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규탄대회' 방불…야3당 '의도된 난장판'

강경화 임명 후 여야 갈등 폭발…상임위 '올 스톱', 김현미 또 불발

강경화 외교장관 임명 후 최고조에 달한 여야 갈등이 결국 국회 운영위원회 회의장에서 폭발했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운영위를 일방 소집하자 여당 의원들이 회의장에 들어와 고성으로 항의를 했고, 여당 의원들도 책상을 내리치고 목소리를 높이며 맞섰다. 파행을 빚은 운영위를 제외한 나머지 국회 상임위원회들은 이틀째 가동 중단 상태로 접어들었다.

운영위 여야 충돌…"뭐하는 거야!" vs. "반말하지 마"

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교섭단체 야3당은 20일 오후 국회 운영위 회의를 여당이 불참한 가운데 열었다. 운영위는 청와대와 국가인권위, 국회사무처 등을 관할하는 국회 상임위다.

운영위원장인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2시 15분께 개의를 선언하며 "한국당 김선동 의원 등 11명의 요청에 의해 개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운영위 소집 요구서에 서명한 것은 한국당과 바른정당 소속 위원들이었고, 국민의당 소속 위원들도 개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아침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의당은 운영위 소집에 서명은 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운영위가 소집되어야 된다는 주장을 해왔기 때문에 소집에는 뜻을 같이하고 응할 생각"이라고 했다.

정우택 위원장은 그러나 운영위 개의 직후 "논의할 의사 일정(안건)에 대해서는 간사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참석 의원들이 자유롭게 발언해 달라"고 했다. 야당이 요구해 온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 조현옥 인사수석의 출석요구 안건을 심의하지 않고, 사실상 의결 사항 없이 자유발언만 진행하겠다는 얘기였다.

이는 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3당 원내수석부대표 합의에 따른 것이었다. 당초 한국당은 이날 정우택 원내대표가 아침 원내대책회의에서 "운영위에서 문재인 정부의 인사 난맥상과 부실 검증을 따지기 위해 임종석 비서실장, 조국 수석, 조현옥 수석의 출석을 의결할 예정이고,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최근 벌어지고 있는 한미동맹 균열상을 다루기 위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도 출석을 요구할 예정"이라고 강공을 예고했었다.

하지만 한국당 김선동 원내수석부대표와 국민의당 이언주, 바른정당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운영위 개의를 앞두고 만나 "야3당이 함께 여당의 잘못을 지적하는 운영위를 여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며 "오늘 회의에서 (의안에 대한) 합의를 추진하는 것보다는 여당의 입장 변화를 기다려 운영위가 원만히 진행될 수 있도록 한 번은 기다려주는 시간을 갖자"는 데 합의했다고 김 수석부대표가 운영위 말미 발언을 통해 밝혔다.

이에 따라 안건 상정 등의 절차 없이 한국당 민경욱 의원이 먼저 여당과 청와대를 규탄하는 발언을 진행하고 있을 때, 개의 소식을 들은 여당 의원들이 회의장에 들어와 야당의 일방적 의사 진행이라며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발언 시간에 제한을 둬야 한다", "시간 낭비다", "여기가 연설장이냐? 정론관(국회 기자회견장) 가서 하라", "말 같은 말을 해야지" 등의 고함이 나왔다.

이에 발언 중이던 민 의원이 격분한 듯 책상을 내리치며 "늦게 와 가지고 뭐 하는 거야! 발언하고 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여당 원내수석부대표인 박홍근 의원은 "반말하지 마시라"고 맞받았다. 회의장은 삽시간에 여야가 상대방을 고성으로 비난하는 소리로 가득찼다. 정우택 위원장은 "(여당에도) 자유발언이나 의사진행 발언 기회 얼마든지 드리겠다"고 중재를 시도했다.

여야는 곧장 발언을 통한 비난전으로 2라운드를 시작했다. 박홍근 의원은 "오늘 회의는 절차도 명분도 없다"면서 여야 간사 간 합의는커녕 일부 교섭단체는 간사 선임조차 되지 않은 상태인데 야당이 무리하게 회의를 소집했다고 비판했다. 박용진 의원도 "냉각기가 필요하다더니 왜 운영위는 열어서 난장판을 만드느냐"고 따졌다. 조응천 의원은 "운영위는 여당에서 위원장을 담당하는 게 확립된 관행"이라며 이제 야당이 된 한국당이 운영위원장 자리를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당에서는 김선동 원내수석부대표가 나서서 "국회법 따라 1/4 이상 위원들의 요구로 열린 것"이라며 문제가 없다고 맞받았다. 김정재 의원은 과거 민주당이 야당이었을 때 여당인 (구)새누리당이 불참한 운영위에서 의사진행발언을 "마음껏" 이어간 적이 있다며 관례상 문제될 게 없다고 했다. 운영위원장직 문제에 대해서는 민경욱·정용기 의원이 "운영위원장은 국회의장, 예결위원장과 '패키지 협상' 대상이었다"며 내년 6월 하반기 원구성 때까지는 임기가 보장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입장한 2시 20분께부터 약 40분간 진행된 설전은, 3시에 민주당 의원들이 전원 퇴장하면서 끝났다. 박홍근 원내수석부대표는 "오늘 회의는 부당하다. 이런 잘못된 관행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엄중히 말하며 퇴장하겠다"고 하고 다른 의원들과 함께 회의장을 나갔다.

여당 의원들이 퇴장한 후에도 야당은 청와대와 여당을 비판하는 발언을 50분가량 이어가다가 더 이상 발언할 의원이 없자 산회했다. 조국·조현옥 수석 출석요구안 등을 일방 의결 처리하지는 않았다.

정우택 위원장은 "11분 위원들의 요청에 의해 국회법에 따라 위원회가 개의됐지만, 청와대 인사를 출석시키는 문제는 운영위의 원만한 운영을 위해 한 템포 낮춰서 가자"며 "오늘 청와대 관련 인사들의 출석을 요구하기 위해 모인 것이지만, 김선동·이언주·정양석 세 분 간사가 '한 번 더 운영위를 열어 출석 요구를 하는 것도 괜찮다'고 합의를 봤기 때문에 위원장으로서 간사 3분의 의견을 존중해 (오늘 회의는) 위원들의 의견과 말씀을 듣는 것으로 하겠다"고 말하고 산회를 선포했다.

▲ 2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이 정우택 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올 스톱'…김현미 청문보고서도 또 연기

여야 간 설전장에 이어 야당의 성토장이 된 운영위를 제외하면, 이날 국회 상임위는 모두 줄줄이 멈춰섰다. 전날 한국당과 바른정당이 국회 보이콧을 선언하고, 국민의당도 "냉각기를 가질 것"이라고 한 데 따른 것이다. 여당에서는 "냉각기가 아니라 빙하기 수준"(박용진 의원, 국회 운영위 회의장 발언)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이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을 논의할 예정이었고, 외교통일위원회·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국방위원회는 각각 조명균 통일장관, 김상곤 교육부총리, 송영무 국방장관 인사청문회 일정을 확정할 예정이었다. 이 4개의 상임위는 모두 열리지 않았다.

전날 환경노동위원회와 기획재정위원회도 열리지 않아, 조대엽 노동부, 김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와 한승희 국세청장 후보자 청문회 일정도 확정되지 못했다.

특히 김현미 장관 후보자의 경우, 청문회에서는 별다른 문제점이 지적되지 않아 당초 통과가 무난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여야 대치 국면의 유탄을 맞아 지난 16일과 19일에 이어 무려 3번째 보고서 채택이 무산됐다.

한국당은 "당분간 냉각기를 갖기로 했다. 운영위 외의 상임위는 참석하지 않을 예정"(정우택 원내대표 겸 당 대표 대행)이라고 했고, 바른정당도 "운영위와 나머지 일정이 연관돼 있다. 여당이 운영위 소집을 반대하면서 다른 상임위 참여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주호영 원내대표)라는 입장이다.

거꾸로 여당에서는 "한국당이 모든 상임위를 중단시킨 상태에서 운영위만 열겠다고 한다"(우원식 원내대표)라며 야당이 "무책임한 발목잡기"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우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야당의 국회 '올 스톱(all stop)',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라며 "요즘 한국당의 행태를 보면 나라야 어찌되든 말든 정부 발목만 잡으면 그만이라고 하는 것 같다"고 하기도 했다.

우 원내대표는 다른 야당을 향해서도 "무조건 반대인 한국당은 그렇다 치고, 대통령의 장관 임명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는 있으나 과연 국회 전체를 '올 스톱'시킬 일인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에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압박했다.

민주당은 한국당과 다른 야당을 분리해 설득할 태세다. 우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를 사무실로 찾아가 만났고, 이 회동 도중 주호영 국민의당 원내대표도 합류하면서 3자 회동이 성사됐다. 우 원내대표는 회동 직후 "한국당이 너무 협조가 안 되니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라며 "추경, 정부조직법 등 6월 임시국회 전반적 운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만 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이날 민주당으로부터 '운영위에서 청와대 업무보고를 받는 것은 7월로 미루면 어떻겠느냐'는 취지의 제안을 받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동철 원내대표는 "우 원내대표가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으니 7월에 임시회를 개최하고 그때 운영위도 열어 업무보고를 통해 따지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캐스팅 보트를 쥔 국민의당이 요구하고 있는, 강경화 장관 임명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유감 표명은 이뤄질 가능성이 높지 않은 상태다. 우 원내대표는 이날 회동에서 "대통령의 책임 있는 입장표명은 본인도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청와대에서) '장담 못 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고 회동 상대방인 김동철 원내대표가 전했다.

이날 국회를 방문한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도 "최초의 비(非)고시, 여성 외교장관이라는 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지지하고 임명해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며 "한미 정상회담과 G20 등 상황적으로 불가피했다는 점을 국민들은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야당도 여러 가지 상황과 국민들의 눈높이를 감안해 양해와 이해를 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한편 전 수석은 이날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 '인사청문회는 참고용'이라는 취지의 발언에 대해 "표현의 본의와 취지는 그게 아니었는데 다소 전달이 잘못된 점이 있었다. 그렇게 전달된 것은 표현 부족으로 인해 부적절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정 의장도 그 점을 충분히 수용했고, 어제 다시 한 번 야당 지도부에도 '오해였다'는 양해와 당부 말씀을 드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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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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