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보수'를 내걸고 창당한 바른정당이 5~6%대 낮은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하며 내부 위기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대통령 보위부'로 전락했다는 비판 속에서도 조직 내부를 정비하고 대야 전열을 가다듬는 등 당력을 되살려 가고 있다.
분당 후 1달여밖에 안 된 시점이라 두 보수 정당의 경쟁은 아직 '1라운드'도 진행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선이라는 가장 큰 정치 무대에서마저 이대로 바른정당이 존재감을 잃는다면 '개혁 보수'라는 실험 자체가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탄핵은 가결됐는데…한국당·바른정당 엇갈리는 희비
바른정당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 국회 가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구(舊) 새누리당 의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지난해 12월 9일 치러진 탄핵 소추안 찬반 투표에서 나온 찬성표 234표 중 새누리당 발 찬성표는 62표 정도로 분석된다.
이후 새누리당 내 주도권은 탄핵 가결을 끌어낸 비주류 쪽으로 급격히 기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그러나 이정현 당시 대표 등 새누리당 내 친박계는 순순히 당권을 내려놓지 않았고, 급기야는 원내대표 선거에서 친박계 정우택 후보가 비주류 나경원 후보와의 싸움에서 선출되자 분당 흐름이 가속화됐다.
'바깥은 시베리아'란 친박계의 조롱 속에서도 새누리당 비주류가 탈당을 선택할 수 있었던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이른바 개혁 보수가 시대 정신이라는 가치 판단과 박 대통령의 탄핵은 장기적으로는 친박계의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현실적 계산이었다. 여기에는 물론 '반기문 변수'에 대한 기대감도 섞여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바른정당은 창당 후 컨벤션 효과란 것도 특별히 누리지 못한 채로 5%대 지지율에 갇혀 있다. 지지율 하락 내지 답보 상태가 계속되자 당내에서는 '이러다 죽는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지는 분위기다.
당 대선기획단장을 맡은 김용태 의원은 지난 19일 "지금은 경선룰보다 침체에 빠진 당을 띄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지도부가 맹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태경 의원은 "당 대표는 2월 말까지 바른정당의 초기 지지율을 원상복구해야 한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지도부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낮은 지지율에 대한 '지도부 책임론'이 중앙당 창당대회로부터 1달여 만에 제기되는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당'으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선명하게 하며 대야 전열을 대비했다. 이달 초에는 유승민 의원의 지역구인 대구 동구을에 친박계 이재만 전 동구청장을 새누리당 조직위원장으로 선정하는 등 공격적인 조직 정비도 진행했다.
탄핵 반대 집회인 '태극기 집회'에 고무된 된 자유한국당 일부 인사들의 행보도 돋보이고 있다. 김진태 의원의 '솔로 참여'에서 나아가 대선 주자인 이인제 전 최고위원과 김문수 경기도지사, 친박계 조원진·윤상현 의원 등도 대거 집회 참석에 가세했다.
당 지도부는 이런 집회 참석에는 거리두기를 하고 있지만 내심 탄핵 반대 여론이 커지는 것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15일 "(당 지지율이) 처음에는 위태한 모습을 보이며 정체했지만 이제는 16%를 돌파하고 있다"며 "현재 당이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고 지지율 역시 오르고 있다"고 흡족해했다.
급기야는 특검법 개정안 반대 당론을 '나홀로' 결정했다. 정 원내대표는 22일 박영수 특검을 향해 "철저하게 대선 일정에 맞춰 설계된 정치 특검"이라고 했다. 친박계 박대출 조원진 의원 등은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의 녹음파일 2000여개에 대해 진상 규명을 해야 한다며 '고영태 청문회' 실시를 야당에 요구하고 나섰다.
특검법 개정안 반대 당론을 결정하던 의원총회에서는 특별한 반대 목소리가 없었고 만장일치 박수 결정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탄핵 심판 후엔 달라지겠지만"…모호한 정체성과 조기 대선
탄핵 소추안 가결에도 정작 바른정당은 맥을 못 추리고 자유한국당은 목소리를 키워가는 이런 역설적 상황은 어떻게 봐야 할까.
일단은 탄핵 심판이 아직 '진행 중'인 만큼 두 보수 정당의 경쟁이 1라운드도 지나지 않았다는 설명이 나온다. 탄핵 심판이 종착지를 향해 가며 더욱 불타 오르는 자유한국당 내 친박 세력의 '막판 전의'가 중·장기적인 당의 생존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평가와 함께다.
자유한국당의 한 재선 의원은 "지금 워낙 몇몇이 나서서 열심히 싸우고 있으니까 당이 살아난 것 같지만 탄핵 심판 이후에는 또 한 번 혁신 경쟁이 시작될 것"이라며 "탄핵 심판 후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바른정당에서는 반대로 희망 섞인 전망이 나온다. 당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탄핵 찬반으로 워낙 여론이 양분돼 있으니 바른정당이 설 땅이 없다"며 "그러나 탄핵 심판 후에는 합리적 보수에 대한 지지가 다시 규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헌법재판소가 탄핵 소추안을 인용하고 이에 따라 태극기 집회 등 탄핵 반대 세력이 불복 운동을 거세게 진행하면 단기적으로는 바른정당과 같은 '중간 지대'가 설 땅이 더욱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게다가 탄핵 결정으로부터 대선까지는 불과 2달이다.
바른정당의 또다른 관계자는 "지금 당장의 지지율보다 더 큰 문제는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다는 점"이라며 "조기 대선까지 존재감을 다시 키우고 대선 국면을 돌파할 자체 체력이 키워질지가 문제"라고 했다. 탄핵 인용과 그에 따른 '박근혜 세력 몰락'이라는 외부 변수에만 기댈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당 안팎에서 정체성 논란이 꾸준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런 '자강론' 논란과 무관하지 않다. 당내 대선 주자인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그간 공식석상에서 선거권 연령 18세 하향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등 개혁 법안에 대해 당 차원의 입장이 분명해 정해져야 한다는 입장을 내왔다.
그러나 바른정당은 공수처 신설에 반대 입장을 밝혔고, 18세 선거연령 하향 조정에 대해서는 '대체로 찬성한다'와 같은 모호한 입장만을 내놓고 있다.
박 대통령의 대표적 국정 과제였던 국정 교과서와 관련해서도 입장 정리가 안 되는 모습이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국정 교과서 반대 측은 국정 교과서가 역사 교육 해석의 다양성을 해친다는 주장을 했지만, 이제는 정부가 만든 국정 교과서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본인들이 주장하던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넓히는 것"이라며 "반대 측이 자기 모순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교육 현장의 '혼란'을 키운다는 지적을 받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 교과서 혼용안을 사실상 지지한 발언이다.
최근 분출되고 있는 '박근혜 명예 퇴진론'에 대해서도 당 지도부 간 의견이 다른 모양새다. 주 원내대표는 21일 "정치권이 탄핵 이전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고 정병국 대표는 22일 "자진 하야는 해법이라고 볼 수 없다. 어떤 상황이든 헌재 판결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바른정당은 지난 12일에는 장장 7시간에 걸친 내부 토론을 마친 후 "탄핵 소추안 기각 시 의원직 총사퇴"라는 승부수를 띠우며 주목을 받았었다. 그로부터 불과 열흘 만에 당에서 '자진 하야론'이 나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주요 현안을 두고 당내 이 같은 혼선과 이견, 리더십 부재란 상황이 반복되는 모습은 정치 성향을 불문하고 누구에게도 바른정당을 '지지할 이유'를 제대로 주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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