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제국의 위안부> 비판 학자 입국 금지

'조선적' 정영환 교수, 신간 기념 강연회 입국 신청 불허 받아

조선적(朝鮮籍) 재일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신간 출간 기념 강연회 참석차 내한하려던 정영환 메이지가쿠인 대학 교수의 입국을 거부한 정부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조선적이란 현재는 사라진 나라인 조선 국적의 재일동포를 가리키는 말이다. 현재 일본에는 약 3만3000여 명의 조선적 동포가 거주 중이다.

정영환 교수는 재일 조선인 3세로, 해방 이후 재일 조선인사를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최근 일본군의 강제 성노예가 되었던 위안부에 관해 큰 논란을 일으킨 박유하 세종대학교 교수의 책 <제국의 위안부>(뿌리와이파리 펴냄)를 비판한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임경화 옮김, 푸른역사 펴냄)를 출간했다. 이번 입국 시도는 이 책 출간을 기념해 독자 강연회에 참석하려는 목적이었다.

1일 김창록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노자 오슬로대학교 교수, 서승 리쓰메이칸 대학 교수, 배덕호 지구촌동포연대 대표, 정연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표는 서울 종로구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고, 정영환 교수 입국 허가를 요구했다.

정영환 교수는 이번 입국 신청을 위해 지난달 14일, 도쿄 주재 한국영사관에 입국 허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같은 달 28일 불허 통보를 받았다. 정부가 입국을 거부한 이유는 한국 정부의 보수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 일본에서 정영환 교수가 동영상으로 1일 종로구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프레시안(최형락)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작성한 항의 성명서에서 "이명박 정부 이후 여태까지 조선적 재일 동포의 한국 입국은 사실상 불허된 상태"라며 "(한국 정부는) 국가안보상의 위협이 될 우려가 있다며 입국을 불허하지만, 정당한 조치라고 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정영환 교수는 지난 2009년 5월 학술 행사 참가차 한국 입국을 신청했으나 불허 통보를 받은 후 같은 해 8월,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는 승소했으나 2심에서 패소했고, 지난 2013년 12월,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 결정됐다. 사실상 조선적 재일 동포의 입국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서승 교수는 이에 관해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때만 해도 조선적 동포가 자유롭게 한일 양국을 왕래했다"며 "천안함 사태 이후 조선적 재일 동포의 한국 입국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한국 정부는 스포츠·문화·교육 교류는 물론, 자식 된 도리를 하고자 하는 조선적 동포의 성묘까지도 불허했다"며 "천안함 사태가 북한 소행이라손 치더라도, 이 문제에 조선적 재일 동포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비판했다. 조선적 동포 중에는 민단과 달리 북한이 조선의 정통성을 계승했다고 보는 이가 적잖다.

이번 입국 불허를 두고 김창록 교수는 "(조선적인) 정영환 교수는 대한민국 국적법상 사실상 대한민국 국적자라는 게 내 생각"이라며 "한국이 이명박 정부 이후 '닫힌 나라'로 가는 건 아닌가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일본에서 동영상 생중계로 이번 기자회견에 참석한 정영환 교수는 "모국을 왕래할 자유를 침해하고, 분단 이데올로기로 재일 동포의 삶을 규정하는 (정부의 행위는) 만행"이라며 "분단 이후 조선 민족의 역사가 '이산의 역사'임을 고려하면, 재일 동포의 삶을 정치적 목적의 희생양으로 삼는 게 아니라, 그간 이들의 입국을 막은 역사를 반성하고 이들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는 게 분단 극복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성명서에서 이들은 이번 사태에 관해 "정영환 교수에 관한 입국 금지는 세계인권선언이나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이 정한 '본국 귀환 권리에 관한 부당한 침해'라며 "규약 제12조에 의하면 그 어떤 개인도 자신의 나라로 입국하는 것을 자의적으로 거부당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 '경제, 사회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 제2조에도 이번 입국 금지 조치가 반한다고 설명했다. 해당 규약은 '누구도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기본권의 향유를 제한받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았다.

참가자들은 한국 정부의 이번 입국 금지 조치에 항의하기 위해 세계 각지의 한국학 전공자를 중심으로 항의 서명을 받고 있다. 서명자는 약 600여 명이다.

"<제국의 위안부>는 심각한 오류"

정영환 교수는 신간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를 쓴 경위도 밝혔다. 그는 이 책에서 <제국의 위안부>에 심각한 오류가 있으며, 이 책이 특히 우경화하는 일본 사회를 중심으로 정치적으로 소비되는 걸 경계했다.

그는 "<제국의 위안부>가 가진 역사 연구 방법론상의 오류, 일제 강점기에 관한 인식, 분단 상황에 관한 인식에 너무나 오류가 많다"며 "이 책은 일본 사회가 정치적 메시지로 (위안부 문제 해결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조작된 위안부 이미지를 제공한다"고 비판했다.

특히 정영환 교수는 이 책으로 인해 우경화하는 일본 사회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일본 언론은 물론, 일본 학계에서도 <제국의 위안부>의 가치와 걸맞지 않게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며 "나는 내 책에서 일본 사회가 왜 이런 모습을 보이는가도 밝히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정영환 지음, 임경화 옮김, 푸른역사 펴냄). ⓒ푸른역사
정영환 교수에 따르면, 일본의 중도 진보, 좌파 매체마저 <제국의 위안부>에 호의적 시선을 보내는 게 현실이다. 반면 3개월 전 일본에 출간된 정영환 교수의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의 경우 일본 언론에서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

정영환 교수는 "이제 우리는 우경화하는 일본 보수파뿐만 아니라, 리버럴 진영의 우경화도 생각해야 한다"며 "1990년대(고이즈미 내각) 이후 전후 혁신 세력의 (우경화) 전향 현상이 일어났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대목에서 <제국의 위안부>는 일본 내에서 정치적 접점을 가진다고 정영환 교수는 풀이했다. 일본 내 리버럴의 전향 시 큰 걸림돌이 위안부 문제였는데, <제국의 위안부>가 심리젓 장벽을 넘도록 도왔다는 뜻이다.

정영환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에 발매됐을 때, 가장 먼저 이 책에 주목한 매체가 중도 진보 매체인 <아사히신문>이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며 "현재 일본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내가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를 쓴 중요한 목적"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1일 오후 6시부터 열리는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출판 기념 강연회에 동영상 강연자로 참석한다. 이번 강연회에서는 서승 교수가 그간 경과를 밝히고, 박노자 교수와 김창록 교수가 정영환 교수와 함께 세 가지 주제로 강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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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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