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진보에 묻는다

[권혁태의 일본 읽기] <1> '사토 마사루 현상'과 김광상

연재를 시작하며

일본에 대한 관심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정보 결핍'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에겐 '이것저것 가릴 것'이 없었지만, '정보 과잉' 시대에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보만을 섭취하려는 '편식 경향'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이 연재물은 또 하나의 '편식'을 시도한다. 아니, 오히려 과거보다 훨씬 심한 '편식'일 수도 있다. 일본 사회에서 발행되는 책, 논문, 영화 등을 소재로 일본 사회의 '어떤 부분'을 소개하는 것이 이 연재가 목적 하는 바다.

'어떤 부분'이란 '정보 과잉' 시대에서조차 알려지지 않는, 알기 힘든 부분이라는 뜻이며, 그래서 '과잉 편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경우에 따라서는 일본 사회에서조차 거의 회자되지 않는 소재를 다룰 수도 있으며, 혹은 다소 알려진 소재를 다룬다 해도 다소 다른 각도에서 논의되는 입장들을 소개할 것이다. <필자>

일본의 진보에 묻는 김광상의 질문

1.

일본을 대표하는 출판사에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이라는 곳이 있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이 출판사의 전 사장을 일컬어, 한국의 미디어가 '일본을 대표하는 지성인 이와나미 출판사'의 대표라는 소개를 했으니, 이 출판사는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도 일본을 대표하는 '지성'으로 인지되고 있는 듯하다.

이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세카이(世界)>라는 잡지는 나도 애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끔은 필자로 글을 실기도 하는 곳이니 인연이 깊다고도 할 수 있다. <세카이>는 '세카이 지식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후 일본 사회의 진보/리버럴의 지식 곳간이다. 1970~80년대에는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이라는 한국 민주화 문제에 관한 연재 때문에 한국 정부로부터는 '반한(反韓) 잡지/반한 출판사'라는 '영예로운 이름'을 수여받기도 한 곳이다. 필자도 1970~80년대에 어렵게 손에 넣은 <세카이>를 사전을 찾아가며 어줍지 않은 일본어 실력으로 하나하나 읽어갔던 기억이 있다.

또 이와나미문고(岩波文庫)나 이와나미신쇼(岩波新書) 같은 전통 있는 시리즈는 일본 근현대를 관통하는 지성계의 곳간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그래서 지성적이고 진보적이며 혁신적임을 뜻하는 '이와나미 문화'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이다. 주로 대중서 중심의 출판으로 유명한 고단샤(講談社)와 대비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와나미쇼텐은 일본의 진보/리버럴의 곳간인 것이다.

그런데 이 출판사에서 진보, 지성, 혁신으로 대표되는 출판사의 이미지와는 상충될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겼다. 이 출판사에서 일하는 재일조선인 청년이 회사로부터 그리고 회사의 노동조합으로부터 시달림을 받고 있는 것이다. 경위는 이렇다.
▲ 김광상 씨의 글을 실은 잡지 <임팍션> 표지 ⓒ권혁태

이와나미 사원이기도 한 김광상(金光翔)이라는 한국 국적의 재일조선인 3세가 <임팍션(IMPACTION)>이라는 다른 잡지(격월간지)에 최근 일본의 사회 현상을 비판하는 논문('佐藤優現象'批判', 2007년, 160호)을 실었다. 베스트셀러 작가로 잘 알려진 우파 평론가 사토 마사루(佐藤優)라는 사람이 <세카이>나 주간 <긴요비(金曜日)>같은 소위 진보 리버럴 잡지에 단골 필자로 참여하는 것을 사례로 들어 일본 진보 리버럴 진영의 우경화 현상을 문제 삼은 것이다.

그런데 이 논문에 대해 우파 주간지인 <슈칸신쵸(週間新潮)>라는 잡지가 '사토 마사루 비판 논문의 필자는 이와나미 사원이었다'라는 선정적인 제목으로 악의에 가득 찬 기사를 썼고 이에 따라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와나미에서는 김광상에 대해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이 압력에 대해 항의를 해야 할 위치에 있는 이와나미 출판사 노동조합이 오히려 김광상에 대해 이지메를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것인가? 그리고 사토 마사루의 생각은 무엇이며, 이를 왜 진보 리버럴 잡지들이 앞 다투어 단골 필자로 끌어들이고 있는가? 그리고 김광상은 이런 현상을 무엇으로 진단하고 있는가?

2.

"신제국주의 시대에 일본국가와 일본인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제국주의의 선택지에는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포함된다. 국가가 자위권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억지력을 어떻게 하면 높일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헌법을 개정하지 않아도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내각법제국의 해석을 바꾸면 된다. 그래서 주변사태법에서 정하고 있는 주변지역에 타이완 해협을 포함시키고 '비핵3원칙'을 완화해서 한반도 유사시에 핵무기 반입을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 없이는 북일 교섭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북한에 대해 전쟁도 있을 수 있다는 카드를 밝히는 것이 좋다. '적(북한)이 싫어하는 것을 일부러 하는 것'이 정보전의 정석이니 재일조선인과 그 단체에 대한 탄압은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환경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된다. 북한이 (일본 측이 제시하는)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역사를 돌이켜 볼 일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일본과 러시아의 대립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일으키게 했다. 만일 러시아와 일본이 지금 북한을 진짜로 미워하게 되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알고 있을 것이다"

"미국 의회에서 추진되고 있는 위안부 결의는 사실 오인에 의한 반일 캠페인이니 일본정부가 결연한 자세로 반론을 펴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 하원 따위가 무슨 말을 해도 일본이 사죄할 필요는 없다. 중국이나 한국이 무슨 말을 해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고이즈미 총리가 그만두지 않는 것처럼 하면 된다"

"대동아공영권은 일본인이 아시아 제 민족과의 공존공영을 위해 진심으로 추구한 것이며, 현재의 유럽연합(EU)을 앞서는 선구적인 구상이다. 중국의 장제스(蔣介石) 정권은 미국과 영국의 괴뢰정권이며 왕자오밍[汪兆銘] 정권은 결코 일본의 괴뢰정권이 아니었다"


핵무기 반입의 허용, 북한에 대한 전쟁 불사론, 미국 의회의 위안부 결의에 대한 묵살 의지, 대동아 공영권에 대한 찬미. 마치 어느 우파 정치인의 판에 박힌 발언을 보는 듯하지만, 사실은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논객이면서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잘 알려진 사토 마사루(佐藤優)라는 전 외교관 출신의 주장을 뒤에서 소개하는 김광상씨 논문에서 발췌한 것이다.

사토 마사루의 경력은 다소 특이하다. 1960년생인 사토 마사루는 도시샤(同志社) 대학 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신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1988년부터 일본 외무성에서 러시아 외교를 담당했던 외교관 출신이다. 그는 2002년에 배임혐의로 체포되었고 보석 후 현재 왕성한 집필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런 경력 때문인지, 자신의 배임사건을 고백한 <국가의 함정>이라는 책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이후 약 5년 동안 무려 20여권의 저서를 집필한다.

물론 그가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고 또한 최근 일본 사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평론가라는 이유 때문에 그를 주목하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역사인식이나 정세판단 등이 별반 새로운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우파 잡지 등인 <세이론(正論)>이나 <쇼쿤(諸君)> 등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논리이다. 따라서 '뻔한 논리에 뻔한 근거'를 되새김질하는 그의 주장을 하나하나 들추어내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문제는 사토 마사루라는 사람의 생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같이 극명하게 우익 국가주의자의 주장을 소위 진보 리버럴로 분류될 수 있는 저널리즘이 묵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 진보 잡지들이 앞 다투어 사토 마사루를 단골 필진으로 등장시키고 있는 현상이다. 이를 김광상은 '사토 마사루 현상'이라 한다. 진보 저널리즘이 우파 평론가를 단골필진으로 등장시키는 현상이야말로 일본 우경화의 현 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3.
▲ 김광상 씨의 글. ⓒ권혁태

이런 현상에 대해 김광상은 명쾌하게 진단한다. 이하 개헌을 둘러싼 움직임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일본에서 최근 개헌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더구나 대표적인 호헌 세력인 공산당과 구 사회당(현 사민당)은 호헌을 담보할 수 있는 의석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할 정도로 소수 정당으로 전락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에 대해 호헌파의 전략은 기존의 호헌 층뿐만 아니라 보다 폭 넓은 '국민'층을 호헌 세력으로 포섭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북한과 재일 조선인에 대한 일본 사회의 비이성적 공격에 대해서는 일부러 눈을 감아버린다. 혹은 사토와 같은 대북 전쟁 긍정파까지도 포섭하려 한다. 또한 1990년대 이후 민주화에 의해 한국, 중국에서 불기 시작한 과거사 문제를 한국, 중국의 '반일 내셔날리즘'으로 폄하하면서 '가해'보다도 '피해'의 측면을 강조한다.

다시 말하자면, 호헌파의 전략이란 개헌 후(명문개헌 뿐만 아니라 해석개헌까지를 포함해서)의 국가체제에 적합한 형태로 살아남기 위한 리버럴 좌파의 '집단적 전향'이라는 것이다. 최근에 일본 사회에서 빈발하고 있는 재일조선인에 대한 탄압(이에 대해서는 정영환, '반동의 시대- 2000년대 재일조선인 탄압의 역사적 위상',<황해문화>, 55호, 2007년 겨울)과 북한에 대한 비이성적인 공격에 대해 일본의 진보 리버럴 세력이 왜 입을 다물고 있는가, 그리고 이런 '묵살'이 국가체제의 지향과 어떻게 관련을 맺고 있는가에 대해 김광상은 답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리버럴 좌파의 '전향'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이다. 1990년대까지 일본의 리버럴 좌파는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정 부분 '전향적'인 태도를 취했었다. 한국, 중국 등의 아시아 국가에 대해 '사죄'와 '보상'을 함으로써 역사문제에 매듭을 짓고, 경제대국에 어울리는 정치대국의 노선을 상정했었다. 그러나 형식적인 사죄와 보상 구상은 '위안부'문제에 대한 국민기금 문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한국 등의 아시아 민중들의 저항에 의해 좌절하게 된다. 이 좌절에 대한 초조함이 아시아 민중들의 저항을 '반일 내셔날리즘'으로 폄하하게 만드는 배경으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리버럴 좌파의 '전향'은 '전향'이 아니다. 리버럴 좌파에 의해 추동된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에 본래부터 식민지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거의 없었던 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는 태생적으로 식민지주의를 안고 태어난 셈인 것이다. 도쿄대학 교수인 다카하시 데츠야(高橋哲哉)가 <젠야(前夜)>의 창간에서 밝힌 다음의 창간 취지문은 전후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한계를 잘 보여준다.

"이 나라의 '쇳덩어리'(metal)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마치 전후 민주주의와 평화주의의 모든 것이 이 '쇳덩어리'를 잠깐 숨겨주었던 도금(planting)에 지나지 않았던 것처럼. (…) 1945년 패전은 민주주의와 평화주의 헌법을 가져다주었지만, 이 나라의 '쇳덩어리'에 본질적 변화는 없었던 것이리라. 지금 다시 전쟁과 차별의 시대가 오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전쟁'이란 북한과의 전쟁을, 차별이란 '국민'이라는 이름 하에 재일조선인을 배제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따라서 명문개헌의 형태든 해석개헌의 형태든 전후 50년 동안 민주주의와 평화주의라는 도금에 감추어졌던 쇳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내는 시대에 와있는 것이다.

필자 소개

1959년 생으로 고려대 사학과를 거쳐 일본 히토쯔바시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일본경제사)를 받았다. 일본 국립 야마구치 대학 교수를 거쳐 2000년부터 성공회대학 일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반일과 동아시아>(공저), <아시아의 시민사회>(공저) 등이 있다.

필자 이메일 : kwonht8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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