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상이 전투원?'…미, 또 베네수 선박 공습해 3명 사망

이달 두 번째 공습…마약밀매 증거 제시 없어

미국이 마약운반선이라고 주장하는 베네수엘라 선박을 해상에서 또다시 공격해 3명을 살해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평시 범죄 단속에 전시 규칙을 적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자국 선박 공습이 "침략"이라며 반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5일(이하 현지시간)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카리브해와 라틴아메리카를 맡은 미 남부사령부(SOUTHCOM) 담당 구역에서 마약 밀매 조직에 대한 공습을 실시해 3명을 제거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공습이 "베네수엘라 출신 마약테러범들이 국제 수역에서 미국을 향해 불법 마약을 운반하던 중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인을 죽일 수 있는 마약을 운반하고 있다면 사냥 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련해 위치를 특정할 수 없는 해상에서 운항 중인 배가 갑자기 폭격 당해 불타는 영상을 함께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취재진에 공습 당한 이들이 마약테러범이었다는 증거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증거가 있다. 바다에 떨어진 화물을 보라. 코카인과 펜타닐이 든 큰 봉지가 온갖 데 있다"고 답했다. 이어 그 배가 무엇을 싣고 언제 출항했는지에 대한 증거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를 공개하진 않았다.

트럼프 정부가 미국으로 향하는 마약운반선이라고 주장한 베네수엘라 선박을 공습한 것은 이달 들어 두 번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에도 미군이 카리브해에서 마약을 운반하던 베네수엘라 선박을 공습해 11명을 제거했다고 밝혔다. 또 탑승자들이 베네수엘라 폭력단 '트렌데아라과(Tren de Aragua)'의 일원이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정부는 공습 당시 이 선박이 어떤 종류의 마약을 얼마나 싣고 있었는지, 어떤 장비로 선박을 공격했는지 등 구체적 정보는 제시하지 않았다.

이날 앞서 마두로 대통령은 공습을 "침략"으로 규정하며 미국을 비판했다. <로이터> 통신, <뉴욕타임스>(NYT)를 보면 15일 마두로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지난 2일 공습이 "전쟁 중이 아니고 어떤 국가에도 군사적 위협을 가하지 않은 민간인에 대한 군사 공격"이었다고 규탄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2일 공습 사망자 중 트렌데아라과 조직원은 없었다고 주장 중이지만 이들의 신원에 대한 정보는 거의 공개하지 않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이들이 미국 주장처럼 마약밀매범이라면 체포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두로 대통령은 현 상황은 "긴장이 아니고 전면 침략"이라며 트럼프 정부의 목표는 마약 단속이 아니라 "석유를 위한 정권 교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해 베네수엘라 대선 부정 의혹을 들어 마두로 정권을 합법적 정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15일 공격에 대해선 즉각적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마약밀수 용의자들을 체포해 재판을 받게 하는 대신 즉시 폭격해 살해한 것에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뉴욕타임스>는 전쟁법과 행정권 전문가들이 이러한 조치에 명확한 법적 선례나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트럼프 정부가 해상 마약 단속을 법집행 규칙에서 전시 규칙으로 전환할 권한을 주장하며 평시의 마약 범죄 문제를 무력 분쟁으로 재정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평시 경찰은 범죄 용의자를 찾았을 때 기소를 위해 체포할 뿐 임박한 위협 없이 곧바로 사살할 수 없지만 전시 군은 적 전투원을 발견하면 합법적으로 사살이 가능하다.

신문은 베네수엘라 선박 공격은 결국 트럼프 정부가 미군에 마약밀매상을 전투원으로 취급하도록 한 것인데 미국에서 불법 소비재 밀수는 사형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짚었다. 또 설사 전시 규칙 적용이 가능하다고 해도 군이 적대행위에 직접 가담하지 않은 범죄자를 포함한 민간인을 고의로 살해하는 것은 전쟁범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베네수엘라 및 카리브해가 미국으로 향한 마약 운송의 주요 통로가 아니라고도 전했다. 신문은 마약단속국(DEA) 자료를 인용해 2019년 코카인 선적의 74%가 태평양을 통해, 대부분 콜롬비아와 에콰도르에서 왔고 카리브해를 통해서 온 물량은 24%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펜타닐의 경우도 거의 전적으로 멕시코에서 생산되고 베네수엘라의 경우 코카인 및 펜타닐 생산에 거의 기여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미국 공습이 무력 사용에 관한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아일랜드 더블린대 트리니티칼리지의 마이클 베커 법학 교수는 영국 BBC 방송에 "미국 관리들이 미군 공습으로 죽은 사람들을 마약밀매범으로 규정했다고 해서 이들이 합법적 군사 표적으로 변하는 게 아니다. 미국은 베네수엘라나 트렌데아라과 범죄단과 무력 분쟁을 벌이고 있지 않다"며 공습이 "무력 사용 금지에 대한 규정을 어긴 데다 국제인권법에 따른 생명권에도 위배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미국 민주당은 전쟁 선포 권한을 의회에 둔 전쟁권한법을 들어 반발 중이다. 상원 군사위원회 소속인 민주당 잭 리드 의원은 15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쟁 선포권은 대통령이 아니라 의회에 있다. 이 잔혹한 살해는 불법이며 미국을 베네수엘라와의 전쟁으로 끌어들일 위험이 있다"며 "의회는 트럼프 대통령에 책임을 묻고 너무 늦기 전에 무책임한 권력 남용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공화당에서도 비판이 나오는 상황이다. 공화당 소속 랜드 폴 상원의원은 지난주 관련해 "만약 새 정책이 마약상일 가능성이 있다면 폭파하는 거라면 그건 우려되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 1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공개한 베네수엘라 선박에 대한 미군 공습 영상을 갈무리한 이미지. 선박이 해상에서 불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출신 마약밀매범들이 해당 선박에 마약을 싣고 미국으로 향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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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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