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관리 올림픽, 국내 전문가는 찬밥?

[전진한의 알권리] '기록, 조화와 우애'를 강조하는 'ICA 서울 총회'라고?

190여 개국 기록 관리 전문가 2000여 명이 참가할 예정인 '2016 ICA(세계기록관리협의회) 서울 총회'가 '기록, 조화와 우애' 라는 주제로 2016년 9월 5일에서 10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된다. 이 대회는 4년마다 열리는 세계 기록 관리 전문가의 축제로, 사실상 기록 관리 올림픽에 해당하는 큰 행사이다. 아시아에서는 3번째로 개최된다. 이번 행사는 국내 기록 관리 전문가 사이에서 최고의 축제가 되어야 하지만, 정작 각 분야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소연 한국기록학회 회장(덕성여자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은 "어떤 국가에서든 국가기록원(National Archives)과 학회 및 기록 전문가 단체와 불화가 조금씩 있지만, 유독 ICA 서울 총회는 국내 학회나 민간 단체의 의견을 무시하고 있다. 조화와 협력이 필수인 총회에서 학회는 협력하고 싶어도 협력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 결과적으로 구색을 갖춘 대회로 만들기가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학회 회장으로 이례적인 비판이다. 그러면 왜 이런 비판이 터져 나오는 것일까.

기록학계에서는 행사 기간 동안 기조 강연자 선정부터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우선 국내 기록 전문가들이 ICA 총회 기조 강연자로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대신 역사학과 및 산업공학 교수, 이동통신사 전문가, 아트 센트 관장, 한국학 중앙연구원 원장 등이 기조 발제로 예정되어 있다. 반면 외국인 기조 강연자들은 중국 당안국 국장, 네덜란드 국가기록원장, 호주 기록, 정보 관리 분야 컨설턴트 등 기록 전문가들이 예정되어 있다. 올림픽에서 국내 선수들을 배체한 채, 행사를 개최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이상민 박사(ICA 전문가협회 위원회 전 집행위원)는 "우선 ICA 총회는 국내 기록 관리 부문에서 책임을 다루고 있는 기록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발표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그 반대인 것 같다. 한국의 양대 단체인 한국기록학회, 한국기록관리학회에 발표를 요청해와 준비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취소됐다. 도대체 누가 어떤 단위에서 이 세션에 대해 평가를 했는지도 궁금하다"고 비판했다. 실제 학회 등에서는 한국의 정보 공개 운동 등을 발표하겠다고 신청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탈락했다.

조영삼 박사(기록관리학)도 페이스북에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하는 세계기록관리협의회인데, 한국의 기록 관리 전문가는 한 명도 기조강연자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기록 관리 역사가 아무리 짧아도 국내에서 개최하는 ICA 총회에서 기조 강연자 한 명 내놓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번 행사를 행정자치부 및 국가기록원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면서, 학회 및 기록 관련 단체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행사 참가비도 문제가 되고 있다. 현재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행사 기간 전일(5일) 참석에 관한 비용은 조기 등록(7월 31일까지) 70만 원, 사전 등록(9월 1일까지) 90만 원, 현장 등록은 110만 원이다(학생은 예외). 공무원이 공금으로 참석하기에도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이런 문제로 인해 국가기록원은 각 지방자치단체에 공문을 보내 '서울 총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추경예산에 확보하여 주시기 바란다'고 협조 요청을 보내기도 했다.

실제 지방자치단체 일하고 있는 한 기록 전문 요원은 "ICA 서울 총회가 어떤 행사인지 간부들이 인식이 없으니까, 출장 기간 및 참석비로 인해 참석에 어려움이 겪고 있다. 국가기록원이 공문 몇 장 보내지 말고, 행사 취지에 대한 근본적인 홍보가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국가기록원 관계자가 각 기록 관리 대학원에 보낸 메일을 보면 "학생(재학생 및 수료생) 10인 이상 등록 시 1인당 15만 원이며, 서울 총회 참석을 수업 대체로 인정해줄 경우 인솔 교수님들(2명)에 대해 초청 및 감사의 의미로 무료로 등록을 추진할 계획입니다"라고 나와 있다. 한쪽에서는 지방자치단체에 추경예산까지 요구하면서 참여를 독려하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무료 입장을 추진하고 있는 셈이다.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행자부와 국가기록원은 행사 날짜가 다가오면서, 직원들이 각 부처에 행사 참석 독려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페이스북 등에서 개최 도시, 관련 단체 및 학회 등은 행사에서 배제하면서, 단순히 사람 인원 늘리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비판하는 글이 게재되기도 했다.

한 기록 관리 전문가는 "다보스포럼에 맞춰 세계사회포럼이 개최되듯, 살롱 전에서 낙선한 일군의 화가들이 낙선 전을 개최하여 후에 인상파의 계기가 되듯, ICA 총회 일정에 맞춰 주제 공모에서 떨어졌던 낙선자들의 발표를 중심으로 ICA 부록 총회를 개최하면 어떨지요"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기록, 조화와 우애'를 강조하는 'ICA 서울 총회'가 열리지만, 정작 기록 관리 전문가들은 소외감에 분노하고 있다. 과연 이런 행사가 성공할 수 있을지, 많은 기록 전문가들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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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한

2002년부터 알권리운동을 해왔습니다. 주로 정보공개법 및 기록물관리법을 제도화 하고 확산하는데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힘이 있는 사람이나 단체들은 정보를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햇볕을 비추고 싶은 것이 작은 소망입니다.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어려운 컨텐츠를 쉽고 재밌게 바꾸는 일을 하는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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