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대첩' 앞둔 문재인·안희정·안철수의 <레 미제라블>

[기자의 눈] 3월 마지막주, 운명의 주말이 시작됐다

더불어민주당 경선 결과 일부 유출 논란, 민주당 주자들 간의 신경전, 민주당과 국민의당 간의 신경전 등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아직 대선은 많이 남았는데, 벌써부터 왜들 저러나' 하는 마음도 일부 있다.

그런데 사실 그들로서는 그럴 만하다. 대선 투표일은 다다음달이지만, 3월 마지막 주인 이번 주말이 사실상 정치권에서는 '운명의 주'다. 선거 전문가라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선거는 결국 '구도'와 '인물'이라는 것이다. 대선은 총선보다 인물 변수가 크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구도의 중요성이 인물보다 더 크다. 이번 주말, 그 '구도'가 정해질 확률이 높다.

대체 이번 주말에 무슨 일이 있길래? 민주당은 25~26일 이틀간 호남 지역 ARS 투표를 진행한다. 그 결과는 27일 호남 지역 대의원대회에서 공개된다. 국민의당은 25일 광주·전남, 26일 전북 지역 순회 경선을 한다. 민주당이나 국민의당이나 호남은 최대 전략 지역이다. 추격자의 위치에 있는 안희정·이재명(민주. 직함 생략), 손학규(국민) 측에서는 호남에서 추격의 발판을 놓아야만 역전을 기대해볼 만하다.

이번 대선 구도는 명백히 야권 중심이다. 야권 후보들의 여론조사 지지율을 합하면 대체로 70% 전후다. 야권 중에서도 '대마'는 물론 민주당이다. 민주당 후보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대선의 구도가 달라진다. 국민의당 후보가 누가 되는지도 2차적이기는 하지만 꽤나 중요한 변수다. 때문에 이번 주말의 호남 대회전에는 정치인들, 정치권 언저리에 있는 이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모두 엄청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SNS에서 번진 민주당 투표 결과 유출 논란은 과열된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기대로 주말을 맞고 있다. 문재인 측은 1차전에서부터 압도적 승리를 거둬 다른 이들의 추격 의지를 일찌감치 꺾고 '대세론'을 유지하기 바란다. 안희정·이재명 측은 의외의 선전을 통해 역전의 디딤돌을 마련하고, 스스로 '돌풍'의 주인공이 되기 바라고 있다. 안철수 측은 민주당 후보가 문재인으로 결정될 확률이 높다고 보고, 올해 초부터 '이번 대선은 안철수와 문재인의 대결'이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저마다의 속셈과 희망을 갖고 있다. 이들의 운명이 모두 이번 주말에 달려 있다. 폭풍 전야의 긴장감이고, 클라이막스를 앞두고 오케스트라가 최대한으로 고조된 선율을 연주하는 상황에 비길 만하다.

2012년 대선 직후 한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영화 <레 미제라블> 가운데 '하루 더(one day more. 한국어 번안곡 제목은 '내일로')'라는 노래가 있었다. 혁명 전야, 영화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등장 인물들이 저마다의 기대를 담아 '내일'이 오기만을 기다린다는 내용의 노래다. 극중의 상황은 물론, 가사까지 한국 정치권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칼럼의 남은 부분은, 실제로 이 노래를 들으면서 읽어도 좋을 것이다. (유튜브 영상이라도 링크하면 좋겠지만, 저작권 문제가 있다.)

노래가 시작되기 전 한 마디.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 가운데 이 노래에서 빠진 유일한 이는, 줄거리 전개상 일찌감치 죽은 판틴(앤 해서웨이 분)뿐이다. 판틴의 테마 곡은 '나는 한때 꿈을 꾸었네(I dreamed a dream).' 이번 대선에 화려하게 등장할 것으로 기대받았던 어떤 분도 이번 주말을 맞기 한참 전 이미 '드롭'을 선언했다. 정치에 참여해서 국가 통합을 이루겠다는 순수한 뜻을 품었던 것은 한때의 꿈에 불과했다는 말을 남기고.

'하루 더'는 영화의 주인공인 장발장(휴 잭맨 분)의 선창으로 시작한다. 이번 한국 대선의 '주인공' 역할은, 현재까지는 문재인이다. 문재인이 노래한다. "내일로! 이 길은 끝이 없는 가시밭. 날 추격하는 저 자들은 예의라곤 모른다."

(이 부분의 원곡 가사는 "날 잡으려는 추적자는 포기라곤 모른다(These men who seem to know my crime will surely come a second time)"이다. 앞으로도 이런 수준에서 패러디가 이어질 것이지만, 수월하게 읽히게 하기 위해 일일이 단락마다 원곡 가사를 붙여 비교하지는 않으려 한다. 원곡 가사가 궁금하신 분은 포털 사이트에서 노래 제목만 검색해도 얼마든지 쉽게 찾을 수 있다.)

장발장은 빅토르 위고의 원작에서부터, 혼자서 마차를 들어올리는 괴력의 소유자로 묘사됐다. 영화에서 장발장 역으로 캐스팅된 것도 영화 <엑스맨>에서 괴력의 '울버린'으로 나왔던 휴 잭맨이었다. 최근의 '전두환 표창' 논란이 상기시키듯, 문재인도 특전사 출신이다.

문재인의 노래를 안희정이 받는다. "요새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I did not live until today)." 최근 안희정은 문재인에게 매우 화가 나 있다. 지난 22일 새벽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그의 심경을 짐작하게 한다. 안희정은 23일에는 "30년 민주당에 충성한 안희정을 배신자로 만드는 게 동지들의 우정이냐"고 했다. 안희정에게 문재인과 함께 치르는 이번 주말 경선은 "동지에게 우정을 베풀지 않는 그와 함께" 보내는 시간("One more day with him not caring")이다.

문재인 쪽은 물론, 다른 당의 안철수까지 '민주당 후보는 문재인'이라고 일찌감치 예단하고 있는 게 안희정은 불만이다. "그런데 내가 이길 수도 있다는 생각은 나 혼자 하는 건가(One more day all on my own)?"

이재명도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돌풍의 주인공은 자신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재명 측은 '호남 경선에서 안희정을 제치고 2위로 문재인을 바짝 추격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재명을 돕는 지지자들의 이름은 '손가락 혁명군'이다. 영화에서 혁명군을 이끈 지도자는 마리우스의 친구 앙졸라(아론 트베잇 분)였다. 이재명이 부를 파트다. "내일이면 폭풍이 치리! (One more day before the storm!)"

문재인 쪽은 이들의 반란 따위는 생각지도 않고 있다. '주말이 지나면 승부가 끝난다'는 예상이 캠프 안팎에서 흘러 나온다. 결선투표까지 갈 것도 없이 1차에서 끝낸다, 그것도 1차전인 호남에서부터 압승하면서 추격 의지를 분쇄하겠다는 것이다. "내일의 반란? 그 싹부터 잘라 주겠다!(One day more to revolution? We will nip it in the bud!)"

안철수 쪽은 국민의당 호남 경선에서 손학규를 꺾는 게 당장의 과제다. 하지만 안철수의 시선은 그 이후를 향해 있다. 안철수를 돕는 이들은 '아직은 안철수의 시간이 아니다'라고 한다. 안철수가 국민의당의, 문재인이 민주당의 후보가 되고 나면 지금까지의 여론조사 지지율 등은 무의미해지고 새로운 판이 시작될 것이라고 이들은 보고 있다. "하루만 더 있으면 새로운 시작, 내가 승리해서 세상을 얻을 것이다. (One day to a new beginning. There's a new world to be won)"

영화에서 감초 역을 담당했던 악역, 테나르디에 부부 같은 이들도 물론 있다. 여론조사 업체나 정치 컨설턴트 등의 대부분은 양심적이고 소신을 지키는 이들이지만, 대선이라는 '대목'을 만났으니 직업 윤리야 어찌 됐든 일단 벌고 보자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이 판이라고 없는 건 아니다. 이른바 '스핀 닥터' 등으로 불리는 업자들. "여기에 슬쩍, 저기에도 조금. 누가 이기든 우리는 돈을 버니 좋지!"

'아스팔트를 피로 물들이겠다'던 이들은 여전히 사회의 한 모퉁이에서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자베르 경감(러셀 크로우 분)은 혁명군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학생 놈들, 애송이들. 피로 물들이리라." 단, 이 노래를 부를 때의 자베르는 오랫동안 장발장을 뒤쫓아온 끈질긴 형사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시위대를 때려잡을 궁리를 하는 경비국장 같은 모습이다. '끈질긴 형사' 역은 오랫동안 집요하게 주인공(문재인)을 견제해 온 박지원 같은 이들에게 돌아갈 법하다. "(참여정부 때부터 봐 왔지만) 당신 같은 사람은 절대 안 변해! (Man like you will never change. No, 24601!)" 하지만 이 노래에는 '형사 자베르'의 분량은 없다.

대통령이 탄핵된 이후의 대선 국면에서, 국정원 등 정보 기관의 대선 개입이 있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만 함이 당연하다. 하지만 혁명 전야의 자베르는 모사를 꾸몄다. "저 민중의 영웅 양반들을 따라가서 작은 비밀들까지 모조리 캐내자!"

어쩔 줄 몰라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도 있다. 청년 마리우스(에디 레드메인 분)는 고민한다. "저기 가서 그들과 함께해야 하나? 아니면 감히 여기 남아 있어도 될 것인가?(Shall I join them there? Do I stay, do I dare?)" 유승민의 고민도 이와 같다. 영화 속의 마리우스는 부잣집 자제이지만, 자신의 계급적 이해를 뛰어넘어 혁명군에 가담한다. 유승민은 대구 출신의, 보수 정치인이지만 탄핵에 동참했다. 그러나 이후 바른정당과 그의 지지율은, 혁명군의 바리케이드가 대포에 깎여 나가듯 구멍이 뻥뻥 뚫리고 있다.

금요일이고, 이제 곧 주말이다. 호남 대회전을 앞둔 민주당·국민의당의 지지자들이 영화 속의 파리 민중들과 함께 외친다. "때가 왔다! 오늘이다! (The time is now! The day is here!)" 수많은 군중들의 모습 속에 여러 이들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자유한국당이라는 깃발을 지키려 애쓰는 모습도 있다. "자유 깃발 높이 올려라! (Raise the flag of 'freedom' high!)" 세종대왕상 앞에서 손학규는 외친다. "위대한 평민의 시대, 모든 이가 왕이 된다. (Every man will be a king)"

이들의 바람은 어떻게 될까? 누구의 바람이 이뤄지고, 누구의 꿈은 좌절될까? 노래의 마지막 소절은 장엄한 합창으로 마무리된다. 우리도 따라 불러 보자.

"내일이 오면 신의 뜻한 바를 알게 되리라.(Tomorrow we'll discover What our God in Heaven has in store.)"

참, 영화에서 이 노래가 끝나면 바로 위풍당당한 행진곡풍의 노래가 이어진다. 유명한 '민중의 노래'다. 정치인들이 긴박한 분위기로 한 소절씩 이어 부른 '하루 더(또는 내일로)'가 끝나면, 다음에 마이크를 넘겨받을 이는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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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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