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러시아 '외교 전쟁', 신냉전으로 비화되나?

오바마 대러 보복 조치 단행…러시아 "정치적 송장이 벌인 조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자국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러시아에 보복 조치를 단행했다. 러시아가 크게 반발해 양국의 신냉전 전망까지 거론된다.

미국 내부적으로는 공화당이 대러시아 강경 조치에 환영 입장을 표하면서 친(親) 러시아 성향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도 "해킹에 근거가 없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 발짝 물러났다. 트럼프 당선자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에도 대(對) 러시아 관계 개선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29일(이하 현지 시각) 백악관과 미국 재무부는 성명을 통해 △러시아 외교관 추방 △미국 내 러시아 공관 시설 폐쇄 △해킹 관련 기관과 개인에 대한 경제 제재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대(對) 러시아 제재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미국 국무부는 이날 워싱턴 D.C의 주미 러시아 대사관과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에 소속된 외교관 35명을 추방했다. 국무부는 이들에게 72시간 내에 미국을 떠날 것을 명령했다. 이와 함께 뉴욕과 메릴랜드 주에 위치한 러시아 정부 소유 시설 2곳을 폐쇄했다. 이들 시설에는 러시아 관계자들의 접근이 금지되기도 했다.

또 재무부는 해킹 단체인 '팬시 베어' 등의 배후로 의심되는 러시아군 총정보국(GRU)과 러시아연방보안국(FSB) 등 러시아의 정보기관 2곳이 미국 대선에 개입하기 위해 정보 해킹을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재무부는 이들 기관과 함께 해킹 지원에 연루된 특별기술국(STG), 데이터프로세싱디자이너교수연합(PADDPS), 조르시큐리티(Zorsecurity) 등 5개 기관과 이고르 발렌티노비치 국장을 포함한 GRU 최고위 인사 3명을 비롯해 개인 6명에 대한 경제 제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오바마 행정부는 해킹과 관련된 러시아 관리들에 대해 형사 기소까지 검토했지만, 연방수사국(FBI)가 아직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일단 제재안부터 발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와이에서 휴가 중인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이번 제재는 미국의 이익을 침해하려는 러시아의 행태에 대한 대응"이라면서 "해킹은 러시아의 고위층이 지시한 것"이라고 말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연루돼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그는 모든 미국인이 러시아의 행태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동맹들도 러시아의 민주주의 개입 행동에 대해 반대해야 한다"고 밝혀 동맹국들의 협력을 촉구하기도 했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고강도의 러시아 제재안을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 16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오바마 대통령 ⓒAP=연합뉴스

반발하는 러시아, 주춤하는 트럼프, 환영하는 공화당

미국의 이번 조치에 러시아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러시아 측은 상호주의의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밝혀, 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미러 양국의 갈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이 동맹국들의 참여를 독려한 만큼 이번 사안이 미국과 러시아의 신(新) 냉전 양상으로 접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러시아 크렘린궁의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이날 "미국이 이미 망가진 러시아와 미국 관계를 파괴하려고 한다"면서 푸틴 대통령이 이에 대응해 "상호주의적인 원칙으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그러면서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는 것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며 "러시아에 대한 미국 정부의 조치는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 외교부 역시 이번 제재가 양국 관계 복원에 해가 될 것이라면서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로이터>통신은 러시아 의회의 한 관리가 "정치적 송장들이 벌인 일"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는 오바마 정부의 이번 조치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이날 성명을 통해 미국이 러시아 해킹 문제가 아닌 "더 크고 좋은 일로 넘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자는 "다음 주 정보 당국의 수장들을 만나서 이번 사안과 관련해 진전된 내용이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말해 러시아 해킹이 근거가 없다는 기존의 주장에서 한 발 물러난 모습을 보였다.

앞서 지난 11일 트럼프 당선자는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대선 개입은 "우스운 이야기"라며 "그런 일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 (민주당 측의) 또 다른 변명"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트럼프 당선자와는 달리 공화당은 이번 제재가 '적절한 조치'였다고 평가했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러시아와 미국은 공통의 이익이 없는 국가"라면서 "오늘 조치(러시아 제재)가 늦은 감이 있지만, 지난 8년 동안 실패한 대(對) 러시아 외교 정책을 끝낼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존 매케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오바마 정부의 보복 조치는 너무 늦었다.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뻔뻔한 공격의 대가로는 부족한 수준"이라면서도 "우리는 새로운 국회가 러시아에 대한 더 강한 제재를 도출해내는 데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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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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