 에너지전환의 녹색 가면

한국판 뉴딜에 그린뉴딜을 포함시키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21대 국회 개원과 함께 세부계획이 마련되고 3차 추가경정예산에도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늦게나마 그린뉴딜을 정책 기조로 삼은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현재로서는 정부와 여당 발 그린뉴딜의 단면만 짐작할 수 있는데, 당장은 토목사업이 축소된 녹색성장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읽힌다. 질문은 많지만 핵심만 꼽자면 이렇다.

한국형 그린뉴딜은 협의의 오래된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비록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국토교통부가 추진하더라도, 환경관리주의와 일자리 창출과 신성장동력 창출의 결합이라는 녹색성장의 익숙한 서사와 일치한다. 따라서 코로나19와 기후위기 대응에 꼭 필요한 원인요법은 요원할 것이고, 국가 전반의 근본 변화를 이끄는 메시지는 주지 못할 것 같다.

그렇다 보니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의 역할은 제외된다. 나아가 국가성격 개조나 새로운 사회계약을 위한 계기적 구상이라는 관점이 없기 때문에 정책사업 위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린 리모델링, 스마트 산업단지, 저탄소 에너지 신산업 등이 대표 정책으로 거론된다.

물론 중요한 정책들이지만 새로울 게 없다. 녹색성장부터 창조경제, 그리고 에너지전환 시기까지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것들이다. 그린뉴딜 프레임에서 관련 사업들의 질적 심화와 양적 확대를 꾀한다는, 정책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녹색국가와 녹색사회로의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입장에서 그린뉴딜을 기획하지 않고서는 사회적, 생태적 요구를 읽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 고백에 불과할 것이다.

에너지전환이든 그린뉴딜이든, 옛것의 모순을 인정하고 반복하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새것이 진입할 공간이 열리게 된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두 사건은 옛것의 부조리가 새것의 녹색 가면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새만금 재생에너지사업 민관협의회

우선 '새만금 재생에너지사업 민관협의회' 논란이 있다. 지난 4월, 새만금개발공사의 육상태양광 3구역 발전사업 공고를 두고 민측위원들이 사업자 공모절차 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현재는 발전사업자 협상단계). 개발공사가 민관협의회 운영규정을 어기고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쟁점만큼이나 의미도 많은 새만금 에너지전환 거버넌스 실험이 이대로 끝날지 우려된다.

2019년, 새만금 재생에너지사업 지역 상생 방안을 합의하고 육상태양광 1구역 발전 사업을 공모할 때까지만 해도 민관협의회가 재생에너지 사업에서 새로운 협의모델로 발전할 가능성을 전망했다. 당시는 해당 사업을 지역 상생 방안으로서 에너지전환 및 에너지민주주의 실현의 주요 수단 중 하나인 재생에너지 이익공유협정(Community Benefit Agreement)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재생에너지를 비롯한 각종 개발 사업에 대한 이익공유협정은 여러 국가와 지역에서 관심을 받고 있으며,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특히 대규모 재생에너지 사업의 경우 지역사회와의 협력과 개발이익 공유를 통해 수용성 향상과 이해당사자의 동의구조 형성이라는 긍정적 기대가 있었다. 이 협정은 재생에너지 개발사업자, 지역사회, 이해당사자들의 자발적 협정에 기초한다. 그리고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강제적 장치를 통해 보장되는데, 지방정부나 중앙정부도 주요 행위자로 참여하기도 한다. 요약하면, 이익공유협정은 의사결정과 이익공유의 두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협정 내용은 계획 수립, 집행, 평가 단계에서 폭넓게 적용된다.

이익공유협정의 추진 원칙과 성공 요인으로 포용성(inclusiveness), 강제성(enforceability), 투명성(transparency), 동맹형성(coalition building), 효율성(efficiency), 성과의 명확성(clarity of outcomes)이 꼽힌다. 이들이 잘 지켜지지 않은 게 현재 새만금이다.

2019년에도 성과만큼이나 후속 과제가 많았지만, 현재 새만금 민간협의회의 경우는 새만금개발청과 새만금개발공사의 입장 변화 없이는 이익공유협정의 실패 사례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전라북도, 군산시, 김제시, 부안군의 지역주도형 태양광사업은 논의를 시작하지도 못하고 있어 현재 교착 상태를 풀 특단의 대책, 특히 중앙정부의 슬기로운 에너지 정치가 필요하다.

▲월성원전 4호기(가압중수로형·70만㎾).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인 맥스터가 포화 상태에 이르러 추가 시설 없이는 조만간 월성원전 1~4호기 가동이 어려워진다. ⓒ연합뉴스

월성원전 맥스터 건설 울산북구 주민투표

다음으로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추가건설 찬반 울산북구 주민투표'다. 핵발전을 둘러싼 주민투표는 2014년(강원 삼척), 2015년(경북 영덕), 2016년(부산 기장)에 이어 현 정부에서 처음으로 준비되고 있다(본 투표 6월 5~6일 예정). 남은 임기 동안 정부 에너지전환 정책의 뇌관이 될지 모를 포화상태의 고준위핵폐기물 문제는 2017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와 닮았지만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박근혜 정부의 고준위핵폐기물 정책 재검토를 담당하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가 출범한 2019년부터 일이 심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원전소재지역과 환경단체들이 배제된 채 구성된 재검토위원회를 해체하고 공론화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울산에서는 2018년부터 시민단체와 주민조직은 물론, 지방 정부와 의회에서도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 공론화 과정과 그 실행기구 구성에 울산이 참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경주만 지역실행기구에 참여하는 것으로 결정됐고, 맥스터 건설여부에 대한 주민투표 청원마저 국가사무라는 이유로 불가하다는 입장이 전달됐다.

지난 4월부터 재검토위원회는 시민참여형 조사절차를 밟고 있다. 영구처분시설과 중간저장시설 확보 등 사용후핵연료 중장기 관리방안에 대해서는 전국공론화를, 월성원전 맥스터 건설 여부에 대해서는 지역공론화를 실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결성된 '월성핵쓰레기 반대 주민투표 울산운동본부'의 민간주도 주민투표가 탈핵단체, 사회단체, 종교단체 등의 전국적 지지와 연대 속에서 준비되고 있다.

핵발전과 석탄발전을 둘러싼 위험경관은 그 사회공간적 영향이 다층적이고 다면적이기 때문에 행정구역의 틀을 넘어선다. 따라서 사회적, 환경적, 경제적 비용과 편익의 규모와 범위를 고려한 의사결정 기준과 방식을 먼저 재검토해야 한다.

사실상 탈핵 로드맵의 큰 방향까지 담았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의 에너지권역(energy region)은 전국단위로 설정되어 있어 발전소 주변지역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이번 사용후핵연료의 경우, 영구처분시설과 중간저장시설은 전국단위로, 월성원전 맥스터 건설은 경주 지역단위로 특정했다. 그런데 울산은 월성핵발전소와 고리・신고리핵발전소 사이에서 핵발전과 고준위핵폐기물에 둘러싸여 있다. 그만큼 울산이 경험하는 핵발전 위험경관의 특이성을 고려해서 비상계획의 대상만이 아니라 의사결정의 주체로서 울산의 에너지권역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따라서 2020년 주민투표는 핵발전과 핵폐기물의 반대・수용, 승인・찬성의 사회적 허가(social licence)라는 슬기로운 정치행위로 인정해야 한다.

4대강사업이 아니라는 소극적 인식이나 기존 정책의 확대편성이라는 제한적 접근으로는 그린뉴딜이 올드딜(old deal)에 그칠 공산이 크다. 에너지전환이 그린뉴딜과 어떤 관계를 맺든지, 에너지전환의 성과와 한계를 성찰해야 전환을 가속화하는 조건을 만들고 그로부터 전환 역량을 키울 수 있다. 새만금 재생에너지사업 민관협의회의 새만금개발공사와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는 새것의 장점이 아니라 옛것의 단점을 취하고 있다.

바야흐로 그린뉴딜 시대가 오고 있다. 그러나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개념의 백가쟁명이 아니다. 바로 지금 이곳의 현안은 외면하고 또 한 번의 색칠놀이에 몰두하는 분주함이다. 재정 동원이나 자본 투자로 에너지전환의 다른 진실을 가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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