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청산과 정치권 사정 정국이 뒤엉킨 가운데, 이를 주도하는 검찰을 수술대에 올리는 고난도 개혁 작업이 시작됐다. 당장 21일부터 '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처(공수처)' 관련 법안 4건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에 오른다. 여권으로서는 적폐청산 작업의 선봉에 선 검찰에 제도적 재갈을 물려야 하는 일이다. 공수처 설치는 문재인 대통령의 검찰 개혁 1호 공약이다.
당·정·청은 20일 국회에서 공수처 설치법 제정과 관련한 회의를 열고 "공수처 설치법은 국민 86% 이상이 찬성하는 온국민의 여망이자, 촛불 혁명의 요구로 반드시 실현해야 할 국정 과제"라고 밝혔다.
이 회의에는 박상기 법무부 장관뿐 아니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참석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이 당·정·청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검찰 개혁' 의지가 강하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뜻을 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조국 민정수석은 이날 모두 발언에서 "지난 정권에서는 우병우 등 정치 검사들이 정권 비리에 눈 감으며 출세 가도를 달렸다. 진경준 등 부패 검사들은 국민이 준 권력을 남용하며 사리사욕을 채우고, 국민으로부터 또 다른 불신을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조국 수석은 "문재인 정부는 촛불 혁명으로 수립된 정부로 많은 개혁 중에 첫째가 적폐 청산과 검찰 개혁"이라며 "검찰 개혁을 위해 오랫동안 많은 논의가 있었던 만큼 이제 마무리할 때다. 공수처는 검찰 개혁의 상징"이라고 강조했다.
조국 수석은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과 주변이 공수처 수사 대상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저는 수석비서관으로서 공수처 추진의 끊을 놓지 않겠다. 국민의 의지가 실현될 수 있도록 국회에서 물꼬를 터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공수처 설치는 과거에도 시도됐으나 검찰을 도구화하려는 집권세력의 의도와 이에 편승한 검찰의 교묘한 저항으로 모두 무산됐다. 이 같은 전례에 비춰볼 때, 검찰발 적폐 청산 드라이브가 최고조에 오른 시점에 검찰을 제도적 수술대에 올리는 작업이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청와대와 검찰은 최근 미묘한 긴장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전병헌 전 정무수석을 수사하고 나선 것은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 개혁 움직임에 대한 반발이라는 해석을 한다. 이에 조국 민정수석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적폐 청산'과 '검찰 개혁'이 모두 '촛불 민심'임을 못 박으며 물러설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다만, 법무부가 내놓은 안은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여권 내부에서도 개혁성이 후퇴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공수처의 검사 대상 수사 범위를 '모든 범죄'에서 '직무 관련 범죄'로 축소하고, 공수처 검사 임기도 사실상 제한이 없던 것을 최대 9년으로 제한한 탓이다.
이러한 비판을 의식한 듯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공수처 법무부안은 검찰개혁위원회 권고안에 비해 조사 대상을 축소한 데 대한 비판 여론이 있고, 공수처장 임명 방식과 규모에 이견이 있기에 당과 정부는 열린 자세로 논의하겠다"며 국민의당 등 야당과 추가 협상할 여지를 남겼다.
'검찰 개혁을 제도화'한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공수처 설치법의 관할 상임위원회인 국회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은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이다. 자유한국당의 동의 없이는 이 법안이 법사위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 올라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최근 검찰의 '적폐 청산' 움직임에 반발하는 자유한국당이 공수처 설치 방안으로 검찰권 견제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당장 뇌물 수수건으로 대법원 재판을 받고 있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정부의 적폐 청산 움직임을 "망나니 칼춤"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이 정부안대로 공수처 설치에 협조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게 다수 전망이다. 공수처 설치 역시 검찰 길들이기를 위한 집권세력의 포석으로 보기 때문이다. 한국당 일각에선 공수처장을 사실상 야당이 추천하고 대통령이 형식적으로 임명토록 한다면 협상에 임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자유한국당 장제원 대변인은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가 주장하는 공수처 설치법은 전면 거부하지만, 야당이 추천하는 기관장을 임명하는 조건이라면 동의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더불어민주당이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이어서 연내 공수처 법안 처리에는 난항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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