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아내를 양도할 수 있나요?"

[양지훈의 법과 밥] 반사회적인 결혼 계약, 유효할까요?

일본 탐미주의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소설 <만(卍)>에서, 두 남녀가 여주인공 미쓰코를 사이에 두고 매우 흥미로운 서약서(계약서)를 체결하는 장면을 선보입니다. 미쓰코의 남자 연인 와타누키와 여자 연인 소노코가, 미쓰코를 사이에 두고 의남매를 맺고 이렇게 계약을 맺습니다.

"만일 두 사람 중 어느 한쪽이 미쓰코에게 버림받을 경우 다른 한 사람도 진퇴를 함께 한다. 즉 와타누키가 버림받을 경우 소노코가 미쓰코와 교제를 끊고, 소노코가 버림받을 경우 와타누키가 미쓰코와의 약혼을 파기하고 결혼했을 경우 이혼한다."

여성 동성애자 미쓰코가 양성애자인지는 불분명하나, 어쩔 수 없는 처지에서 남성인 와타누키와도 혼인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소노코와 와타누키는 서로의 관계를 인정하고 안정적인 삼각관계를 유지하고자 위와 같은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습니다.

계약서대로 관계가 진행된다면, 와타누키와 소노코는 한 명의 연인을 공유하는 이상한 의남매가 되는 것이지요. 계약서는 의남매의 권리와 의무에 더하여 미쓰코가 어느 한 명의 연인과 헤어지게 된다면, 나머지 연인도 반드시 미쓰코와의 관계를 정리해야 하는 의무를 서로 부과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합니다.

현실에서 이러한 계약이 체결되었다면 계약 내용은 유효할까요? 위 계약에 따라 만일 소노코가 미쓰코와 헤어진다면, 미쓰코와 혼인한 와타누키는 반드시 이혼해야 할까요?

우리 민법을 적용하여 결론부터 말하자면, 의남매인 소노코의 관계가 정리되어도 와타누키가 이혼할 의무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계약의 내용이 무효이기 때문입니다.

민법 103조, 반사회적 법률 행위는 무효

민법 제103조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 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 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선언합니다. 계약이 '(사회 질서에 위반한) 반사회적 법률 행위'가 될 경우 무효로 하는 것이지요. 법률 행위(계약)가 무효라는 것은, 쉽게 말해 계약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와타누키와 소노코가 각자의 연인인 미쓰코를 공유하기 위해 위와 같은 계약을 체결했다고 하더라도, 계약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당사자들은 계약의 내용에 구속되지도 않고 계약 불이행을 이유로 상대방에게 어떤 책임도 물을 수 없습니다. 반대로 계약이 유효하다면, 소노코가 미쓰코와 헤어졌음에도 와타누키가 미쓰코의 관계를 유지할 경우, 소노코는 계약 불이행을 이유로 와타누키를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 등을 할 수 있습니다.

무효의 원인이 된 반사회적 법률 행위를 모두 일별하여 정의하는 것은 어렵지만 몇 가지 유형으로 보면, '정의 관념에 반하는 행위'(증언의 대가로 금전을 증인에게 지급하기로 하는 불법적인 대가 지급 약속), '가족 질서 등 인륜에 반하는 행위'(부첩 계약이나 처의 이혼 시에 내연녀와 혼인하기로 하는 혼인 예약),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하는 행위'(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혼하지 않겠다는 서약) 등으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소설에서의 계약서는 인륜에 반하는 행위이자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하는 행위에 해당할 수 있어 무효가 됩니다. 민법의 대원칙인 계약 자유의 원칙과 달리 민법 제103조가 반사회적 법률 행위를 무효로 선언하는 것은, 법률 행위의 내용이 적법해야 한다는 보충적인 규정을 통해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계약에 일정한 규제를 하겠다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예컨대 부첩 계약을 계약 자유의 원칙에 따라 허용한다면 일부 일처제를 근간으로 하는 한국의 결혼 제도는 사회적으로 유지되기 어려우니, 애초에 부첩 계약을 무효로 선언하고 결혼 제도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참고로 부첩 계약에는 민법 제103조가 적용되지만, 이중 혼인을 금지하는 규정은 민법 제810조가 적용됩니다("배우자있는 자는 다시 혼인하지 못한다").

작가의 아내 양도 사건, 반사회적 계약의 이행

흥미로운 사실은,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실제 '아내 양도 사건'을 통해 반사회적 법률 행위를 몸소 실천하기도 했다는 점입니다. 다니자키가 서른 살이었던 1915년, 첫 번째 결혼한 아내 치요코를 친구였던 하루오에게 양도하기로 약속했다가 이를 한 번 번복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자키가 1930년에 이르러서 결국 아내와 이혼하고 아내가 하루오와 결혼한다는 공동 명의의 발표문을 신문에 게재하는 아내 양도 사건이 발생합니다(다니자키는 두 번 이혼하고 세 번 결혼합니다).

다니자키가 친구인 하루오와 약속한, 아내 양도 계약은 당연히 반사회적 법률 행위로 무효입니다. 계약의 유효 무효를 떠나서, 양도의 대상이 된 아내 치요코는 다니자키와 이혼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경우에 따라 이혼을 거부하며 재판으로 이혼을 다툴 수도 있으며, 하루오와의 혼인을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설보다도 더 소설 같은 일이 현실에서 발생합니다. 다니자키와 하루오, 그리고 양도 대상이 된 아내 치요코 세 사람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아내 양도 계약을 착실하게 모두 이행합니다. 당사자들이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계약을 이행함으로써 가볍게 법률의 영역을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지요. 법률도 개인의 사사로운 영역에서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사 표시와 그 이행을 막을 수 있는 강제력은 없는 것입니다.
양지훈 변호사는 법무법인 덕수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위 글의 내용에 대한 추가적인 문의 사항이 있거나 법률 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메일(jhyang@iduksu.com) 또는 전화(02-567-6477~8)로 연락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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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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