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후보는 문 후보와 홍 후보에 이어 3위를 했다. 득표율은 최종 21.4%로, 출구조사 예측치인 21.8%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안 후보는 이날 당락이 정해진 후 낸 메시지에서 "국민의 선택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변화의 열망에 부응하기에는 (제가) 많이 부족했다"라고 패배를 인정했다.
특히 그에게 뼈아픈 것은 승패 자체보다 '3위'라는 부분이다. 안 후보는, 스스로의 표현대로라면 '과거'를 대표하는 두 정치인에게 모두 뒤쳐졌다. '촛불 민심'을 구현하는 선거라는 의미 부여가 무색하게, 탄핵 반대 세력까지 끌어안은 홍 후보에게 2위를 내줬다.
이번 대선에서 나타난 득표 양상을 보면, 먼저 세대별 분석에서는 그를 정치로 불러낸 '안철수 현상'이 사라진 것으로 평가된다. 20대와 30대는 문 후보에게 50% 전후의 높은 지지를 몰아줬다. 안 후보가 20~30대에서 받은 득표율은 10%대에 머물렀다. 특히 '청년의 멘토'였던 그는 20대에서 1위인 문 후보보다 이 연령대 3~4위인 유승민, 심상정 후보와 더 적은 표차를 보였다.
호남의 선택은 더 치명적이다. 광주·전남·전북 모두 문 후보에게 과반을 넘어 60% 전후의 높은 지지를 보냈다. 호남은 안 후보가 창당한 국민의당의 텃밭이다. 총선에서는 호남 거의 전 지역을 석권하고도, 안 후보의 대선 득표율은 문 후보의 절반 이하에 머물렀다. 지역 민심에 민감한 호남 의원들이 대선 이후에도 안 후보를 여전히 믿고 따를지는 미지수가 됐다.
안철수 현상과 호남은 '정치인 안철수'의 존립 기반이 되는 명분과 현실의 양 축이었다. 때문에 개표 결과를 받아든 안 후보는 깊은 시름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바른정당 후보였던 유승민의 말처럼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라는 질문까지 곱씹을 가능성이 크다. 안 후보는 대선 기간 내내 자신은 "정치를 바꾸기 위해", "국민의 부름을 받았다"고 말했다.
국민의당은 '안철수 당'으로 남을까
당장 안 후보는 대선 직후부터 달라진 정치 현실과 마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후보는 이미 대선 과정에서 "국민의당과의 통합"을 수 차례 언급한 바 있다. 호남 민심이 이반한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이제 집권 여당이 될 민주당의 구심력에 일부 호남 의원들이 동요할 수도 있다.
대선까지 안 후보를 대신해 의원들을 이끌며 당의 '군기'를 잡은 박지원 대표도 대선 막판에는 안 후보에 대한 불만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4차 산업혁명' 등 안 후보가 대선에서 내세운 메시지에 대한 불만이나 TV 토론에서 보인 모습에 대한 실망도 있었다.
향후 내각 구성이나 새 정부 국정 과제 추진 등을 놓고 신임 대통령이 된 문 후보와 민주당은 국민의당에 협조를 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때 박 대표나 호남 의원들이 안 후보와 선을 그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또 '연대론'을 내세우며 안 후보와 대립했던 손학규·천정배 전 대표가 '자강론'에 대한 책임을 묻고 나올 가능성도 있다. 자신이 창업주인 당 내에서 고립될 여지도 있다는 얘기다.
물론 안 후보는 지난 2012년 대선 후 문 후보가 그랬던 것이나 2007년 대선 후 정동영 후보가 그랬던 것처럼 당장의 정치 현안과는 거리를 두겠지만, 이른바 '안철수계'로 분류되는 정치권 인사들은 당장 의정 활동을 해야 하고 내년 지방선거에 나설 가능성도 있는 만큼 이들에 대해 매정하게 손을 끊기도 힘든 처지다.
다만 안 후보는 지난해 총선 때나 2012년 대선 때부터 늘 "정치는 소명"이라고 강조한 만큼, 정계 은퇴를 선택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높지 않아 보인다. 그는 이날도 승복 선언에서 "대한민국의 변화와 미래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2012년 대선 때부터 안 후보를 도운 한 참모는 선거 기간 '이번에도 지면 정치 그만둘 수도 있지 않느냐'는 말을 듣고 "DJ도 4수만에 대통령이 됐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원직도 사퇴해 원외 인사 신분이 된 마당에, 패장이 돼 당 내에서의 입지도 줄어들면서 그의 정치적 전망은 한동안 어두울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어떤 '안철수 정치'가 가능할지 물음표가 찍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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