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대작 논란'에 난처한 당신, 이 책부터…

[프레시안 books]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

유럽, 나아가 현대 서양 문명의 근간인 고대 그리스 문명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많은 이가 세심히 다듬은 조각상을 곧바로 생각할 것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가면 이런 의문도 품어볼 수 있다. '왜 그리스 조각상에는 그처럼 누드가 많을까?'

정확히 말해 근육질의 젊은 남성 누드 조각상이 많다. 이런 조각상을 '쿠로스'라고 하는데, 발굴된 쿠로스가 워낙 많기에 전 세계 그리스 박물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조각상의 의미를 파고 들어가면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길어 올릴 수 있다.

고대 그리스는 여러 도시로 나뉜 사회였다. 아테네, 스파르타, 테베, 올림피아 등이 대표적이다. 도시는 끝없는 전쟁을 이어갔다. 도시 간 전쟁을 벌였고, 페르시아 등 동방의 절대 강자의 침입에도 맞섰다. 자연히 전쟁에 나갈 용력 있는 젊은 남성이 중요했다. 젊은 남성의 육체를 숭앙하는 문화는 이 호전적 환경에서 나왔다.

당연히 고대 그리스에도 늙은 남성, 배 나온 남성, 비쩍 마른 남성이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도시국가는 언제든 싸움에 나서 적을 단칼에 죽일 강인한 남성을 원했다. 자연스레 미술품은 올림픽과 함께 남성의 강건한 육체를 숭앙하는 장치가 되었다. 당장 나치 제국의 히틀러가 그리스 문명을 독일과 동일시한 데서도 이런 욕망의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

쿠로스에서는 전혀 결이 다른 의미도 짚어낼 수 있다. 그리스의 조각은 그보다 2000년 전 찬란히 꽃핀 고대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미술 양식에 직접적 영향을 받았다. 오랜 기간 노골적으로 이들의 기법을 흉내 냈을 정도다. 다른 점은, 그리스의 미술품은 인간 자체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동방과 아프리카의 거대 제국은 미술로 신을 추앙하고, 권력자를 떠받쳤다. 신마저 인간적이었던 그리스에서 미술품은 인간 자체를 숭앙했다. 동물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한 반인반수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신성함의 상징이었으나, 그리스에서는 추악한 생물로 격하됐다. 인간이 자연을 이긴 것이다. 인간을 숭앙하고, 인간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믿음. 그리스는 유럽 문화의 출발이었다.

▲아테네국립고고학박물관에 보존된 제우스(혹은 포세이돈) 청동상. 기원전 460~450년 제작 추정. 얼굴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조각 기법을 본땄고, 몸의 배치 형태는 이집트 문명의 조각상 기법을 발전시켰다. 강인한 육체를 세밀히 묘사해 강인한 남성성을 숭앙함을 보여줬다. ⓒwikimedia.org

미술 해석은 비평의 꽃이며, 나아가 인문학의 정수다. 미술품에 당대 사회상, 감수성, 역사적 맥락이 함축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술 전공자가 아니라면 미술품의 가치를 여유 있게 감상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우리는 예술품을 찬찬히 음미할 소양을 배우지 못했다. 로마 판테온을 떠받치는 기둥이 무슨 양식인가는 입시를 위해 배웠으나, 이 양식이 어떤 사회적·역사적 의미를 배우는가를 생각해볼 여유는 얻지 못했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이하 난처한 미술이야기, 양정무 지음, 사회평론 펴냄)는 미술에 완전히 까막눈인 사람을 위한 대중 교양서 시리즈다. 총 8권으로 구성된 이 시리즈의 첫 두 권이 최근 나왔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대학교 교수가 두 권의 책에서 구석기 시대 동굴 벽화부터 로마 제국 시대 콜로세움에 이르기까지 고대 문명 태동기 미술품을 친절히 설명한다.

최근 유행하는 인문학 초급 지식서 발간 흐름에 발맞춘 시리즈라고 봐도 무방하다. 사회평론은 미술을 포함해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이 세상 모든 지식'을 시리즈물로 낼 예정이다. <난처한 미술이야기>는 그 첫 작품이다. 미술 감상 소양이 부족한 독자를 겨냥한 이 책은 가상의 문외한(독자)이 던지는 질문에 양정무 교수가 친절히 답변하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셀 수 없을 만큼 풍부한 작품 사진은 독자가 양정무 교수의 답변을 근거로 삼아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적재적소에 배치됐다.

비록 그 깊이나 다루는 이야기의 양이 예술 애호가의 눈에는 충분치 않은 수준이겠으나, 유행에 편승해 범람하는 스낵 컬처류의 책과는 비교를 불허한다. 저자는 구석기-이집트-메소포타미아-에게해-그리스-로마로 큰 틀의 시대 배경을 나누고, 해당 시대 미술 양식을 특정한 주제를 갖고 접근한 후, 역사와 문화, 정치체제 등 풍부한 정보를 독자에게 제공한다.

덕분에 독자는 프랑스 라스코의 동굴 벽화,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 아슈르바니팔 왕의 업적을 기리는 전승 기념 부조, 제우스 기념 청동상, 콜로세움을 감상하며 고대 인류 문명을 큰 틀에서 훑는 경험을 얻는다. 조각상에서 인본주의, 나아가 유럽 문명의 기초를 뽑아낸 쿠로스 사례가 대표적이다. 책에서 저자는 쿠로스의 변천 과정을 설명하며 이집트를 흉내 내던 그리스의 조각이 우리가 아는 '그리스식 조각'으로 변화하는 결정적 과정과 그리스 민주주의의 여명기가 겹친다는 연대기적 설명을 덧붙여 상상의 폭을 넓혀준다.

▲라스코 동굴 벽화 중. 기원전 17,300년경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유독 소를 많이 그렸다. 사냥의 기원, 풍요의 상징 등으로 해석된다. 저자는 책에서 애니미즘 신앙을 구석기 시대 사람들 나름대로 푼 것 아니냐는 의견을 조심스레 내놓는다. ⓒwikipedia.org

모든 해설의 배경에는 역사적 설명이 앞선다. 이집트 왕조 변천기를 다룬 후 피라미드와 왕들의 계곡 설명이 뒤따르고, 각지에서 발굴된 부장품을 선보이며 미술품이 가진 시대적 의의를 되새기는 식이다. 이후 이 미술품이 후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설명하는 대목에 이르면 독자는 그제야 무릎을 치게 된다. 고대 로마의 목욕장이 건축학적으로, 미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설명하기 이전에, 저자는 강대하던 로마 제국이 빈부 격차로 흔들리던 사회상을 먼저 이야기한다.

유럽 중심적 시각에 치우치지 않았다는 점도 반갑다. 연대기를 곁들여 이집트 문명의 찬란한 예술품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5000년 전 인류의 거대한 발걸음이 검은 대륙에서 시작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유럽 중심 사관을 가졌던 19세기~20세기 서양 지식인의 시각을 비판한다.

방대한 분량의 책이지만 활자가 크고, 내용이 쉬워 술술 읽힌다. 이 책은 따라서 미술품을 감상할 기초 교양서의 임무를 백퍼센트 수행한다. 유럽 여행을 가서도 박물관을 둘러볼 필요를 느끼지 못한 독자라면, 이 책을 읽은 후 생각이 바뀔 것이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이하 난처한 미술이야기, 양정무 지음, 사회평론 펴냄) ⓒ프레시안
모든 이야기의 시작인 구석기 동굴 벽화를 다루는 1권의 첫 장부터 미술품을 읽고 싶다는 욕망이 솟아오른다. 저자는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 유물인 빗살무늬토기로 이야기를 시작한 후, 프랑스 라스코 동굴의 벽화에 왜 그토록 황소 그림이 많은가를 설명한다. 저자는 "벽화의 의미를 명확히 짚을 수 없다"고 먼저 한계를 설명한 후 자신의 생각을 조심스럽게 밝히는 한편, 다른 이들의 견해도 같이 설명한다. 이후 저자는 곧바로 고갱과 피카소의 작품으로 이야기 대상을 전환해 이 작품의 시대적 의의를 제시하고, 잭슨 폴록의 추상미술 작품까지 이어진 미술 사조까지 소개한 후 다시 구석기로 돌아온다. 그제야 독자는 구석기 미술의 원시미가 지금도 예술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직관적으로 깨닫게 된다. 미술품을 사유하며 얻을 수 있는 지적 쾌감이 어떠한가도 일견 맛보는 체험의 순간을 얻는다.

왜 미술인들이 그토록 피카소의 작품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지 알게 되고, 우리가 '유럽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이 위대하고 현대에도 실존하는 아프리카 토착 부족의 미술품은 저급하다'는 식으로 은연 중 생각한 것은 아닌지 되묻게 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미술품 감상 포인트와 감별할 안목을 얻게 된다.

물론, 저자가 제시한 감상의 길은 일직선이다. 우리가 마냥 저자의 지시에 따라 미술품을 감상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비평이란 언제나 보수의 토대 위에 감상자가 새로운 가지를 넓힐 때 발전한다. <난처한 미술이야기>는 일단 토대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최고의 교과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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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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