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가운데 국가정보원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이가 과연 있을까. 중앙정보부 시절 독재의 첨병이었던 이 대통령 직속 기관이 현대사에 낳은 파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공 업무라는 방패 뒤에서 한국 민주주의를 유린한 숱한 사건을 우리는 기억한다.
지금은 얼마나 믿을 만한가. 우리는 당장 지난 대선에서 한국을 수호한다는 이 기관이 저질의 댓글로 여론을 호도하려 했던 기막힌 일을 알고 있다.
지난 2013년 일어난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도 잊어선 안 된다. 애초 '서울시 간첩 조작 사건'으로 명명된 이 사건의 내용은 간단하다.
국정원은 북한에 살던 화교 출신으로 탈북 후 서울시 공무원이 된 유우성이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넘겼다며 그를 기소했다. 우익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던 당시 보수 언론은 그야말로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여전히 한국은 안보 불감증이다' '서울시장도 간첩과 관계있는 것 아니냐' '이른바 좌파 정부 10년의 통치로 간첩이 이처럼 한국을 활개치고 다닌다' 등.
국정원은 북한에 살던 화교 출신으로 탈북 후 서울시 공무원이 된 유우성이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넘겼다며 그를 기소했다. 우익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던 당시 보수 언론은 그야말로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여전히 한국은 안보 불감증이다' '서울시장도 간첩과 관계있는 것 아니냐' '이른바 좌파 정부 10년의 통치로 간첩이 이처럼 한국을 활개치고 다닌다' 등.
이 사건은 조작으로 최종 결론 났다. 국정원이 제시한 핵심 증거였던 중국 공문서 3종은 모두 위조됐다. 중요한 증언으로 취급된 유 씨 여동생의 진술은 국정원의 고문으로 가공한 것이었다. 그래도 한국이 과거보단 투명해졌으리라던 믿음은 여지없이 산산조각났다. 이 사건은 한국의 권력이 얼마나 후안무치한 집단인지를 드러냈다. 아울러, '간첩'이라는 단어가 한국 사회의 여전한 트라우마임도 입증했다.
<프레시안> 편집국 막내 서어리 기자는 이 사건을 전담했다. 이 사건 취재에 이어 그는 지난해 국가 기관의 조작으로 간첩으로 내몰린 이들의 사연을 기록한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기획 연재를 도맡았다. 신간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한울 펴냄)는 제18회 국제앰네스티 언론상을 받은 이 연재 결과물을 정리한 책이다.
총 여덟 편의 간첩 조작 사연은 한국 정보 기관의 야만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흘러간 일로 취급해서는 곤란하다. 유우성 사건은 박근혜 정부 하에서 일어난 일이다. 정보 기관은 이 책에 수록된 사건들에 관해 제대로 사과하지도, 조작으로 인한 피해를 책임지지도 않았다.
책은 고문과 위협으로 인해 억울하게 간첩으로 내몰린 이들의 사연 중간에 더 생각해 볼 대목을 끼워 넣어 읽는 이의 주의를 환기했다. 왜 탈북자들은 국정원의 앞잡이가 되는지 설명하고, 국정원의 탈북자 인권 침해가 최근까지도 이어졌음을 드러냈다. 책 후반부는 국정원의 탈북자 인권 침해를 더 넓은 시각에서 조망하고,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와 변호사의 목소리를 통해 국정원 개혁의 당위성을 전달했다.
책을 읽고 나면, '저들'이 외치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추한 몰골로 일그러진 말인가가 생생히 와 닿는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하기 위해 뭔가 꾸미고 있으리라는 의구심을 버리기 어려운 국정원을 이제 양지로 끌어올려 잘못을 단죄하고, 제대로 개혁해야 한다는 당위가 한 글자 한 글자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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