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이후엔? 성착취 영상 또 있다!

[기자의 눈] 불법 성인 영상 유포처 전반에 대대적인 수사가 필요한 이유

협박을 통해 끔찍한 성 착취 영상을 촬영한 뒤 텔레그램으로 이를 유포하고 입장료 수익을 챙긴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키면서, 청와대 국민청원 역대 기록을 갈아치우기도 했다. 법무부는 범정부 차원의 TF팀을 꾸리고 철저한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n번방'의 일종인 '박사방'의 운영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구속됐다. 이 방에 가입했던 26만 명 회원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도 진행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회원에 대한 수사를 지시했다.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전방위적인, 그리고 철저한 수사가 예고됐으나, 여전히 의문은 가라앉지 않는다. 'n번방'에 대한 수사만으로 충분할까. 암암리에 'n번방' 영상이 유통되던 경로는 또 있다. 문제는 그간 경찰의 대응으로 보면 사회적으로 이슈화 된 'n번방'을 제외한 2차, 3차 유포처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작년 5월 디지털성폭력 영상 업로드 사이트에 대한 제보

작년 7월, 디지털성폭력 영상이 올라오는 사이트가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해당 사이트인 'n사이트'에는 '직찍' 등 키워드가 담긴 영상을 비롯해, 화장실을 몰래 찍은 영상 등이 올라와 있었다. "맞춤제작 성인 동영상을 상시 구매"한다는 공지도 있었다. 추적을 어렵게 하고자 암호화폐로 결제를 받는 것은 'n번방'과 같았다. 법망을 피하기 위해 구글드라이버를 활용하는 것도 독일에 서버를 둔 텔레그램을 활용하는 것과 비슷했다. (관련기사 : "멀티방 일반인 직찍" 소라넷 폐지 비웃는 그들, 별일 없다)

제보자는 제보 두 달 전인 5월, 경찰에 해당 사이트를 신고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언론에 n사이트를 제보한 것은 수사가 지지부진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경찰청 사이버안전국 관계자는 당시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아직 수사 초기 단계이며 수사관 1인당 50여 건의 다른 사건이 배정되어 있고 순차적으로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N사이트 수사에는) 3~4개월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상반기에는 웹하드 카르텔, 약물 피해 의심 디지털 성폭력 영사에 집중했고 하반기에는 P2P, SNS, 사이트 등에 대한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이 말한 3~4개월은 진작 지났다. 작년에 이야기한 하반기 P2P, SNS, 사이트 집중 수사 기간도 지났다. 이제는 폐쇄됐을까 싶어 얼마 전 n사이트를 다시 찾아봤다.

▲ 한 성인 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온 N번방 관련 글. 사이트 화면 갈무리.

"사이트를 통해 N번방 자료 받은 사람도 위험한가요?”

도메인이 바뀌어 찾는데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n사이트는 여전히 운영되고 있었다. n번방이 이슈화된 뒤인 지난 2월에도 자료 요청 게시판에 성 착취 영상을 찾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n번방 자료 요청해도 될까요? 갓갓인지 박사인지 뭔데 난린지."

최근에는 이런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요즘 n번방 때문에 많이 시끄러운데 유료 결제한 사람들만 처벌 받는다는데 OOO에서 구매대행으로 포인트 충전하고 자료 다운받은 사람도 위험한가요?"

"어떤 업로더분이 몇일전에 OOO에 박사방 n번방 자료 올렸었었죠. ... 저도 보고 생각없이 다운받으려 했다가 덧글보고 뭔가 꺼림직해서 그냥 지나쳤습니다."

게시판에 올라온 글에는 '친절한' 답글도 달렸다. "(사이트가 아닌) 텔레그램만 (수사) 대상인 것 같아요", "사이트 충전은 괜찮을 거예요", "번방 유출은 진짜 칼같이 짤려서 안 받으셨을 겁니다”, "금지자료라는 댓글 있는데 자료에 다운 수가 몇 십 개 되는 걸 몇 번 봐서요"와 같은 식이었다.

n사이트에 대한 기사가 나간 지 3일 뒤인 작년 7월 20일에는 이런 글과 댓글도 올라와 있었다.

"1번방~5번방 자료 올려주실 수 있나요. 1번방은 자료 다 모았는데 2~5번방은 들어갈 수가 없네요.”

"어떻게 들어가신거에요?”

그리고 여전히 n사이트 자료실에는 'XX은행녀', 'XX대', '헤어진 여친', '전 여친' 등과 같이 몰카, 리벤지 포르노 등 디지털성폭력 영상임을 암시하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데도 n사이트 운영자는 아직 구속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24일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해당 사건을 "아직 조사 중인 사건"이라고 밝혔다.

처벌 법령이 없어서는 아니다. 형량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성폭력처벌법 14조는 "카메라 등으로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대상자의 사에 반하여 처벌한 자"와 이에 해당하는 "촬영물 또는 복제물을 반포, 판매, 임대, 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 상영한 자"에 대해 5년 이하 징역과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 N사이트에 올라온 게시물 중 일부. 사이트 화면 갈무리.

법 제정 뿐 아니라 경찰의 신속하고 대대적인 수사 필요

백혜련, 박경미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 성적 촬영물을 이용해 협박하는 행위를 특수협박죄로 처벌 △ 불법 성인 촬영물을 다운로드 받는 행위 처벌 △ 본인의 의사에 반해 유포될 경우 처벌 등을 내용으로 하는 ‘텔레그램 n번방 재발금지법’을 발의했다. 여러 보완책도 논의되고 있다.

당연히 있었어야 할 법이다. 특히 '불법 성인 촬영물을 다운로드 받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절대 다수 국민이 이 법이 국회에서 어떻게 처리되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

그러나 'n번방'과 같이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화되지 않은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그간 경찰의 수사속도를 보면 법이 제정된다고 해도 상황을 낙관하기는 어렵다. n번방, 웹하드 카르텔 등도 경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것은 언론을 통해 사건이 사회적 문제가 된 뒤였다. 그 사이 피해자는 소리소문없이 늘어만 갔다.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뒤, 해당 사건을 다루는 경찰의 수사속도를 지켜보면서 '좀 더 빠르게 나설 수는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최근에도 텔레그램방 등을 통해 여전히 'N번방' 영상이 팔리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서울지방경찰청은 텔레그램 n번방과 관련해 "2, 3차 유포에 대해서도 향후 철저히 추적하고 수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직 곳곳에 존재하는 또다른 'n번방'이 존재한다. 이번 수사가 'n번방'에만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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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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