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종이 아니다. 언론이다

[기자의 눈] 김종대를 위한 변명

난리가 났다. 김종대와 정의당을 '종북'이라고 한다. 사실 정의당이야말로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 때부터 종북주의와의 정치 투쟁의 최일선에 있었던 이들이다. 정의당 정치인들은 이로 인해 정치 생명이 위태로워지기도 했다. 적어도 '종북 마녀사냥'으로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독식해 온 <조선일보>와 자유한국당이 할 말은 아니다. 더구나 김종대는 당 대표와 원내대표의 반대에도 송영무 국방장관 임명에 소신 찬성한, 정의당 내의 보수파다. 그런데 <조선>은 독심술을 쓴다. "정의당 의원이 이 교수를 비난한 진짜 이유는 귀순병의 인권이 아니라 그로 인해 북한 실상이 드러난 점이었을 것"(23일자 조선 사설)이라고 주장한다.

김종대가 과한 면이 있긴 했다. "자극적인 보도로 병사의 몸을 표본실의 청개구리처럼 관음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것"이 "북한군의 총격 못지않은 범죄"라는 주장이 그렇다. 경중을 가리지 않고 환자 의료정보 공개를 총격에 맞먹는 범죄로 단정한 표현은 비판받을 지점이다.

그러나 표현이 과했을지언정, 김종대 지적의 핵심은 틀린 말이 아니다. 이국종은 북한군 병사사의 의료 정보를 "언론과 국민의 알 권리"라고 했다. 그러나 유권자의 '알 권리'란 뭔가? 이번 사건의 경우, 한국민으로 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사선을 넘어온 북한 병사의 용태가 얼마나 위중한지, 그가 회복될 가망이 어느 정도인지가 '알 권리'의 핵심이었다. 예컨대 문제가 된 '1차 브리핑' 당시에 이국종이 '총상으로 내부 장기가 파열돼 소화 중인 음식물이 복강에 흘러나왔고, 기생충·세균으로 인한 추가 위험 가능성도 있어 용태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정도만 알렸어도 충분했다. 결과적으로, 김종대의 지적처럼 북한군 병사의 몸 속 음식물이 옥수수 알갱이라는 것이나, 어떤 기생충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가 언론을 통해 관음의 대상이 된 측면이 엄연히 존재했다.

이국종은 또 '북한 병사 인권만 있나. 의료진의 인권도 중요하다'고 했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환자의 정보를 일반 대중에게 공포하는 것과 의료진의 인권 개선과는 관계가 없다. 분변이나 기생충으로 인한 의료진의 감염 위협은, 해당 현장에 출입하는 의료진들에게 충분히 위험성을 고지하고 주의를 당부하는 것으로 통제돼야 할 일이다.

짚어야 할 것은 있다. 사경을 헤맨 사람을 살려낸 자체로 이국종은 휼륭한 의사다. 의료계 일각에서 그가 '의사 놀이'를 한다거나 '쇼를 한다'고 비난한다는데, 이는 가당찮은 일이다. 그는 실력이 공인된 의료인이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소명 의식도 철저한 인물이란 점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이번 사건 이전에도 석해균 선장을 치료해냈고, 세월호 참사 당시의 영상을 공개하며 한국 응급의료체계의 허점을 질타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 이국종 교수가 처음 공개한 세월호 참사 영상)

하지만 훌륭한 사람도 때로는 실수를 한다. 이국종은 온몸에 총을 맞고 죽어가는 인명을 구조한 큰 일을 해냈지만, 그 과정에서 굳이 공개가 불필요했던 정보를 대중에게 공개하는 사소한(?) 과오도 있었다. ('사소한'에 물음표를 붙인 이유. 그게 사소한 일인지 중대한 일인지 판단할 권한은 제3자에게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권한은 당사자인 북한 병사 본인에게만 있다.)

그런데 만약 김종대가 이국종을 향해 '인권 테러범'라고 비난했다면 대의민주제 국가인 한국에서 김종대라는 정치인은 정치적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김종대는 그렇게 쓰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이국종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지난 17일 이렇게 썼다.


"기자회견 역시 의사가 원해서 한 것이 아니라 국가기관과 병원 측의 압박에 의한 것임을 실토했습니다. 누가 이 기자회견을 하도록 압박을 넣은 것일까요? 처음부터 환자를 살리는 게 목적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으로 관리되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기자회견이 끝나고 또 찾아가 괴롭히던 기자들은 다음 날 몸 안의 기생충에 대해 대서특필하는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여기서 보호받아야 할 존엄의 경계선이 허무하게 무너졌습니다."

의료 정보 보호는 어떤 경우에나 보호받아야 할 절대선이 아니다. 다만 그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그에 상응하는 공공의 이익이 있을 때 보도의 대상으로 삼음이 합당하다. 이는 의료 윤리인 동시에 언론 윤리다. 지난 2015년 6월 <프레시안>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 진료 병원을 비공개로 해야 한다는 보건복지부 지침에도 해당 병원들의 실명을 보도했다. 해당 의료기관의 이익보다, 전염성이 높은 위험한 감염병의 동선을 공개함으로써 얻는 공익이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도 <프레시안> 보도 닷새 만에 백기를 들고 병원명을 전부 공개했다. 지금 북한 정권이 붕괴하고 북한 주민들이 물밀듯 한국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상황도 아닌데, 북한 병사 '개인'의 뱃속에 어떤 기생충과 세균이 있는지는 공익과 연관된 정보가 아니다.

이국종은 억울할 수 있다. 기자들이 물으니까 답변을 해 줬는데, 그게 북한 병사에게 '인격 테러'를 한 것이라는 비판을 들었으니까. 다만 정확히 하자면, 위의 인용된 글에서 알 수 있듯 김종대는 "언론은 귀순 병사에게 총격을 가하던 북한 추격조와 똑같은 짓을 한 것"이라고 했다. 이국종이 아니라, 언론.

김종대가 겨냥한 것은 이국종이 아니라 언론이다. 북한에서 넘어온 것이라면 그게 고관대작이든 '미녀 종업원'이든 사선을 넘은 용사든 가리지 않고 천박한 호기심의 대상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언론이다. 펜 끝에 선 것은 대중의 흥미를 끌 '떡밥'이 아니라 피와 살이 흐르는 사람, 앞으로 한국에서 결혼도 하고 가정도 꾸려야 할 25세 젊은이라는 '사람'임을 잊은 언론이다.

물론 질문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기자)들이 질문을 과하게 한 것과, 환자 의료 정보를 보호해야 할 의사가 묻는다고 곧이곧대로 답을 한 것은 경중이 다른 문제다. 다만 의사가 답을 한다고 그걸 그대로 기사를 써서 내보낸 것 역시 다른 문제다. 그건 기자와 데스크(언론사)의 언론 윤리 문제다. 북한 병사의 뱃속에 옥수수 알갱이와 기생충이 있다는 '사실(팩트)'에 어떤 공익적 보도 가치가 있다는 것인지,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여서 판단은 각 언론사가 할 일이긴 하지만 나로서는 알기 어렵다. "귀순병 치료 과정에서 북의 실상이 드러났다면 그것은 북한 주민 전체 문제"(23일 조선 사설)라고 두루뭉수리하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정의당 의원이 이 교수를 비난한 진짜 이유는 귀순병의 인권이 아니라 그로 인해 북한 실상이 드러난 점이었을 것"이라는 독심술을 그대로 돌려준다. 이렇게.

'언론이 김종대의 말을 '이국종에 대한 비난'으로 왜곡하고 김종대 마녀사냥에 나선 진짜 이유는, 이국종이라는 영웅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정적 보도를 했던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국종 본인의 말이다.

"환자를 치료하는 건 이벤트가 아니다. 중증외상센터가 더는 환자를 받지 못하는 상황인데, (여론이 관심을 가지는) 귀순 병사 말고 다른 환자가 여전히 많다. 지금 목숨과 사투를 벌이는 이가 많다. 기자 여러분이 '환자가 깨어났나요', '무슨 얘기를 했나요' 이런 데 에너지를 다 쓰지 말고, 지엽적인 것만 보지 말고, 의료 현실의 백그라운드를 들여다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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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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