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조위는 "노태우 정부 하에서 1988년에 511위원회 또는 511 연구반과 분석반을, 그보다 3년 앞선 전두환 정부 하에서 1985년 국무총리실과 국가안전기획부의 80위원회 등이 구성되는 등 정부 차원의 조직적 개입 정황을 포착했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그러면서 "80위원회와 511 분석반 등 1985년도부터 국가기관이 파악해 정리한 역사적 자료들을 발굴하여 5·18 특조위가 부여받은 헬기사격 및 전투기 출격대기 의혹에 관한 진실규명에 더욱 신뢰성을 제고해 나가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특조위는 "전두환 정부는 1985년 6월 80위원회를 구성해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대응방안을 마련했다"면서 "전두환 정부는 1985년 6월 5일 광주사태 진상규명 관계장관대책회의를 개최해 당시 국회질의 및 미문화원 점거 사건 등 광주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사회 각계의 진상규명 요구에 대한 대응으로 국가안전기획부의 주관하에 범정부 차원의 대책기구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이어 "국방부 5·18 특조위가 발굴한 1985년 6월 5일 관계장관 대책회의 자료에 따르면 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내무부, 법무부, 국방부, 문공부, 육군본부, 보안사, 치안본부, 청와대, 민정당, 안기부가 참여하는 가칭 광주사태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 운영하기로 논의했다"고 전했다.
특조위는 "이 진상규명위원회는 광주사태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수집하고 종합 검토해 광주사태 백서를 발간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구체적인 업무 추진을 위해서는 실무위원회를 편성했는데, 실무책임은 안기부 2국장이 담당하고 수집 정리팀, 분석작성팀, 지원팀 등 총 3개의 실무팀과 이들 실무활동을 관리하는 심의반으로 구성했다"고 덧붙였다.
특조위는 "1985년 6월 5일 관계장관 대책회의 자료로는 조직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데 광주사태의 진상규명 실무위원회 위장 명칭을 80위원회로 명기하고 있다"면서 "이는 정부 차원의 기구 구성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최대한 막으려 했던 조치로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특조위는 '80위원회' 자료 발굴에 대한 의미와 관련, "1988년 국회청문회 과정에서 실체가 알려진 511 분석반 이전에 이미 범정부 차원의 대응기구가 구성되고 운영됐다는 사실을 정부 문서를 통해서 확인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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