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은 12.3 비상계엄 사태 1년을 맞은 날까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관해 질문을 받고 있다. 취임 100일을 맞은 장동혁 대표가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연일 회피하면서 제1야당은 정치·경제·사회 등 주요 현안에 좀처럼 주도권을 못 잡고 밀려나는 처지다. 당을 향한 주요 관심사가 여전히 '계엄 사과' 여부에 쏠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 대표는 연일 장외집회를 통해 대여투쟁 수위를 높이는 일에 에너지를 쏟고 있다. 집회 현장에서 장 대표가 내뱉는 강성 발언은 '국민의힘의 고립'을 더욱 자초하는 모양새가 됐다.
지난해 12월 7일 국민의힘 김재섭(초선) 의원이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1차 표결 불참에 따른 '민심 역풍'을 우려하자, 같은 당 윤상현(5선) 의원은 "1년 후에는 다 찍어주더라"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반응한 바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겪고도 다시 정권을 잡아 본 국민의힘 중진 의원의 '진짜 속내'가 드러난 단면이었다.
하지만 비상계엄에 분노한 민심은 윤 의원의 바람과 달리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유권자는 여전히 내란과 단절하지 못한 국민의힘의 행보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 비상계엄에 대한 사과 앞에서 국민의힘은 1년 내내 이해득실을 따졌다.
윤 전 대통령 탄핵으로 치른 지난 6월 조기 대선 당시, 국민의힘 '얼굴'이던 김문수 후보는 비상계엄에 대한 사과를 시종일관 얼버무렸다. 지난 7월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나경원·윤상현·장동혁·송언석 의원 등에 대한 '인적 쇄신' 칼을 빼들었지만 지도부는 응답하지 않았고, 대신 같은 시기 당을 뒤흔든 전한길 씨 입당을 방치했다.
지금 국민의힘 '얼굴'인 장 대표의 모습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장 대표는 대표직 취임 뒤인 지난 10월,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윤 전 대통령을 김민수 최고위원과 면회하며 '윤석열 어게인' 그림자를 당에 적극적으로 드리웠다.
장 대표가 '집토끼 챙기기'를 명분으로 강성 세력 결집에 신경 쓰는 동안, 중도는 점점 더 국민의힘을 외면하고 있다. 지난 6월부터 한국갤럽이 공개한 정기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6월 둘째 주부터 11월 넷째 주까지 매주 각각 진행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대체로 20%대 초중반에 머물러 있었다. 7월 한 때 국민의힘 지지율은 20% 선이 무너져 19%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특히 한국갤럽이 지난달 25~27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28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3주 연속 24%에 정체돼 있다.
중도층 지지율이 45%에 달하는 더불어민주당과 달리, 국민의힘의 중도층 지지율은 15%에 그쳤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응답률 11.9%,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장 대표의 '전국 순회' 장외집회는 지지율 반등에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점을 방증한다.
"참담하다"…'마이웨이' 장동혁에 지방선거 적신호
장 대표의 '입'을 바라보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속이 탄다. 4선 중진의 한기호 의원이 장 대표의 장외집회가 한창이던 지난달 30일, 국민의힘 의원들이 참여한 단체 대화방에 "장외집회를 계속 해야 되느냐"며 "참으로 참담하다"고 글을 올린 일이 대표적이다.
격앙된 장외집회 현장에서 '비상계엄 사과' 필요성을 밝힌 양향자 최고위원과 박정하 의원은 극단 세력에게 무방비로 모욕적인 언사를 들어야 했다. 이러한 강성 당원들의 야유를 더 부추기는 데에는 "사과와 굴종을 구분하라", "우리 당의 대표에게 무릎 꿇으라 외치지 말라"는 김민수 최고위원의 '갈라치기'도 한몫했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반년가량 앞둔 상황에서, 당내에서는 장 대표의 사과를 쇄신의 분기점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지방선거 재도전이 점쳐지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은 각각 "사과해야 한다"며 당의 비상계엄 '대국민 사과'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는 양 최고위원이 앞장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양 최고위원은 지난 1일 최고위에서도 "우리 당 모두의 잘못이고 책임이다", "지방선거의 핵심 전략 또한 스스로를 바꾸는 혁신"이라며 사과 필요성을 피력했다.
원내에서는 최형두·김용태·김재섭·박수민·박정하·박정훈·정성국 등 초재선 의원이 계엄 1년 시점에 국민의힘에서 사과 메시지가 나와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 중 다수는 장 대표가 발표하는 입장문에 '윤 어게인 세력'·'부정선거 음모론'과의 절연을 포함한 당의 확실한 향후 기조가 담겨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밖에도 복수의 국민의힘 의원들이 익명을 전제로 여러 언론을 통해 '비상계엄에 대한 당 차원의 사과', 즉 장 대표의 공식적인 입장 발표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계엄은 아무도 잊지 못한다. 100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것"이라며 "(2일 오후부터 시작되는) 추경호 의원 영장실질심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장 대표가 사과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과거 '친한동훈계'에서) 한 번 유턴한 장 대표가 다시 유턴하기는 어려울 테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장 대표가 극단세력에게 소구하는 언행을 하니 당내 위기의식은 더 커지고 있다"며 "침묵하는 중간 지대가 깨어나는 듯하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당장은 장 대표가 의원들의 사과 요구에 침묵하고 있지만, 이 같은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는 상황에서 마냥 뭉개고 넘길 수만은 없을 거라는 지적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싸늘한 민심'을 체감한다고 밝힌 수도권의 한 원외 당협위원장은 "장 대표 지도 하에 있는 국민의힘이 국민의 보편적인 지지를 받는 것 같지 않다"며 "중도층에게도 수용되지 못하고, 국민 마음에 안착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라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당이 환골탈태하려는 몸부림이 부족했다고, '장동혁 지도부'를 중심으로 모든 부분에 대해 천 번, 만 번 사과해야 한다. 합리적인, 보편적인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호소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