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현장으로 가야…'노회찬'에 머물러선 안 돼"

[인터뷰] 장혜영 당선자 "정의당의 '능동적 변수' 되겠다"

"지금의 불평등을 만든 것은 탐욕을 통제하지 못한 우리 사회입니다. 가진 자들이 규칙을 정하는 사회에서 공정은 힘없는 외침입니다. 공정한 차별이 하루가 다르게 우리 사회를 잠식하는 지금, 우리는 공정이 아니라 불평등을 외쳐야 합니다. 불평등을 똑바로 직시하지 않고서 평등의 미래로 갈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4.15 총선에서 정의당 비례대표 2번으로 국회에 입성한 장혜영 당선자가 지난해 10월 쓴 정의당 입당 선언문의 일부다. 장애인 동생과의 일상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이 되면>으로 주목받던 신예 영화감독이, 전업 정치인으로의 전직을 선언하며 내놓은 이 글은 정치권 안팎에서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다.

"공정한 차별", "언제까지나 신문고만 두드릴 뿐 결정에는 참여할 수 없는 정치", "변화는, 법과 제도는 미룰 수 있을지 모르고 누군가에게는 변화를 미뤄야 할 그럴 듯한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는 장 당선자 특유의 언어는 날카롭거나 뾰족하지 않으면서도 문재인 정권 후반기 한국사회의 시대정신과 비판적 문제의식을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회의원 장혜영'은 어떤 정치를 보여줄지, 어떤 정책과 입법으로 "평등의 미래"를 개척하려 할지가 궁금해지는 이유이자, <프레시안>이 지난 28일 장 당선자를 인터뷰한 이유이기도 하다.

등원을 앞둔 장 당선자는 여전히 "불평등"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장애, 빈곤, 젠더(性) 문제 등 여러 층위의 불평등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똑같은 인간으로 인정받고 살아갈 수 없다"면서, 정책·입법·제도적 차원의 접근은 물론 사회 공론장에서 토론과 논쟁을 통해 불평등의 뿌리를 파헤치고 갈등 해소를 시도하는 정치의 기능도 강조했다. 그는 이를 "연극으로서의 정치", "스토리텔러로서의 정치인"이라고 명명했다.

그가 몸담은 정의당은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 1석, 비례대표 5석이라는 성적표를 받아 안았다. 20대 국회에서의 의석 수는 유지했지만, 당초 목표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총선 결과를 놓고 당 안팎에서는 엇갈린 평가와 전망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장 당선자는 당의 진로와 방향에 대해 "현장으로 가야 한다"며 "'정의당은 성명서 내면 끝이라고 생각한다'는 일각의 이야기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노회찬이라는 상징에 머무르면 안 된다"고도 했다.

그는 "노회찬의 이름을 부르면서 우리가 현장에 없다면 부끄러운 일"이라며 노회찬은 '진보정치 20년'의 역사 바깥에 있었던 자신에게도 중요한 사표가 된다고 언급했다. 현장에서 어려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 그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이럴 때 노회찬 의원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였다는 것이다.

다음은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진행한 장 당선자와의 대화 전문.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자가 지난 28일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당선을 축하드린다. 지난해 10월 쓴 입당 선언문이 큰 호평을 받았다. 그와 겹치는 질문일 수 있지만, 21대 국회의원 당선자가 된 현재도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지 여쭙는다. 정치를 하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뭔지, 그리고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뭐라고 보는지 말해달라.

장혜영 :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역시 '불평등'이라고 본다. 저는 개인적인 삶에서의 화두를 풀려고 하다 보니, 이것이 개인적 문제를 넘어선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자각하게 됐다. 저의 사적인 동기는, 장애가 있는 동생과 할머니로 '평범하게' 늙어죽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장애 문제, 빈곤 문제, 젠더 문제 등 여러 층위의 불평등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똑같은 인간으로 인정받고 살아갈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평범함'은 특권을 가진 사람들의 언어일 뿐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화적 영역에서, 문화 활동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고도 해 봤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하면, 문화를 통해서 천천히 바꾸는 것, 제도와 법의 변화를 통해서 빠르게 바꾸는 게 있다고 본다. 빠르게 바꿔 보고 싶어서 정치를 시작했다. 저는 저 자신만 대표하고 싶은 사람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많은 분들을 대표하게 됐다. 그들을 대표해서라도 제대로 된 제도를 만들어 보고 싶다.

프레시안 : 직접 경험한 불평등의 범주로 장애, 빈곤, 젠더 문제를 말했다. 먼저 장애부터. 정치를 업으로 택하기 전 가장 주목받은 이력이 영화 <어른이 되면>이다. 의원으로서 어떤 정책을 준비 중인가?

장혜영 : 장애인 정책의 핵심 문제 3가지는 사실 새로운 게 아니라 5~6년 전부터 투쟁해온 이슈다.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그리고 탈시설화이다. 앞의 2가지는 이미 오래된 이슈이고, 탈시설화도 문재인 정부에 들어오면서 논의는 되고 있다. 그러나 ‘탈시설’이라는 언어 자체는 정책 과제에 들어 있지만 구체적 정책화는 되지 않고 개념만 있는 상태다. 구체적인 내용을 만들어야 한다.

저는 탈시설 당사자의 조력자이기도 했고, 정책의 가장 큰 수요자인 입장이다. 제 입장에서 보자면 여러 가지가 동시에 착수돼야한다. (탈핵 비전처럼) '우리나라에 몇 년 몇 월 며칠부터는 장애인 수용시설이 없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시설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게 만드는 계획이 필요하다.

지역사회에서 24시간 활동지원이 가능하도록 예산 정비, 법령 정비가 필요하다.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발달장애인 옆에는 24시간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가족이 그 역할을 해왔는데, 사회의 자원으로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은 1일 16시간이 최대 지원 시간이지만 그마저도 중복 장애 등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이 조건들을 다 충족시키는 장애인은 대한민국에 없다는 게 통계를 통해 밝혀졌다. 24시간 돌봄이 가능해야 장애인 가족들이 '탈시설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을 것이다. 24시간 활동지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1호 법안으로 생각하고 있다.

프레시안 : 그러면 희망 상임위는 보건복지위원회인가?

장혜영 : 처음에는 그렇게(보건복지위원회로) 생각했는데, 복지부 밖에서 장외 투쟁을 할 때에도 결국 마지막에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이름을 외치게 되더라. 예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기획재정위를 1순위로 생각하고 있다. 20대 국회 심상정, 19대 국회 박원석 의원 등 기재위에 정의당 의원이 계속 있어왔다.

프레시안 : 장애 다음으로는 여성 문제를 여쭙겠다. 최근 n번방 사건이 이슈가 되기도 했고, 강남역 살인사건 등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와 이에 대한 백래시 현상도 중요한 사회 문제로 지적됐다.

장혜영 : 여성 의제는 정치인 한두 명이 어떻게 한다기보다, 마치 탄핵을 시민들의 힘으로 이룬 것처럼 성난 여성 시민들의 에너지가 이 의제를 국회의 코앞까지 밀어넣은 측면이 있다. 이를 잘 받아 안고 가야 한다. 20대 국회에서 (n번방 관련 법안들을) 전부 처리할 것처럼 굴지만 어렵지 않을까 싶고, 지금 정부가 하겠다고 한 아주 많은 것들이 다 되도록 흐름을 이어가는 것도 필요하다. 매일 반복되는 아침운동처럼 이 이슈에 대응하는 게 필요하다.

디지털 성폭력, 성착취 관련 특별법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의견을 듣고 있다. 각 법안을 개정하는 게 필요한지, 새로운 특별법이 필요한지. 저는 지금으로서는 특별법 제정에 공감하고 있다.

프레시안 : 범죄와 차별을 막기 위한, 평등을 옹호하기 위한 입법적 규제도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특히 백래시 현상이나, 4.15 총선에서 20대 남성 유권자의 보수화 경향이 지적된 등의 현상은 오히려 장 당선자가 앞서 해온 '문화 활동' 차원의 접근이 더 유효할 수도 있다. 정치의 역할이 '법 만들어 처벌하겠다'가 전부가 아니라, 공론장에서의 공개적 갈등 해소 역시 정치의 중요한 본령 아닌가.

장혜영 : 공감한다. 입법기관으로서의 정치가 국회의원의 일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극으로서의 정치'도 해야 할 일이다. 배우들은 갈등 속에서 극을 연기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면서 주제에 대한 자기 생각을 되새기고 성찰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 이 '연극으로서의 정치'가 더 중요해진 시기라고 생각한다.

이런 '스토리텔링으로서의 정치'를 어떻게 해낼 것인가는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중요한 고민이고, 정치를 시작하기 전에 창작자, 유튜버로서 활동할 때도 마주했던 문제다. 백래시로서의 혐오가 됐든, 그 이전부터 원래 존재했던 혐오가 됐든 이것을 어떻게 마주하면서 해야 할 얘기들을 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 중요하다.

하나만 얘기하자면, 혐오를 자연화해서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관점이다. 양비론 역시 게으르고 도식적인 접근이다. 혐오발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구조를 열심히 만드는 사람들이 있고, 그걸 열심히 퍼나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확산의 단계를 거치게 된다. (즉) 구체적인 혐오의 기제들이 임의적으로 만들어지는 단계가 있는데, 그것을 포착해낼 수 있다면 우리가 그 혐오(문제)를 다룰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혐오가 계절이 변하듯이 자연스러운 것, 가지고 안고 살아야 할 것들이 결코 아니다.

프레시안 : 다음은 빈곤. 진보정당의 전통적인 의제이기도 하다.

장혜영 : 어려운 문제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세계적 위기를 겪고 있다. 심지어 IMF 때도 경제가 0.2% 성장했는데, 이번에는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일 거라는 예측이 나오지 않나. 정의당의 총선 의제였던 '그린 뉴딜'과 기본소득 등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굴러갈 것인지에 대한 기획이 21대 국회에서 결정돼야 한다. 지금까지 해오지 않았던 과감한 방식으로, 지금 당장 100만 원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자원을 도달하게 하는 게 필요하다. 그게 곧 청년 정책이기도 하다.

프레시안 : 청년을 대표하겠다고 정치를 시작한 분들이 과거에도 많았으나 여전히 '쳥년 문제'는 풀리지 않고 있다.

장혜영 : 정의당은 총선 공천에서 '청년 가산점' 정도가 아니라 상위 순번을 청년 후보들에게 할당하면서 강력하게 기회를 줬다. 그러나 이것은 '청년이 청년 문제를 해결하라'는 게 아니다. 진보정치의 맥을 이어갈 사람들에게 확실한 기회를 주겠다는 총선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

청년이면서 좋은 정치인으로서 어떻게 기득권 정치를 타파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에서 고민이 깊었다. '86세대'와는 다른 시대정신이 우리에게 있다. 물리적 환경이 변한 만큼 체감하는 것도 달라졌다. 다만 예컨대 아무리 장애 인권 이슈를 다뤄 왔다고 해도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만을 대변하기 위해서 국회에 들어오면 안 되는 것처럼, (국회의원은) 모든 시민을 대표하기 위한 자리이니까 '기본'을 하면서 특수성을 살리겠다.

▲ 장혜영 당선자. ⓒ프레시안(최형락)

"정의당, 현장에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 당 얘기를 좀 해보자. '정치인 장혜영'의 선택은 왜 정의당이었나?

장혜영 : 제가 여러 정당들을 죽 다 늘어놓고 그 중에서 선택하는 식으로, 과자 사는 것처럼 정의당을 '고른' 것이 아니다. (웃음) 사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기대가 컸다.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겠다고 해서 장애인권단체들이 5년 동안 이어온 광화문 농성을 그만둘 정도로 기대가 컸는데, 2년이 지나고 3년차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이렇게 정부가 약속을 안 지키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이 들었다. 그 시점에 심상정 대표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른 당처럼 공천을 약속한 것도 아니고 그저 입당 제안이었다. ‘비례대표 경선에 네가 들어와서 알아서 살아남아 볼래?’에 가까운 제안이었다. (웃음)

저는 (몸담을 정당이) 어쨌든 원내정당이어야 한다는 생각, 탈시설 등 장애인권활동을 하면서 현장에서 만났던 정당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민주당에서는 힘들 거라고 봤다. 동생이 탈시설을 한 이후에 민주당 의원들도 만나봤지만, 개별적으로는 훌륭한 분들이 집단적 행동에서는 늘 (장애인권 문제는) '나중에'로 가는 경향이 있더라. 그게 기득권의 특성이라는 것을 추측하게 됐다. 여러 이권이 얽혀있으니 교수, 시설·센터장 등 눈치 볼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정치적 변화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곳에서 내가 원하는 변화를 같이 만들어서 그 변화에 기여한 내 힘을 가지고 뜻을 관철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도 어느 정도 정의당에 ‘베팅’을 한 거다. 민주당에서는, 그 당이 강해지는데 내가 기여한 바가 없기 때문에 내 목소리가 작을 수 밖에 없지 않겠나.

프레시안 : 20대 국회를 거치며 민주당과 관계 설정이 애매해졌다. 장 당선자는 총선 기간 청년선대본 명의로 '조국 전 법무장관의 임명에 단호한 입장을 밝히지 못했다. 더 치열하게 싸웠어야 했다. 깊이 반성한다'고 회견을 하기도 했었다. 여당, 그리고 여당 지지자들과 정의당 사이에 어떤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고 보나.

장혜영 : 우리 당이 뭔가를 결정할 때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은 우리가 대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지 여당이나 여당 지지자들이 아니다. (그들을 고려하는 것이) '전략적'이라고 하는 일부 시각이 있지만, 그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 그러나 정의당 안에도 여당 지지층과 비슷한 목소리를 내는 당원들이 없지 않다.

장혜영 : 일종의 학습된 무력감, 학습된 패배감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민주연합'을 이루기 위해서일 수도 있지만 ‘불안’이라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당 없이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말이다. 그런데 (그 분들은) '뭘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뭘 하고 싶었는지'를 잊어버린 것 아닌가 싶다.

제가 처음 입당 제안을 받은 것은 조국 전 장관에 대해 정의당이 입장을 정하기 전이었다. 심상정 대표도 저한테 '조국 장관 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길래 저는 "지금이 민주당과 정의당과 어떻게 다른지 보여줄 때"라고 답했다. 하지만 결국 정의당은 조 전 장관 임명에 동의했고, 그걸 보고 '입당하지 말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 당에 들어오자마자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정의당의 능동적인 변수가 되겠다'고 했다. 여기에는 제가 가지고 있는 관점을 관철하겠다는 의지도 포함돼 있다고 보면 된다.

프레시안 : 생각이 다른 당원들을 설득할 자신이 있나?

장혜영 : 설득할 자신은 없고, 토론할 자신은 있다. 우리가 있는 당이 민주당이 아니라 정의당이니까, 정의당 중심적 사고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민주당을 신경쓸 거면 민주당 갔겠지 왜 정의당에 왔겠나.

프레시안 : 4.15 총선 이후 보수진영 일각에서 나오는 '부정선거' 주장도 마찬가지인데, 정치세력과 그 지지층이 극단적인 진영 논리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장혜영 : 정치인들이 스스로 변화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저도 현실 정치를 시작하고 느끼는 '실전 교훈'은 '정치는 숫자구나'였다. (웃음)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숫자, 우리 당이 받은 표의 숫자, 당에 꽂히는 후원금 액수. 그래서 팬덤은 굉장히 강력한 것이고, 신격하고 단순화될수록 숫자가 늘어난다. 그러나 동시에 '포스트 트루스'의 시대에 그게 얼마나 무시무시해질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저도 작은 지지자 그룹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들에게 '어떻게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개인이면서 동시에 집단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까. 이 문제를 함께 풀고 싶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다.

프레시안 : 입당한 지 반 년이 됐는데, 당에 실망감을 느끼거나 답답했던 지점은 없나?

장혜영 : 우려했던 점들은 있었으나 의외로 괜찮았다. 다른 의견을 싫어는 하지만 찍어누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더라. 청년선대본에서 조국 전 장관 관련 반성 기자회견을 하는 과정에서 (당 내의) 우려와 비판, 비난은 있었고 아마 심 대표도 심기가 불편한 지점이 있었을 테지만 입을 막는 사람은 없었다. 기자회견 이후에도 저를 직접 책망하는 사람은 없었다.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프레시안 : 과거 민주노동당에 비해서 정의당은 더 대중적인 노선을 선택했다는 평가, 동시에 진보정당으로서 선명성은 좀더 떨어졌다는 평가가 공존한다.

장혜영 : 저는 첫 당적을 정의당에 입당하면서 갖게 됐다. 그 전에는 정당정치에서 효용을 느끼지 못한 시민이었다. 오히려 탈정치에 가까운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봤는지도 모른다. 정치가 나를 대변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진보정치 20년'을 스스로의 중요한 역사로 겪어온 사람들의 시각과 제 시각 사이에는 큰 온도차가 있다.

저는 실용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필요한 일들을 할 수 있는 정당이 좋은 정당이다. 그 일을 정의당에서 할 수 있기 때문에 들어온 것이고, 그렇게 하도록 제가 만들 것이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말하게 두고, 저는 저의 일을 할 것이다. 제가 일을 하면 평가해 주지 않겠나.

안타까운 것은, 평론만 하고 행동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당 안팎에서, 당을 한 발 멀리서 바라보면서 '너희들이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고 하시는 분들. 하지만 그렇게 바라보는 분들이 도와 주셔야 잘할 수 있다. 평론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보다는, 뭐라도 기여를 하기위해 행동하는 사람들과 함께 당을 변화시키고 싶다.

프레시안 : 총선 성적에 대한 평가와 함께 당의 진로에 대해 내부에서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들었다. 지금의 심상정 지도부 체제가 유지돼야 하는지도 논의 대상이라는 보도가 나기도 했다.

장혜영 : 선거 결과가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지도부가 사퇴할 만큼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우리 당이 1년 안에 엄청나게 쇄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총선 성적표를 어떻게 평가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선거 결과는 대부분 '구도'에서 결정됐다고 본다. 그런데 '절대평가' 측면에서, 우리가 시민들한테 '정의당이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해줬나? 애매했다고 생각한다.

20대 국회에서는 6석이지만 캐스팅 보터로서 의미있는 의석이었다. 하지만 21대에서는 정의당이 없어도 영향이 없다면, 당이 존재해야한다는 이유가 뭐겠나? 그 이유를 줘야 한다. 국회에서 민주당이 뭔가를 해나가는데 있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뚜렷하게 보여줄 수 있는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힘이 약하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그걸 우리 입으로 말하진 말아야 한다. 과연 우리 당 안에 그런 쇄신 분위기가 있느냐.

저는 사퇴가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퇴는 도망이다. 책임은 다른 결과를 보여주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당은 아주 많은 쇄신이 필요하다. 다만 선거를 하면서 당내 청년 정치인들과 화학적 결합을 했고, 이들에게서 가능성을 봤다.

프레시안 : 앞서 민노당과 정의당을 비교하는 시각이 있다는 말씀도 드렸는데, 당의 노선은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보나?

장혜영 : 제가 당이 이리 가야 한다. 저리 가야 한다고 말할 처지도 아니다. 다만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보면, 당이 현장으로 가야 한다는 명확한 방향성은 있다.

예를 들어 지난 20일 장애인의 날 집회가 끝나고 같이 갔던 청년당원들과 얘기해 보니, 대부분이 집회에 처음 온 사람들이었다. 일각에서 '정의당은 성명서만 내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얘기가 그때 떠올랐다. 그게 이거였구나, 하는. 정치를 하려는 이유가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삶의 현장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과연 그 사람들의 곁에 정의당이 있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이 노회찬이라는 상징에 머무르면 안 된다. 누가 아프면 당이 그 지근거리에 있어야 하는데 과연 거기에 우리가 있나? '노회찬 정신'이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노회찬의 이름을 부르면서 우리가 그 곳에 없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제가 어제(28일) 홍익대 경비노동자 산재 사망 1주기여서 추모식에 갔는데, 대학 당국에서는 사물놀이 등 추모 행사를 못 하게 제재하려고 하더라. 마침 그 때 제가 현장에 도착했다. '어떡하지?' 하다가 '노회찬 의원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저기 가서 막았겠지?' 생각하고 대학 관계자들에게 가서 '정의당 당선인 장혜영이다'라고 인사한 후 '추모하러 오신 거죠?'라고 말을 건넸다. 그런 종류의 일들을 많이 겪게 될 것 같다. 현장에 '금배지' 단 사람이 있어서 두 대 맞을 것을 한 대 맞고, 일이 날 수 있는 것을 넘기고, 이런 게 현장에 있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당장 개원 후 1년, 그리고 21대 국회 임기 4년 동안 정의당과 장 당선자가 집중해야 할 과제는 뭔가?

장혜영 : 당 차원의 논의는 지금 제가 얘기하기에 적절치 않지만, 저희가 총선 때부터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온 것은 역시 불평등과 '그린 뉴딜'이다. 저 개인으로는 여성 안전 문제와 장애 인권, 이 두 가지에 대해서 계속 지켜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정책적으로 풀지에 대해서는 다른 의원들과 얘기를 많이 하겠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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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박정연

프레시안 박정연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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