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노동자, '사냥개' 신세가 되다

[사회적 타살, 해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하청 노동자들

토사구팽(兎死狗烹). 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가 필요 없게 되어 주인이 삶아 먹는다는 사자성어다. 지금의 조선소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 사냥개와 다름없다.

연일 조선업종 구조 조정 소식이 신문지면을 채우고 있다. 정확히는 조선 빅3(삼성, 대우, 현대), 그리고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주인공이다. 경영위기를 이유로 대량 해고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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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에서는 퇴직 위로금을 제시하는 희망퇴직, 즉 해고가 추진되고 있다. 각각 현대중공업 3000명, 대우조선해양 2300명, 삼성중공업 1500명의 감축 계획이 진행 중이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과장급 이상 희망퇴직 위로금으로 최대 임금 40개월분과 고등학교 대학생 자녀 학자금 지급을 조건으로, 5월 9일부터 20일까지 사무직(연구직 포함) 과장급에 대해 희망퇴직을 받고, 20년 이상 근무한 과장급(기장) 이상 생산직에 대해서도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그 결과, 6월 1일 기준으로 1200명(생산직 151명 포함)이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삼성중공업은 대리급 직원 위로금으로 1억3000만 원을 일괄 지급하는 조건으로 1500명 규모의 희망퇴직을 진행 중이고 대우조선해양은 2020년까지 점차적으로 2300명 규모의 희망퇴직을 진행 중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이를 통해 하청업체를 포함, 대우조선해양에서 근무하는 인력을 3만 명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노조는 반발하고 있다. 희망퇴직자 인원과 기준이 노조와 상의없이 일방적으로 발표됐다는 것. 희망퇴직이 사실상 사직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추진되면서 대량해고와 다름없게 진행되고 있다고 노조는 판단한다.

ⓒ정기훈

빅3, 희망퇴직 진행...노조는 반발

희망퇴직에 이어 매각, 분사도 진행 중이다. 대우조선해양은 특수선사업 매각을, 현대중공업은 설비지원 부분을 자회사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대우조선해양의 특수선 사업 매각, 현대중공업의 설비지원부문 분사 등은 현재 구조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뿐더러 되레 악수가 된다고 노조는 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특수선 사업이 중국에 매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그렇게 될 경우, 구조조정 과정에서 해외 매각이 이뤄진 과거 몇몇 자동차와 전자·전기 업체 사례를 봤을 때 특허와 인력 등 핵심 자산은 쏙 빼간 채 껍데기만 남겨진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현대중공업의 설비지원부문 분사의 경우, 사실상 구조조정의 신호탄이라고 노조는 받아들인다. 설비지원 부문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는 994명. 분사가 진행되면 이들의 신분은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바뀌게 된다. 임금이 낮아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서울로 상경 투쟁을,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14~15일 조합원 85%의 찬성으로 파업안을 가결시켰다.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도 28일 유권자 5396명 가운데 4768명이 참여해 4382명(찬성률 91.9%)이 파업에 찬성했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그들

주목할 점은 현재 진행되는 조선업 대량해고의 주인공은 파업을 할 수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아닌 조선소에서 협력업체, 즉 하청업체 노동자들이라는 점이다.

ⓒ정기훈
조선협회 자료를 보면 2015년 말 기준으로 조선 빅3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현대중공업 정규직 2만3000명, 하청 3만6504명, 대우조선해양 정규직 1만32000명, 하청 3만7400명, 삼성중공업 정규직 1만3900명, 하청 2만4534명이었다.

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을 통해 노동조건을 향상시키고, 고용안정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사내하청노동자들은 임금과 노동조건 면에서 차별적 처우를 받아왔다. 노동조합 결성 등 노동기본권도 누리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실제 조선 빅3 중 하청 노조가 있는 곳은 현대중공업 뿐이다. 그나마도 조직력 문제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한 하청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경영위기라는 이유로 대량 해고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5월 18일 고용노동부 실무작업팀이 대우조선해양을 방문했을 때 대우조선해양 관리자는 3만 명 수준의 사내하청업체 노동자가 4분기에는 1만7000명 수준으로 감축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삼성중공업 관리자도 4분기부터 감축이 시작되어 총 3만2000명 노동자 중 절반 정도가 감축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중에 대다수가 하청 노동자인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현대중공업에서도 2014년 12월부터 2016년 3월 사이에 사내하청 노동자가 7742명이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2016년 하반기와 2017년 상반기에 걸쳐 약 3만 명 이상이 실직할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사냥개'가 된 하청노동자

하지만 정규직 노동자처럼 희망퇴직 등을 통해 퇴직위로금을 받지도 못한다. 되레 자신들이 소속된 하청업체에서 임금, 퇴직금 등을 확보해두지 못해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빈번하다. 고용보험도 마찬가지다.

특히 물량팀의 경우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노동자의 비중은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될 경우, 해고가 돼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게 된다.

게다가 하청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상 해고제한 조항(23조, 24조 등)의 보호를 받기도 힘든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사내하청노동자에게 고용조정 비용이 집중되고 있다. 한마디로 맨몸으로 쫓겨나는 꼴이다.

하지만 이러한 하청 노동자를 위한 지원대책이나 조치는 미비한 실정이다. 지난 28일 정부는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 사업주와 실직한 노동자를 지원하겠다지만 이것이 실제적인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 관련기사 바로가기 : 새누리 헛발질? "조선업 특별고용지원, 의미 없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하청노동자들이 대다수기이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고 전문가들이 이야기한다. 한국 조선업의 전성기를 이끈 하청노동자들이 '사냥개' 대우를 받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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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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