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화된 정치 집단, 민주주의 이름으로 어디까지 용인해야 하나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정서적 양극화와 방어적 민주주의 딜레마

민주주의의 근본을 묻는 질문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국 정치는 전례 없는 격랑에 휩싸였다.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국민의힘은 이 사건을 계기로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하며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며 안정적인 국정 운영의 기반을 확보한 듯 보인다.

그러나 이 현상을 단순히 한 정당의 흥망성쇠나 정치 지형의 유불리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12.3 사태와 그 이후 벌어진 일련의 과정들은 한국 민주주의의 근본 원칙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정치심리학자 레오니 허디의 이론은 현재 우리가 마주한 위기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허디가 경고한 '정서적 양극화'와 '권위주의적 행태'의 심화는 민주주의의 자기 파괴 가능성마저 내포한다. 이는 칼 포퍼가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제기한 '관용의 역설', '관용적인 사회가 비관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소환한다.

레오니 허디의 정치심리학과 한국 상황의 진단

스토니브룩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인 레오니 허디는 '정치적 정체성'과 '정서적 양극화' 연구의 권위자다. 그의 핵심 이론은 정치 현상을 심리적 차원에서 깊이 있게 분석한다.

첫째, 개인의 정치적 태도와 행동은 그가 속한 집단의 정체성에 의해 강력한 영향을 받는다. 둘째, 이념적 차이보다 '우리 편'에 대한 긍정 감정과 '상대 편'에 대한 부정 감정의 격차가 커지는 '정서적 양극화'가 심화되면, 상대방을 공존의 파트너가 아닌 제거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다. 셋째, 인간은 객관적 사실보다 자신의 기존 신념을 지지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려는 '인지적 동기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이러한 심리적 경향은 특정 정치 집단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강한 정당 정체성을 가진 지지층에서는 누구나 유사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다만 12.3 사태를 기점으로 국민의힘과 그 지지층 일부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그 강도와 내용 면에서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면밀한 분석을 요한다.

허디의 이론을 통해 영남 지역을 기반으로 한 보수 지지층의 심리 구조를 보다 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들 지지층의 핵심부에서는 몇 가지 정체성이 융합되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었다는 지역적 자부심, 박정희 시대를 국가의 황금기로 기억하는 세대적 경험, 그리고 보수 이념을 애국과 동일시하는 정치적 신념이 그것이다. 이 세 정체성은 '박정희 체제'라는 상징을 중심으로 강하게 결합하여, 어느 하나에 대한 비판을 자신들의 삶 전체에 대한 부정으로 받아들이는 정체성 융합 현상을 보인다.

이러한 정체성은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경제적 위기감, 그리고 수도권 중심의 사회 발전에 대한 소외감과 결합하며 더욱 강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12.3 사태 이후에도 지지층의 상당수가 당시 계엄 시도를 옹호하거나 사건의 의미를 축소 해석하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명백한 사실과 기존 신념이 충돌할 때 신념을 보호하려는 강력한 심리적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민주주의의 핵심인 상호 설득과 토론의 과정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었음을 의미하며, 이것이 현 상황의 핵심적 난제라 할 수 있다.

딜레마와 향후 과제

12.3 사태 이후 국민의힘의 행보는 '방어적 민주주의'의 적용 여부를 둘러싼 학술적, 법적 논쟁을 촉발시켰다. 논쟁의 중심에는 이 정당의 활동이 헌법 제8조 4항이 규정한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지에 대한 해석이 자리한다. 이 논쟁에서 방어적 민주주의의 적용 가능성을 주장하는 측은 다음과 같은 점들을 근거로 제시한다.

첫째, 헌법이 명시한 요건과 절차를 무시한 비상계엄 시도를 정당화하거나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둘째, 탄핵 절차 등 헌법적 제도 자체를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며 민주적 프로세스를 거부하는 경향을 보였다. 셋째, 경쟁 정당을 '국가의 적' 또는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하며 대화와 타협의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했다. 이러한 행보가 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인 대의제와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허디의 연구에 따르면, 이처럼 인지적 동기화와 권위주의 성향이 극단적으로 결합한 집단은 내부의 자정 능력을 발휘하기 매우 어려운 상태에 빠질 수 있다.

현 상황은 한국 민주주의에 매우 어려운 선택을 요구한다. 극단화된 정치 집단의 행태를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어디까지 용인해야 하는가?

첫째, 정당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자기 방어 사이의 딜레마다. 한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명백히 위협할 때, 헌법에 규정된 '정당 해산'이라는 극단적 조치를 고려할 수 있는가? 이는 민주주의의 포용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위험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반론에 직면한다. 이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

둘째, 합리적 보수의 재구성이라는 과제다. 현재의 위기는 역설적으로 권위주의적 과거와 단절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합리적 보수 정치가 재구성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타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과거의 성공 경험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지역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정치 양극화의 사회·경제적 뿌리를 직시하는 것이다.특정 지역의 정치적 극단성은 해당 지역이 겪는 경제적 소외감과 사회적 고립감과 무관하지 않다. 영남 지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고, 지역 간 문화적 교류와 상호 이해를 증진하는 포용적 정책은 정치적 양극화를 완화하는 실질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

열린 사회를 향한 성찰

레오니 허디의 이론은 현재 한국 정치가 겪고 있는 위기가 단순한 정치적 갈등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 자체에 대한 깊은 고민을 요구하는 현상임을 보여준다. 특정 집단을 '문제'로 규정하고 제거하는 손쉬운 해법은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승리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회복탄력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 성숙한 논의다. 비관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칼 포퍼의 질문에 폭력이나 배제가 아닌, 더 높은 수준의 민주적 원칙과 절차로 답해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 그것이 한국 사회를 더 단단하고 성숙한 '열린 사회'로 이끌어가는 길일 것이다.

▲7월 12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재구속된 윤 전 대통령 석방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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