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사들은 과중한 업무와 인력 부족 속에서도 교육 현장을 지키고 있다. 그들의 일상은 정책과 제도 통계로는 드러나지 않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번 시리즈 '유보통합, 돌봄을 넘어 교육의 권리로'는 현장에서 일하는 교사들이 직접 기록한 글이다. 학급 운영의 어려움, 시간과 노동의 구조적 한계 등 구체적 경험을 통해 영유아교육이 직면한 문제를 드러낸다. 이 기록들을 통해 교사와 아동의 권리를 함께 살피며, 유보통합 과정에서 현장의 경험이 정책 논의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다.
저경력교사의 교직 이탈률이 심각하다는 기사(記事)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제는 뉴스 속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신규 임용 1년 만에 퇴직한 교사를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나도 이직해야 하나.”하고 고민을 나누는 것이 요즘 교사들의 일상적인 대화다. 교직이 싫어서가 아니다. 그렇다면 왜 교사들은 교직을 떠나고 싶어할까?
대학에서 배운 건 수업, 현장에서 요구받는 건 행정
공립유치원 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한 뒤, 한 학급 병설유치원에 발령을 받았다. 처음 들어보는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을 운영하는 유치원이었기에 사업명을 어디에서 정한 건지 확인하려고 전임 선생님께 여쭈었지만 “이제 선생님이 전문가예요, 머리가 아프니 그만 물어보세요.”라는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어떠한 말도 들을 수 없었다.
업체에 전화를 걸어 업무 절차를 파악하고, 교육청에서 매뉴얼을 받아오고, 인터넷 검색으로 품의(결제) 방법을 익히고, 교육청 공문을 참고해 공문서를 작성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규교사가 지원 체계 없이 모든 행정을 스스로 감당해야 했기에, 먹고 자고 씻는 시간을 제외하고 온종일 일만 하는 날이 이어졌다. 어느 날은 엎드려 울며 ‘이 일을 그만두고 도망치고 싶다’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런 어려움은 단순히 신규교사의 미숙함 때문이었을까?
'수업 연구'보다 '행정업무'가 더 큰 비중이 된 현실
첫 발령 후 7년이 지나 어느 정도의 경력이 쌓인 후에도 이러한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교사의 업무를 지원하기 위한 인력 선발 업무를 맡았지만 제대로 된 매뉴얼도 없이 “나도 잘 몰라요.”라는 답변을 끝으로 당장 업무 수행을 해야 했다.
국가근로장학생 지원을 받기 위해 인근 대학에 전화를 돌리고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를 올려 교사 혼자 17명의 인력을 관리했다. 인력이 필요할 때마다 공고를 내고 연수와 활동비 품의 절차를 진행하다 한 명이 그만두면 처음부터 다시 반복해야 했다. 여기에 특성화프로그램 강사와 방학 중 방과후과정 운영인력 10명 이상까지 포함하면, 교사가 관리해야 하는 인력 수는 30명에 육박한다. 교사가 수업과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보조 인력조차, 선발과 관리의 책임은 교사에게 있다.
학부모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아학비·방과후과정학비·추가지원금·무상교육비 등 다양한 지원금이 유치원으로 교부된다. 인원수에 따라 지원금을 신청하고, 예산 집행과 회계 정산까지 교사가 직접 맡는다. 정산 과정에서 1원이라도 차이가 생기면, 전교생 232명 기준 1년간 결제한 5억 2천만원 상당을 뒤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수업이 끝난 뒤 14시부터 각종 회의와 상담, 민원 대응이 이어지고, 퇴근 시간인 16시 30분부터 본격적인 행정업무가 시작된다. 매일 새벽 3~4시까지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이러다 내가 죽겠구나’ 싶은 위기감 속에 쪽잠을 자며 울던 날이 많았다. 이런 어려움은 나만의 특별한 일이었을까?
지난 10월 4일, 과중한 업무와 교권 침해로 충남의 한 중학교 교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참담한 마음에 말을 잇지 못하고 내 일처럼 공감하는 것은, 그것이 누군가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행정업무 경감을 위한 노력, 그러나 줄어들지 않는 고통
교육부에서는 2024년 ‘학교 행정업무 경감 및 효율화 방안’을 제안하였고 경기도교육청에서도 최근 몇 년간 ‘학교 안 불필요한(효율적인) 업무 발굴 목록 안내’, ‘학교업무개선 이슈페이퍼 발간’ 등을 통해 행정업무를 경감하고 이를 현장에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신규교사 발령 전후 행정업무에 대한 연수도 이루어지고 있고 ‘학교 안 1:1 동행교사제’ 운영을 통해 신규교사가 학교(유치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은 여전히 숨이 차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행정업무 경감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에도 왜 교사들은 과중한 행정업무로 고통받고 있을까? 그것은 상위 기관의 정책과 정책을 수행하는 학교(유치원), 실제적으로 업무를 추진하는 교사 사이에 간극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정책이 늘어날수록 새로운 행정이 생기고, 익숙한 관행은 그대로 유지되니 교사의 업무는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난다.
수업과 행정 사이, 흔들리는 교사의 정체성
A교사는 말한다.
"돌봄 사업 시행을 위한 인력 채용과 유아학비 정산을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때면 내가 교사인지 행정직 공무원인지 모르겠어요."
B교사는 토로한다.
"수업이 끝나면 수업 연구에 매진하고 싶은데 행정업무와 행사 준비 때문에 수업을 준비하고 연구할 시간이 없어요."
C교사는 덧붙인다.
"교사는 유아의 배움을 설계하고 지원하는 사람이라고 믿어왔지만, 통학차량 탑승과 청소, 환경구성에 매달리다보면 교사로서의 나를 잃어가는 느낌이 듭니다."
수많은 행정업무와 등·하원 차량 지도, 학부모 서비스를 연상케 하는 각종 행사는 공립유치원 교사만의 일이 아니다.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사들 역시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르치는 일이 좋아서, 아이들이 좋아서 교직을 선택한 ‘교사’들이 정작 본연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현장을 떠나고 있다.
행정업무 경감, 교사의 행복으로 이어져야 한다
교사가 수업에 전념하여 유아 중심 교육과정을 실현할 수 있는 환경, 유아의 행복을 지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려면 지금의 행정업무 경감 정책만으로 어려움이 있다. 어떻게 하면 교사가 행복하고 나아가 유아가 행복한 교육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까?
첫째, 행정업무 경감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경기도교육청의 행정업무 경감 관련 내용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고 유익한 내용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새 학기 교육정책 관련 연수 시, 행정업무 경감에 대한 연수가 함께 이루어진다면 보다 많은 교사들이 관련 내용을 알고 실천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둘째, 시도교육청 중심 통합 지원 사업을 통해 교사가 체감하는 행정업무 경감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급간식 업체 선정, 보조 인력 선발, 유아학비를 포함한 각종 목적사업비 정산 자동화 등과 같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행정업무 경감 정책을 추진하여 교사가 수업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의 행정업무 경감 정책을 학교(유치원)가 따라갈 수 있도록 관리자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시도교육청의 사업을 얼마만큼 수행했느냐가 관리자 성과급으로 이어지고, 유치원 내 보여주기식 관행들이 관리자 체면으로 이어지는 현 상황에서 행정업무 경감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시도교육청의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결국 교사이고, 유치원 내 보여주기식 행사와 문서를 생성하는 것도 교사인데 어떻게 행정업무가 경감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불필요한 업무와 효율적인 업무 내용에 대한 관리자 교육이 선행되어야 하고, 행정업무 경감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 기관과 관리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체제를 제안한다. 정책 하나가 새롭게 시행되면 그만큼 다른 행정업무와 행사는 없어져야 행정업무 과중함으로 고통받는 교사를 줄일 수 있다.
교사가 수업에 집중할 수 있을 때, 교육의 미래가 열린다
처음 발령받은 그 날부터 지금까지, 교사로서의 소망은 단 하나였다. '수업'에 온전히 전념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고 싶다는 것.
교육이 시작되기도 전에 차량 지도로 지쳐 교실에 들어와야 하는 현실보다, 인력 선발에 고군분투하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금액을 맞추는 일보다, 보여주기 위한 행사나 사업계획서 작성에 몰두하는 일보다, 나는 유아의 흥미와 놀이를 관찰하고, 배움이 일어나는 순간을 함께하는 교사이고 싶다.
스스로 만든 교육환경 속에서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내 일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대한민국 교사로 살고 싶다. 교사가 행복할 때, 비로소 교육의 미래가 열린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