쑤저우는 어떻게 '강남 천당'이 됐나?

[김윤태의 중국은 하나?] 쑤저우(蘇州), ‘쑤난 모델’에서 ‘신 쑤난 모델’로

쑤저우(蘇州)는 2500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역사 문화의 도시다. 그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 비단의 도시(絲綢之府), 정원의 도시(園林之都), 물의 도시, 물고기와 쌀의 고장(魚米之鄕), 동방의 베니스 등이 그것이다. 풍경이 아름답고 물산이 풍부하며 시와 예술이 있는, 강남을 대표하는 고장이다. 오죽하면 하늘에 천당이 있다면 땅에는 항저우와 쑤저우가 있다고 표현했겠는가.

역사와 문화의 고도 쑤저우가 이제는 장강 삼각주 지역의 떠오르는 태양으로 거듭나고 있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미 쑤저우의 명성은 상하이를 위협할 정도다. 쑤저우의 혁명적 변화를 이끌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쑤저우 공단(蘇州工業園區)이다. 싱가포르 공단과 쑤저우 신공단을 포함하는 쑤저우 공단은 전체 면적이 6800만 평 정도로 한국의 삼성전자 수원 단지의 약 150배에 해당하는 초대형 하이테크 생산 단지다.

2005년 당시에 이미 한국의 삼성전자를 포함하여 세계적인 외자 기업을 500개 이상 유치하면서 상하이에 이어 중국 최대의 외자 기업 집중 투자 지역으로 부상했다. 또 공단 내에는 직원을 위한 아파트와 학교, 병원, 오락 시설 등 각종 편의 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쑤저우 공단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배경에는 인접한 거리에 상하이라는 거대한 시장이 위치하는 점, 상하이에 비해 매우 저렴한 토지 가격, 외자 기업에 유리한 세수 정책, 저렴하고 우수한 노동력 등이 자리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 들어서는 선전이나 광저우에 있던 외자 기업조차 쑤저우로 북상하고 있을 정도다. 쑤저우 공단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쑤난 모델(蘇南模式)의 본고장

사실 쑤저우의 획기적 변화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개혁 개방 후 이미 전국의 대표적 발전 모델 가운데 하나로 유명했다. 소위 '쑤난 모델(蘇南模式)'이라 불렸던 쑤저우 일대의 발전 모델은 광둥성의 '광둥 모델(廣東模式)', 저장성의 '원저우 모델'(溫州模式)'과 더불어 1980~90년대 중국 경제 발전을 대표하던 발전 방식이었다.

광둥 모델은 화교 기업의 자본 투자를 배경으로 한 발전 모델이라면, 원저우 모델은 사영 기업과 자영업의 발전이 두드러진 특징을 갖고 있었다. 또 쑤저우(蘇州), 우시(無錫), 창저우(常州) 등을 대표로 하는 장쑤성 남부(蘇南) 지역에서 이뤄진 경제 발전 모델인 쑤난 모델은 향진 기업(鄕鎭企業)의 발달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는 점과 일종의 '정부 주도형' 경제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향진 기업의 발전은 균형 경제 발전을 이루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농촌의 산업화는 과도하게 도시로 집중되는 도시 과밀화를 방지하고 도농 간 균형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영향인지 지금도 장쑤 성의 농촌 소득 수준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높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으로 넘어오면서 향진 기업 발전을 중심으로 하는 쑤난 모델은 사영 기업과 자영 경제를 중심으로 하는 원저우 모델의 발전 속도에 밀리면서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촌정부나 향정부가 기업의 '사장' 역할을 하고 마을 전체가 기업의 집단 소유권을 갖는 향진 집체 기업은 점차 경쟁력을 잃게 되었다. 재산권과 소유권의 경계가 모호하고, 정경 분리가 이뤄지지 않아 기업 경영의 효율성을 향상시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 지방 정부의 과도한 간섭과 정치형 기업가들의 비전문성도 이들의 경쟁력을 후퇴시키는데 한 몫을 했다.

▲ 개발과 함께 과거의 흔적이 지워지고 있는 쑤저우 기차역의 묘한 풍경 . ⓒwikimedia.org

과감한 혁명의 시작

위기에 직면한 쑤저우 지역은 과감한 혁명을 시작했다. 거대한 공단을 마련하고 외자 기업을 유치하는 정부의 노력 외에도 향진 집체 기업들의 현대식 기업 체제로의 전환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전통적인 향진 집체 기업을 포기하고 사영 기업화, 주식 합작제의 도입, 외자 기업과의 합자를 서둘렀다. '쑤난 모델'이 소위 '신 쑤난 모델'로 혁신한 것이다.

우선 불명확했던 재산권과 소유권에 대한 개혁을 단행했다. 이로써 지역 정부의 간부와 향진 기업 경영자 간에 형성되었던 복잡한 의존 관계와 부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쑤저우 시의 경우 전체 향진 기업의 90%를 상회하는 향진 기업이 다양한 재산권 주체를 포함하는 새로운 경제 형태로 전환했다. 동시에 향진 정부가 향진 기업을 직접 지배하던 제도를 폐지했다. 정부와 기업을 분리함으로써 기업이 시장의 논리와 효율에 충실할 수 있도록 조정했다.

소유제와 관련된 혁신과 더불어 쑤난 지역은 외향형 경제로의 발전을 시도했다. 중국 국내 시장에 국한된 형태에서 벗어나 외국 자본과 첨단산업의 유치와 건설 그리고 거대한 공업 단지의 건설을 통해서 외향형 경제로의 혁신을 추구했다. 예를 들면, 상하이 푸둥(浦東) 지역 개발과 함께 쑤난 지역의 쑤저우, 우시, 창저우 등 도시에 국가급 첨단기술 개발 구역을 건설했고, 장쟈강(張家港)에는 장쑤 성 유일의 국가급 보세 구역을 건설했다.

이제 쑤저우를 비롯한 쑤난 지역은 전통적인 향진 집체 기업 대신 사영 기업과 주식 합작제, 외자 기업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발전 모델을 창조하고 있다. 또 노동 집약형 산업 대신 하이테크를 중심으로 하는 산업 구조 조정을 진행하고 있으며, 우수한 인재 유치를 위해서 중국 내에서 선도적으로 호구제도를 폐지하는 혁신을 단행하기도 했다.

정부와 민간의 혁신으로 형성되고 있는 '신 쑤난 모델'은 '쑤저우 혁명'이라는 말과 함께 장강 삼각주 경제의 질적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과거 농촌 경제, 향진 집체 경제로 농촌의 경제 발전을 구가했던 쑤난 지역이 이제는 하이테크, 외자 기업의 발전을 중심으로 하는 외향형 경제로 변신하여 다시 한 번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낼 줄 아는 중국인들의 탄력적 노력(resilience)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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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

동덕여자대학교 중어중국학과에서 중국 사회를 강의하고 있다. 외교부 재외동포정책 실무위원이며, 동덕여대 한중미래연구소에서 수행하는 재중한인연구사업단 단장을 맡고 있다. 국립대만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중국 사회에 관한 다양한 이슈뿐만 아니라 조선족 및 재중 한국인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 왔다. <재중 한국인 사회 조사 연구>, <臺灣社會學想像>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 연구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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