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증세 없는 복지', 박근혜 정부와 똑같다"

문재인 정부 100일 맞아 장문의 비판, 외교안보 '보수본색'

바른정당 대선후보였던 유승민 의원이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을 앞두고 장문의 글을 통해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대선 패배 후 공개 발언을 자제해 온 유 의원이 모처럼 내놓은 메시지였다. 전반적으로 보수 색채가 짙어진 점이 눈에 띈다.

유 의원은 16일 '페이스북'에 200자 원고지 39매 분량의 글을 올려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다. 유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경쟁했던 후보로서 저는 대한민국을 위해 승자가 잘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가급적 말을 아꼈으나, 지난 100일간 문재인 정부의 행적을 보면서 이 나라가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몇 마디 고언을 하고자 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유 의원은 대선 때부터 주장해온 지론대로 추가 증세 필요성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말을 제가 박근혜 정부에 이어서 문재인 정부에게도 똑같이 해야 하는 상황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며 "새로운 정책에 필요한 엄청난 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에 대한 해결책도 없이 여론의 지지가 높은 정책들을 거의 매일 쏟아내는 문재인 정부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정부"라고 비판했다.

유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정책들은 그 하나하나가 앞으로 5년간 수 조에서 수십 조 원의 예산이 필요한 것들"이라며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의 재원 확보 방안을 보면, 세입 확충으로 82.6조 원, 세출 절감으로 95.4조 원, 총 178조 원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세입 확충 82.6조 원 중 60.5조 원이 세수 자연 증가를 전제한 것으로 기본적으로 증세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 의원은 "'증세 없는 복지'를 고집하다 담배세 인상, 소득세 연말정산 파동을 겪은 박근혜 정부의 '공약 가계부'와 정확하게 닮은 꼴"이라며 "대기업과 부자에게 법인세와 소득세를 매년 3~4조 원을 더 걷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저부담-중복지로 가는 길은 없다. 중복지를 하겠다면 국민적 합의 위에 중부담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가 국회에 제출할 2018년 세출 예산안은 중복지를 지향하고, 세제 개편안은 저부담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근본적 모순을 안고 있는 세입 세출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사드 배치 빨리하면 돼", "공무원 증원 안돼" 한국당과 판박이…탈핵 입장도 후퇴

그러나 증세 부분을 제외한 외교안보, 경제, 적폐 청산 등의 부분에서는 보수색이 확연히 드러났다. 유 의원은 이른바 '코리아 패싱' 우려를 언급하며 "지난 100일 동안 보여준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는 한마디로 무능"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6월 말의 한미 정상회담은 동맹의 굳건한 앞날을 약속하기에는 부족한 미봉책이었고 동문서답"이라며 "베를린 선언은 17년 전의 6.15 선언, 10년 전의 10.4 선언으로 되돌아가 북에 대화를 구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은 거듭 북에게 대화하자고 매달리고 '전쟁은 안 된다'면서 평화를 얘기하고 있다"며 "북이 핵무기를 완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한미의 핵 공유를 추진하고 유사시 북의 핵무기를 초반에 격멸할 수 있는 탐지·공격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은 대화의 타이밍이 아니라 초강력 제재와 압박을 가해야 할 때"라며 "베를린 선언도 잊어버려야 한다. 베를린 선언에 집착한다면 또 다른 드레스덴 선언으로 끝나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군 복무기간 단축, 이 두 가지는 문재인 정부가 안보에서 얼마나 무능하고 불안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면서 "발사대 트럭 6대와 요격 미사일 48발을 배치하는 일에 무슨 대단한 환경평가가 필요하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국민 생명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은 빨리 하면 되는 것"이라고 사드 조속 배치를 주장하는 한편 군 복무기간 단축에 대해서도 "참으로 무책임한 처사다. 안보 위기가 최악인 상황에서 군 복무기간 단축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을 과연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인사 및 사회 개혁 분야에 대해서도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이 헛된 약속임은 이미 문재인 정부의 인사에서 드러났다"며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고위공직자 임명 배제 기준으로 '5대 적폐'를 약속한 것은 대통령 본인이었다. 이 약속을 어기고도 대통령은 사과 한 마디 없었다"고 했다.

또 "80년대 운동권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안보, 경제, 복지, 교육 등 국정을 재단한다면 문재인 정부는 머지않아 또 다른 적폐가 되고 말 것"이라며 그는 "검찰·경찰·국정원·공영방송·문화예술 등 문재인 정부가 적폐 청산의 대상으로 삼는 분야에서 과연 미래를 향한 진정한 개혁이 이루어지는지, 아니면 문재인 정부가 그렇게 비난하던 과거 정권들과 다를 바 없이 새로운 적폐를 만들 것인지 국민들은 지켜볼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론'에 대해 유 의원은 "저는 문 대통령께서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환상을 버리기를 권한다"며 "문재인 정부가 혁신 성장은 말만 하고 소득 주도 성장에만 매달린다면 5년 뒤 우리 경제의 성적표는 참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기초생활보장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기초연금 인상, 아동·구직수당 등 다양한 복지 정책은 사실 국가가 현금을 주거나 부담을 덜어줘서 소득을 늘려주는 효과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로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늘어나고 소비가 늘어나서 우리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는 환상에 가깝다. 말이 소득 주도 성장이지, 이는 성장 정책이 아니라 복지나 노동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복지를 늘리면 성장이 이루어진다는 허황된 생각"이라고 그는 거듭 주장했다.

그는 이어 "공무원 등 공공 일자리 확대 정책부터 대폭 수정되어야 한다"면서 "세금으로 공공 일자리를 만드는 정책은 쉽지만 비효율적인 정책이다. 최근 추경 심의 과정에서 보았듯 세금으로 공공 일자리 81만 개를 만드는 정책을 계속 고집한다면 예산 심의 때마다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경고했다.

탈핵 정책에 대해서도 그는 "신고리 5, 6호기 중단 여부를 공론화위원회 판단에 맡기기로 한 조치는 충격적"이라며 "공론화위원회 면면을 볼 때, 이 위원회가 무슨 권능과 자격으로 국가 에너지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유 의원은 대선후보 시절이던 지난 4월 22일 울산시청 기자회견에서 "제가 대통령 되면 아직 건설에 착수하지 않은 신규 원전(핵발전소) 계획 자체를 중지시키겠다"며 "신고리 5, 6호기같이 건설에 착수했지만 아직 공사 진도가 많이 나가지 않는 것은 반드시 재검토하겠다"고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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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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