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선 송나라 때 자본주의가 발아했다?

[김윤태의 중국은 하나?] 장쑤(江蘇)의 매력

중국의 젖줄이라고 하면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양쯔강(揚子江; 長江)을 떠올린다. 이 강은 중국 대륙의 중앙부를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강이며, 아시아에서 가장 긴 강인 나일 강과 아마존 강에 이어 지구상에서 세 번째로 긴 강이다.

이 양쯔강은 청두, 충칭, 우한, 난징, 쑤저우, 우시, 상하이 등의 중요 상공업 도시를 관통한다. 뿐만 아니라 약 5억에 가까운 인구가 이 강에 의존하여 살고 있다. 운하를 통해서 더욱 많은 도시들과 연결되어 있으니 실제로는 전 중국 인구의 절반은 이 강에 의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양쯔 강을 중국의 젖줄이라 해도 틀림이 없다.

전통사회의 어미지향(魚米之鄕)에서 남방 정치경제의 중심으로


중국의 젖줄 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며 가장 번성한 지역이 바로 장쑤(江蘇)다. 장쑤 지역은 청나라 때의 장닝푸(江寧府)와 수저우푸(蘇州府)의 첫머리 글자를 따서 만들었으며, 약칭은 쑤(蘇)다. 쑤(蘇)라는 글자는 풀 초(草), 물고기 어(魚), 벼 화(禾)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곡창지대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물산이 풍부하다는 지역적 특색은 어미지향(魚米之鄕)이란 별칭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먹을 것이 풍부하면 문화가 발달한다. 그러므로 장쑤는 시문과 예술이 있는 강남 문화의 대표지역일 수밖에 없다.

장쑤는 사주지부(絲綢之府)란 별칭도 갖고 있다. 예로부터 쌀, 도자기, 인쇄술, 화약, 종이, 비단이 많이 생산되어 일반 서민들까지도 그 풍요로움을 누렸다 한다. 이를 근거로 장쑤에서는 송나라 때에 이미 자본주의가 발아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자본주의 맹아론(萌芽論)이 그것이다. 물론 장쑤의 자본주의 싹은 서구와 같은 산업혁명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만약 여기에서 자본주의가 꽃을 피웠다면 지금의 세상은 확연히 다른 세상이었을 것이다. 서구 열강의 침입으로 몸살을 앓는 일도 없었을 것이며, 자본주의 산업화가 서구화와 동의어가 되는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즉, 동방의 산업화, 현대화가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쉽지만 아무튼 장쑤는 중국 상공업 발달의 중심이었다.

장쑤는 또한 중국 남방의 정치경제 중심지이기도 하다. 장쑤성의 성정부 소재지인 난징(南京)은 북방의 베이징에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정치경제의 또 다른 중심지이다. 명(明) 태조 주원장(朱元璋), 국민당의 장개석(蔣介石) 등 남방세력들이 수도로 삼은 곳이다. 현대에 와서도 예전의 휘황했던 이름을 저버리지 않았다. 장쑤성 최대의 공업도시, 소비도시, 수륙교통의 중심지로서 전통과 명성을 이어나가고 있다. 우시(無錫)와 쑤저우(蘇州) 또한 운하를 통한 내륙수운의 중심지로서, 쌀과 생사(生絲)의 집산지로써, 최근에는 IT 산업의 중심지로서 중국 경제의 또 하나의 축으로 성장하고 있다.

"하늘에 천당이 있다면 속세에는 쑤저우와 항저우가 있다.(上有天堂, 下有蘇杭)"는 말이 있다. 중국의 대표적 곡창지대이니 먹거리가 풍부하고, 시문과 예술이 발달되어 있으니 가히 속세의 천당이라 할 수 있다. 곳곳에 아름다운 정원이 함께 하는 정원도시 쑤저우,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도시 저우좡(周莊) 등, 장쑤의 곳곳은 빼어난 인문의 보물창고이다. 천성적으로 시적이고 서화적인 정서와 다정다감하고 온유한 성정을 지니지 않을 수 없는 인문적 환경이다.

이러한 인문환경의 영향 탓인지 장쑤 사람들의 어투나 행동거지는 대단히 부드럽고 온화하다. 산동이나 동북 지방 사람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풍모를 가지고 있다. 특히 여인들의 어투는 더없이 부드럽고 애교스럽다. 장쑤가 예로부터 수예로 유명한 것도 이런 부드러운 문화와 여인들의 솜씨에서부터 비롯되었음이 분명하다.

▲ 양쯔강 위에 떠 있는 선박들. ⓒwikimedia.org

인재가 넘치는 고장

장쑤는 자고이래(自古以來)로 인재(人材)가 많이 나는 지역이다. 중국의 4대 고전명저 중의 3대 명저가 장쑤와 관련이 있거나 장쑤 출신 작가가 쓴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청대의 약 260년 동안 전국 문과 장원(壯元) 114명 중 장쑤 출신이 49명이나 된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장쑤 출신이라는 이야기다. 이 중에는 36년간 한 문중에서 5명이나 장원이 나온 집안도 있다. 이와 같이 장쑤 지역, 특히 쑤저우는 인재가 아주 많이 나는 지역으로 정평이 나있다. 지금에 와서도 다르지 않다. 장쑤성 대학입시 수석은 늘 쑤저우에서 나온다 하니 전통의 힘이 대단하긴 한가 보다.

인재의 고장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아마도 강남의 경제발전과 수려한 인문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수려한 산수를 찾는 문인과 인재들이 이곳에 모여들게 되었을 것이고, 이들이 각 지역의 선진적인 문화를 전파하여 더욱 빛을 발하게 했을 것이다. 또한 환관의 전횡으로 얼룩졌던 명나라의 역사와도 관련이 깊다. 환관들과 첨예하게 대립했던 장쑤 출신의 문인관료들은 환관들의 전횡에 밀려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은자(隱者)로 사는 길을 선택했다.

쑤저우의 원림은 그들에게 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공유하고 자기수양과 자아표현을 할 수 있는 최상의 공간이 되어 주었다. 쑤저우의 원림이 새로운 인재를 만들어내는 산파가 된 것이다. 장쑤는 부드러움, 여성, 문인, 인재, 예술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창의와 융합이 새로운 화두가 된 지금, 장쑤의 기술과 산업, 문화와 예술은 어떤 모습으로 융합되고 창조될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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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

동덕여자대학교 중어중국학과에서 중국 사회를 강의하고 있다. 외교부 재외동포정책 실무위원이며, 동덕여대 한중미래연구소에서 수행하는 재중한인연구사업단 단장을 맡고 있다. 국립대만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중국 사회에 관한 다양한 이슈뿐만 아니라 조선족 및 재중 한국인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 왔다. <재중 한국인 사회 조사 연구>, <臺灣社會學想像>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 연구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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