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상향평준화는 포퓰리즘…중향평준화 해야"

"정규직 과보호 위해 비정규직 착취"…대기업·공공 노동자 '때리기' 예고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20일 그의 첫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정규직 과보호 때문에 비정규직 처우가 악화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해결을 위한 '중향 평준화'를 주장했다.

한국 경제의 큰 문제로 지적되어 온 만성적인 저임금 문제의 원인을 '상층 노동자'에게로 돌리면서, 노동 계층 '안'에서의 재분배를 그 대안으로 제시한 모습이다.

정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 대표 연설에서 "한국 경제는 저성장 시대에 진입했다. 이제 우리를 둘러싼 경제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음을 인정해야 할 때"라면서 이 같은 주장을 펼쳤다.

그는 "새누리당은 지금까지 나눠먹을 파이를 키우는 일에만 집중해 왔다"면서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제 분배의 문제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그는 또 "저를 포함해 많은 국민이 그 동안 '대한민국이 비교적 공정하고 평등하게 분배가 이루어지는 나라'라고 생각해 왔다. 그리고 IMF 외환위기 이전에는 그런 믿음이 현실과 부합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정 원내대표는 외환위기 이후 더욱 심각해진 한국 사회의 소득 불평등 문제를 "상위 10% 사람이 전체 소득의 절반을 가져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는 말로 요약했다.

그러더니 이 10%를 "대기업 오너나 경영진, 의사와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 그리고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라고 열거했다.

이 다음부터 정 원내대표의 초점은 그 중에서도 특히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에게 맞춰졌다.

그는 "2인 1조 작업이라는 안전 수칙은 왜 지켜지지 않았던 것일까요?"라며 구의역 사건을 거론한 후 "구의역 사건은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가 비정규직에 대한 수탈로 이어지는 노동시장의 이중성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서울메트로 퇴직자들은 월 440만 원을 받았다. 이들에게 과도하게 떼주다 보니 김 군과 같이 현장에서 고생하는 직원들의 월급은 144만 원에 불과했고, 2인 1조로 일하기가 불가능한 적은 인원만 채용하게 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안전 수칙 미준수'와 그에 따른 '사상 사고'의 책임을 고용주가 아닌 피고용주에게 우선 따져묻는 모습이다.

게다가 한국의 2016년 기준 4인 가구 월소득 중위 소득은 439만 원이다. 서울메트로 퇴직자 출신들의 월급과 다르지 않다. 이렇게 보면 정 원내대표의 말은, 한국 경제에서 4인 가구의 월소득 중위 소득이 '과보호'된 임금 수준이라는 얘기가 된다.

정 원내대표는 "일자리 생태계 지도를 만들겠다"면서 구의역 사고를 활용한 대기업·공공부문 노동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정치적 공격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는 "일단 구의역 사고를 낸 서울메트로, 막대한 규모의 구조조정 자금이 투입되는 대우조선해양부터 일자리 생태계 조사를 하려고 한다"면서 "국회에서 구의역 사고 청문회가 열리면 첫 번째 과제는 서울메트로의 정규직-비정규직 일자리 지도 작성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원내대표는 정부의 '파견법 개정안' 등의 노동 개혁 입법에 대해서는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강변하기도 했다.

정부의 4대 노동법 개정안(근로기준법·파견법·산재법·고용보험법)은 휴일근로와 연장근로를 포함해 주 68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가능케 하고, 현재는 불법적인 간접고용 형태인 400여 업종에서의 파견직 사용을 합법화시키는 법안이다. (☞ 관련 기사 : "새누리 '노동 5법', 실제론 기업 보호법")

구의역 사고는 원청-하청업체 어느 쪽에도 분명한 '책임'이 주어지지 않는 간접 고용 구조에서 발생했는데, 정작 정 원내대표는 간접 고용 비정규직 확산을 명시적으로 내건 '파견법 개정안' 에는 찬성하고 나선 것이다. 구의역 사고는 애초 스크린 도어 안전 업무가 하청 업체로 외주화하지 않았다면 발생 가능성이 더 작았다. (☞ 관련 기사 : "박근혜, 컵라면 소비가 늘어나길 바라나?")

정 원내대표는 노동 시장 내 "상향 평준화는 무책임한 포퓰리즘"이라고면서 '중향 평준화'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격차가 너무 크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좌파 진영과 그 진영을 대변하는 정치인들은 '처지가 어려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만들고, 이들의 처우를 대폭 개선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서 그러나 "상층 노동자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대폭 양보하는 것이 사회적 대타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향 평준화를 뒷받침할 제도나 구조적 개선책은 제시된 것이 없었다.

정 원내대표의 말대로 '노동 계층 내 소득 재분배'가 양극화의 해법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위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로 정규직 노동자들의 근로 소득 일부가 빠짐없이 전달될 수 있는 구조나 제도가 필요하다.

대안 없는 공격성 주장만 반복되다 보니, 정 원내대표의 이날 연설은 정치적 레토릭에 가까울 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 4법의 정당성을 만들기 위해, 중위소득 수준의 공기업 노동자 임금을 '정규직 과보호'로 묘사하고, '비정규직의 불우한 처지'를 연결시켜 강조했을 뿐이라는 평가다.

실제로 정 원내대표가 '양극화 대안'이라고 한 정부의 노동 4법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 재계 단체들의 오랜 '민원' 내용과 공교롭게도 그 내용이 같다는 점이 수차례 언론 등을 통해 지적되기도 해 왔다. (☞ 관련 기사 : "박근혜 정부 노동개악, 또 하나의 '재벌 퍼주기'")

아울러 새누리당은 이명박 정부 시절 인하됐던 법인세를 다시 인상하자는 야권의 양극화 해법 주장에는 일관되게 반대 입장을 내고 있다.

"동남권 신공항, 정치인이 지역 갈등 부추겨선 안 돼"

정 원내대표는 그 외 △대기업 책임 경영 △복지 구조조정 △개헌 △핵무장론 △가습기 살균제 △맞춤형 보육 △동남권 신공항 등에 대해서도 원론적인 수준의 제 입장을 밝혔다.

그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경제 민주화에 많은 성과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며 "그럼에도 많은 국민은 여전히 경제 민주화가 미흡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타계한 두 대기업 총수의 부인이 관리했다. 전문 경영인이 맡지 못할 무슨 이유가 있느냐"면서 "논란이 검증되지 않은 재벌 2,3세들이 편법 상속, 불법적 경영권 세습을 통해 경영에 참여하는 것을 감시해야 한다"고 했다.

연금 등 복지 체계의 구조 조정도 시사했다. 그는 "복지를 위해 세금을 어디에서 얼마나 더 거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선결되어야 한다"면서 "저는 복지의 구조 개혁 문제도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사회적 대타협의 하나로서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불체포 특권과 면책 특권도 시대 상황에 맞게 조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원내대표는 20대 국회 시작과 함께 분출하고 있는 개헌 논의에 대해서는 "경제와 민생부터 챙겨야 한다"는 말로 부정적인 입장임을 재차 드러냈다.

그는 "계파, 공천, 자리 나눠먹기 등 일반 국민의 삶과 관계없는 그들만의 리그에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면서 "그런 점에서 저는 최근 제기되고 있는 국회발 개헌 논의가 그런 위험을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개헌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굳이 '정치 혐오'를 키우고 있는 현안 키워드인 '계파, 공천, 자리 나눠먹기'를 열거함으로써, 개헌 논의를 흠집내려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정 원내대표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자위적 핵무장론이 분출하고 있다. 한반도에 미국의 전술핵을 재배치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면서 "저는 둘 다 현실적인 처방은 될 수 없다"고도 주장했다.

두 주장은 같은 당의 원유철 전 원내대표와 김을동 전 최고위원 등이 주도해 왔다.

정 원내대표는 "전 세계와 교역해서 먹고사는 대한민국이 핵무장에 나서 국제 사회의 경제 제재를 자초할 수는 없다"면서 "해답은 한미 동행을 굳건하게 하는 일이다. 미국이 대한민국을 위해 언제든 핵우산을 펼쳐들 수 있도록 신뢰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도 했다.

가습기 살균제 청문회에 대해서는 "사법당국의 수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국회 차원의 진상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논란이 되고 있는 맞춤형 보육에 대해서는 "앞으로 어린이집 관계자분들과 학부모들의 입장이 조화롭게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말만 했다.

정국의 '핵'으로 부상한 동남권 신공항 문제와 관련해서는 "책임 있는 정치 지도자라면 현장에서 지역 갈등을 부추겨서는 안 된다"면서 영남권 내 갈등이 폭발할 것을 우려했다.

그는 "대한민국 국익을 지키고 국민 통합을 이끌어야 할 정치 지도자들과 시도지사들의 자제와 냉정을 부탁한다"고도 했다.

연설문의 마지막 소주제는 '책임 있는 보수'였다.

그는 연설을 마치며 "보수 정치의 본령은 책임 정치에 있다는 것이 저의 소신"이라면서 "더 이상 우리 정치가 진실을 외면하고 표만을 위한 포퓰리즘에 휩쓸려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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