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흔든 철탑 위 '인간새' 김용희, 땅 밟다

김용희 "해고는 살인, 노동자 함부로 자르면 안 된다"

삼성 해고 노동자 김용희 씨가 고공농성 355일 만인 29일, 25미터 높이 철탑에서 내려와 땅을 밟았다.

김 씨는 이날 오후 7시경 사다리차를 타고 강남역 2번 출구 앞 폐쇄회로(CC)TV 철탑에서 내려왔다. 김 씨의 손에는 삼성피해자공동투쟁 명의의 삼성 깃발이 들려있었다. 머리에는 '사생결단'이라고 적힌 띠를 두른 모자가 있었다. 빨간 조끼에는 '원직 복직'이라는 하얀 글자가 적혀 있었다.

김 씨와 연대해 온 시민과 과천 철거민, 삼성생명 보험 가입 암 환자 등 삼성 피해자,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이 철탑 아래에서 케꽃과 케이크를 들고 김 씨를 맞았다. 땅에 내려온 김 씨는 미리 준비된 휠체어를 타고 마이크 앞으로 이동해 철탑 농성을 마무리하는 소회를 전했다.

김 씨는 "저는 영웅이라 철탑에 오른 게 아니고 해고노동자로서 너무 분하고 억울해 올랐다"며 "20여년 간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어디를 가도 저를 봐주지 않아 마지막으로 목숨을 내던져서라도 해고 노동자의 삶이 비참하게 무너지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사회에 환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철탑에 오르기 전 일주일 간 잠을 못 잤다"며 "과연 내가 삼성과 맞서 싸울 수 있을까. 차라리 죽어서 내려오자"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김 씨는 "제 가정은 정말로 말로 차마 담을 수 없을만큼 깊은 고통을 겪어왔다"며 "해고는 살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이 노동자를 함부로 자르면 안된다"고 덧붙였다.

김 씨는 "철탑 아래에 나를 살리고자 한 명 한 명이 모이는 걸 봤다"며 "'그들의 눈에 눈물 나게 하지 말자, 아픔 주지 말자'는 생각으로 버텨왔다"고 전했다.

김 씨는 그간 자신의 싸움에 연대한 이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또 자신만이 아니라 삼성 피해자들의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 철탑 위 김용희 씨. ⓒ프레시안(최형락)

▲ 땅에 내려오기 위해 사다리차에 타고 있는 김용희 씨. ⓒ프레시안(최형락)

▲ 땅에 내려와 휠체어에 타고 있는 김용희 씨. ⓒ프레시안(최형락)

삼성 "고공농성 조속히 해결하지 못한 것과 김용희 씨 아픔에 사과"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고공농성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날 김 씨가 내려오기 전 철탑 아래에서 '투쟁 승리 보고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는 양측의 합의 내용 중 삼성의 사과문이 발표됐다. 임미리 고공농성공대위 대표는 나머지 내용은 공개하지 않기로 약속했다고 전했다.

삼성은 "장기간의 고공농성을 조속히 해결하지 못한 것을 사과한다"며 "김용희 씨가 해고 이후 노동운동 과정에서 회사에 의해 고통을 겪었고 그 아픔이 치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회사가 아픔을 치유하려는 노력이 부족해 김용희 씨의 가족이 어려움을 겪었다"며 "김용희 씨의 건강이 조속히 치유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김용희 측과 삼성은 지난 4월 29일부터 김 씨의 해고에 대한 사과와 복직, 배상 등을 두고 협상을 벌였다. 협상은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대표가 주선했다는 후문이다.

합의문에는 삼성을 대표해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와 삼성물산 대표이사, 김용희 측을 대표해 임 대표와 박 대표가 서명했다. 지난 28일 합의가 이뤄졌고 이날 오전 양측의 최종 점검이 끝났다.

골리앗 삼성에 맞선 다윗 김용희의 20여년 싸움, 일단락

김용희 씨는 삼성항공(삼성테크원)에서 노조를 만들다 1991년 해고됐다. 김 씨는 당시 각목테러, 납치 등을 당했다고 증언한다.

1994년 김 씨가 제기한 해고무효소송 대법원 공판을 앞두고 삼성과 김 씨는 복직에 합의했다. 삼성은 이때 김 씨를 삼성건설 러시아 스몰렌스키지부에 배치했다. 김 씨에 따르면, 복직 후에도 삼성은 노조포기 각서를 강요했고, 이를 거부하자 1995년 5월 출근을 막았다.

김 씨는 당시 삼성이 3년 대기발령 후 삼성시계로 복직시키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1998년 삼성시계가 없어지며 약속은 무효가 됐다. 이후 김 씨는 삼성에 사과와 복직을 요구하는 20여 년 싸움을 시작했다.

회사에 다녔다면 정년퇴임일이었을 60살 생일 한 달 앞둔 작년 6월 10일 김 씨는 '마지막으로 한 번 제대로 싸워보겠다'는 마음으로 삼성본사 근방 25m 높이 철탑에 올랐다. 그리고 고공농성 355일 만인 이날 땅을 밟았다.

하성애 고공농성공대위 집행위원장은 "오늘은 노조를 설립하려 했다는 이유만으로 각종 인권 유린과 해고를 당한 노동자가 거대그룹 삼성의 80년 무노조 경영에 맞서 싸워 승리한 역사적인 날"이라며 "이번 투쟁의 승리로 삼성에서 노조하자는 구호는 상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땅에 내려오기 전 철탑 위에서 팔뚝질을 하고 있는 김용희 씨.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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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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