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선 132명, 김기식을 주목하라!

[전진한의 알권리] '암묵지' 기록 보존, 국회 개혁 첫걸음

'암묵지(暗默知, know how)'. 이 말은 어떤 분야든 자신의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개념이다. 모든 지식은 개인에 체화되어 있지만, 그 과정에서 문서 등의 형태로 기록되지 않는 것들이 많이 있다. 온갖 요리법이 난무하고 있는 시대이지만, 맛있는 음식을 파는 식당을 찾기란 쉽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음식 조리에도 고유의 암묵지가 있으므로 음식 맛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 암묵지를 체계적으로 기록화하고, 후임자들을 위해 잘 전달하는 것이 성공하는 조직의 특징이기도 하다.

불행히도 우리 사회에서 암묵지를 기록화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기관은 청와대와 국회였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5년 임기를 마치면 사람, 기록, 시스템 등 모든 것이 교체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 정권을 막론하고 집권 초기부터 인사 참사가 발생하는 것이 반복되었다. 또한, 국정운영에 미숙함이 드러나 각종 재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도 보여 왔다. 이런 모습에 많은 시민은 실망하고, 분노했다. 세월호 참사는 이런 문제가 한꺼번에 터져 나와 발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참여정부 이후 청와대는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이 제정되어 대통령과 대통령보좌기관·자문기관 등에서 생산하는 각종 기록은 강제로 보존되고 이관하도록 제도화 는 되었다(실제 이명박 대통령은 기록을 제대로 이관되었는지는 의문이다). 제도화 이후 실행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그것은 천천히 정착시켜 나가면 될 것이다.

국회의 경우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4년마다 국회의원들이 바뀌지만, 이들에 관한 암묵지 기록은 전혀 관리되지 않고 있다. 특히 초선으로 당선된 국회의원의 경우, 국회의 복잡한 구조에 적응하는 데만 1년 이상 소비된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렇듯 국회의원들이 시간을 낭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전임자들이 체계적으로 생산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정당, 국회의원 기록 등은 강제하는 법률도 존재하지 않아, 기록을 미등록, 파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에 관한 사회적 비용은 시민들의 몫인 것은 당연하다.

필자는 지난번 글에서 그동안 정봉주 전 의원을 제외하고는 국회기록보존소에 국회의원들이 기증한 기록이 없다는 것을 지적했다. (☞ 관련기사 : 봉주만 국회의원 기록을 남겼다고?) 이후 국회의원 중 긍정적인 움직임이 파악되고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 대표적인 의원이 바로 더불어민주당 김기식 의원이다. 그는 이번 총선에서 더민주당 경선에서 탈락해 20대 국회에 입성할 수 없다. 하지만 김기식 의원은 정무위에서 활동했던 각종 경험을 기록화해, 후임 의원들에게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과 관련된 각종 쟁점법안들, 20대 국회에서 입법추진을 해야 할 법안들을 자세히 기록화해 관련 상임위 의원에게 전달하겠다고 한다. 단순 기록 및 데이터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암묵지를 적극적으로 기록화하는 역사적 첫 사례가 될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우리는 그동안 국회에서 한번 도 경험할 수 없었던 기록의 힘을 체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작업을 준비하고 있는 홍일표 보좌관(김기식 의원실)은 "의원실에는 이미 발간되거나 공개된 자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생산하기 위해 수집되고, 축적된 방대한 기록들이 있다"며 "그러나 대부분은 폐기되거나 의원, 보좌관 개인의 기록으로만 남겨지는 경우가 지금까지의 현실이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19대 국회의 주요한 입법과제들이 20대 국회에도 이어지기에 이를 뒷받침할 자료와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은 국회의원의 의무라고 생각한다"며 "이를 국회나 각 정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진행하고 싶었으나, 우선 의원실 차원에서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20대 국회에선 이런 작업이 국회 차원에서 이뤄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17대, 19대 국회의원을 지냈던 최재천 의원(무소속)도 최근 국회기록보존소에 30박스가 넘는 기록을 기증했다. 이 기록에는 재선 의원으로 생산했던 각종 기록이 총 망라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작업을 총괄하고 있는 국회 기록보존소 김장환 연구관은 "국회의원은 국민이 직접 뽑는 선출직 공무원임에도 지금까지 국회의원 기록관리는 무주공산과 같았다. 현재까지 최재천 의원실, 민현주 의원실 등에서 기록물을 기증했는데, 다른 의원들도 국회의정활동을 기록화하는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주기를 바란다. 국회의원들의 기록기증은 의정활동에 대한 투명성과 국민의 알 권리를 증진하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20대 국회는 조선업 구조조정 등 우리 사회의 악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국민에게 혹독한 시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한 국회의 제대로 된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이번에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되는 132명 초선의원의 역할은 엄중하기만 하다. 이번 회기를 끝으로 국회를 떠나는 국회의원들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기록과 암묵지를 과감히 생산하여 초선의원에 제공하는 캠페인이 일어나길 바란다. 그것이 국회개혁의 첫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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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한

2002년부터 알권리운동을 해왔습니다. 주로 정보공개법 및 기록물관리법을 제도화 하고 확산하는데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힘이 있는 사람이나 단체들은 정보를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햇볕을 비추고 싶은 것이 작은 소망입니다.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어려운 컨텐츠를 쉽고 재밌게 바꾸는 일을 하는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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