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vs 트럼프, 러시아 해킹 '정면충돌'

트럼프 측 강력 반발…공화당도 해킹당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을 비롯한 정보 기관들이 러시아가 해킹을 통해 지난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고 발표했다. 선거의 정통성을 위협하는 이번 발표에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는 CIA를 믿을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9일(이하 현지 시각)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CIA와 국가안보국(NSA) 등 미국 정보 기관들이 러시아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거운동본부장이었던 존 포데스타의 이메일 해킹에 관여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정보기관들은 러시아군의 총참모부 정보총국(GRU)와 연계된 러시아 해커 그룹이 포데스타의 이메일을 비롯해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을 주관했던 민주당전국위원회(DNC) 관계자들의 이메일을 해킹, 이를 '위키리크스'에 넘겼다고 밝혔다.

CIA는 이메일 해킹에 사용됐던 악성코드(멀웨어)가 예전에 러시아 정부와 연계된 해커들이 사용했던 것과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해킹을 주도하고 관리한 GRU 관계자의 신원도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CIA의 이 같은 조치는 민주당 의원들이 러시아 대선 의혹에 대한 정보기관의 평가를 추가 공개를 요구, 오바마 대통령이 증거들에 대한 새로운 검토를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앞서 대선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지난 10월 15일 위키리크스는 클린턴 후보의 연설 원고와 강연료 내역을 공개했다. 위키리크스는 클린턴 후보가 고액의 강연료를 받고 거대 금융 자본에 친화적인 강연을 했다고 주장했으며, 이 폭로로 클린턴 진영은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개입했고, 특히 트럼프 당선자를 도와주기 위해 해킹을 한 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는 트럼프 당선자의 정통성 문제를 비롯해 안보 문제 등 상당한 파장을 낳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의식한 듯 트럼프 정권인수위원회 측은 10일 성명을 통해 "CIA는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WMD)를 가지고 있다고 했던 사람들"이라며 발표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지난 2003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에 WMD가 있다는 CIA의 정보를 기반으로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지만 실제 WMD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인수위 측은 이어 "선거는 이미 압도적인 결과로 끝난 문제다. 이제는 미국을 다시 한번 위대하게 만들 때"라며 이번 발표가 선거의 정당성 문제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11일 폭스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당선자 역시 7일 시사 주간지 <타임>과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해킹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중국 아니면 뉴저지에 있는 어떤 사람이 그의 집에서 해킹을 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러시아 측이 DNC와 포데스타의 이메일뿐만 아니라 공화당전국위원회(RNC)도 해킹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해킹 의도를 두고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정보 기관들은 DNC뿐만 아니라 RNC도 러시아에 해킹당했다고 밝혔다"면서 "하지만 이들은 러시아가 RNC로부터 어떠한 정보를 빼냈는지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공화당에서 얼마나 많은 자료가 해킹됐는지 확실하지 않다"며 "러시아 해킹의 주요 의도가 트럼프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정보 당국은 러시아가 단순히 선거운동을 방해하고 선거의 신뢰성을 약화시키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신문은 CIA가 "러시아가 처음에는 미국 선거 제도의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개입했지만, 이후에는 클린턴 후보에게 피해를 주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분석했다면서, 정보 기관들 사이에 다소 이견이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CIA를 주축으로 러시아의 대선 개입설이 발표되고 트럼프가 이에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정권 출범 전부터 대통령 당선자와 정보기관 간 갈등이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실제 트럼프 당선자는 11일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국가 기밀 정보 등을 전달 받는 대통령 일일 기밀 브리핑을 매일 받을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필요할 때는 (브리핑을) 받는다. 하지만 나는 똑똑한 사람이기 때문에 같은 내용을 매일 들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트럼프 당선자는 지난 2014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기밀 브리핑을 읽지 않는다고 비판한 바 있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트럼프 특유의 '말 바꾸기' 행태가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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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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