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 계약서 '특약'은 무조건 지켜야 하나요?"

[양지훈의 법과 밥] 계약은 지켜져야 하지만…

2016년 프레시안이 새로운 연재를 선보입니다. 프레시안의 '열성' 조합원 양지훈, 이은의 두 변호사가 매주 독자 여러분에게 다양한 법률 지식을 전달합니다. 가슴이 뜨거운, 발로 뛰는 두 젊은 변호사의 생생한 경험이 녹아 있는 색다른 칼럼을 기대하십시오. 첫 스타트는 법무법인 덕수에서 일하는 양지훈 변호사가 끊습니다. '양지훈의 법과 법' 연재를 시작합니다.

한 재력가가 서울의 각광받는 상권에 대규모 주상 복합 건물을 신축하고, 분양 물량을 제외한 나머지 점포는 월 임대료를 받고 빌려주기로 했습니다. (이 재력가를 앞으로 '건물주 A'라고 부르겠습니다.)

건물주 A는 점포를 물색 중이던 B와 입지가 가장 좋은 점포의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계약서에는 "임차인(상가 세입자)의 귀책사유로 본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 신규 임차인이 확보되기 전까지의 임대료 및 관리비 전액을 임대인(건물주)에게 지급하여야 한다"는 특약 사항을 추가하였습니다.

세입자 B는 유동 인구가 많고 상권이 새롭게 형성되고 있어 비교적 높은 월 임대료에도 불구하고 점포를 임차하고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손님은 별로 없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임대료도 내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었습니다.

원래 상가 임대차 계약은 5년으로 되어 있었지만, 결국 세입자 B는 계약 1년 만에 월 임대료를 3회 이상 납입하지 못하여 건물주 A에 의하여 임대차 계약을 해지 당했습니다. 한편, 세입자 사유로 계약을 해지할 경우, "신규 임차인이 확보되기 전까지 임대료와 관리비 전액을 임차인이 부담한다"는 특약 사항 때문에 계약 해지 후에도 임차인의 손해가 막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세입자는 계약 해지에 따른 모든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특약 사항 조항을 무효로 하고 B가 손해를 감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약 사항이 임차인에게 부당하게 불리하기에 무효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법은 계약 자유의 원칙에 따라 당사자의 자유의사 아래 체결된 계약으로 사회 질서에 어긋나거나 불공정한 것이 아니라면 해당 계약 내용은 당사자 모두를 구속시키며, 계약을 불이행할 경우 그 당사자에게 책임을 지웁니다.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라틴어 Pacta Sunt Servanda)"는 유명한 법 경구는 이를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지요.

마찬가지로 임대차 계약 역시 건물주와 세입자를 동시에 구속합니다. 그래서 건물주는 통상 5년으로 하는 상가 임대차 계약 기간 동안 임의로 임대차 계약을 해지할 수 없습니다. 또 세입자에게도 같은 의무를 부과하죠. 그런데 이렇게 자유롭게 체결된 계약이라면, 세입자 B에게는 억울한 사정이 전혀 없을까요?

건물주 A는 특약 사항을 본인에게 매우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사례와 같이 신규 건물 주변 상권 발달이 예상 외로 부진하고, 건물주가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그렇지요. 건물주는 특약 사항을 악용하여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는 데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서도, 계약에 묶여 있는 세입자 B같은 이에게 임대료와 관리비를 모두 부담시킬 수 있습니다. B가 계약을 해지당하고 점포를 건물주 A에게 인도하더라도, 세입자로서 임대차 계약의 남은 기간 동안(3년여 이상) 어쩔 수 없이 월 임대료와 관리비를 계속 부담해야 하는 부당한 경우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세입자 B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요?

일반적인 경우, B는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것이므로 특약 사항에 구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계약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지요. 다만 경우에 따라, 세입자는 상가 주인에게 임대차 계약서 특약 사항이 '무효'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른바 '약관규제법(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라는 특별법에 근거해서, 세입자는 계약 특약 사항을 문제 삼을 수 있습니다. 약관규제법상 '약관'은 "그 명칭이나 형태 또는 범위를 불문하고 계약의 일방 당사자가 다수의 상대방과 계약을 체결하기 위하여 일정한 형식에 의하여 미리 마련한 계약의 내용"을 말합니다(약관규제법 제2조 제1호).

사례의 특약 사항이 B뿐만 아니라, 같은 상가 주인 A의 다른 세입자들(C, D, E 등)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고, 같은 문구로 미리 준비된 계약서 양식을 사용하고 있다면, B는 이를 근거로 임대차 계약이 '약관'에 해당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A는 이미 인쇄된 임대차 계약서로 동일한 특약 사항을 모든 점포 임차인에게 적용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B는 임대차 계약이 약관규제법상 '약관'에 해당된다고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약관'이 문제되는 것은 약관규제법이 민법의 대원칙인 계약 자유의 원칙을 보호하기 위해서 제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상가 주인과 같은 임대 사업자가 임대차 계약을 일방적으로 혼자 작성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경제적 우월성을 이용하여 자신에게만 유리한 쪽으로 정하는 것은 결국 (세입자의) 실질적인 계약 자유의 원칙이 실현되지 않는 결과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규제한 것이죠.

임대차 계약 과정에서는 계약 자유의 원칙이 보장되도록 세입자가 상가 주인과 흥정이나 협의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즉, 약관규제법은 상가 주인이 스스로 작성해둔 임대차 계약서를 세입자 모두에게 강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법률의 규제인 셈이죠.

결국, 임대차 계약은 '약관'에 해당되고 "신규 임차인이 확보되기 전까지의 임대료 및 관리비 전액을 임대인에게 지급하여야 한다"는 계약 특약 사항은, 이른바 손해배상액의 예정에 해당되며(민법 제398조 제4항), 세입자 B는 부당하게 과중한 손해배상 의무를 부담시키는 약관 조항임을 이유로(약관규제법 제8조) 임대차 계약 특약 사항을 무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건물주가 자기 필요에 의해 상가 세입자를 확보하지 않기로 특약 사항을 악용하는 경우에도, 세입자는 원래의 임대차 기간 만료일까지, 그것이 1년이 될지 3년이 될지 모른 채 나머지 임대료와 관리비를 배상할 의무를 부담하므로, 이는 세입자 B에게 매우 부당하여 불공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임대차 계약의 특약 사항은 임차인 B에게 공정성을 잃은 조항으로써 무효이므로, B는 부당한 손해배상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다만 사례의 경우 B는 계약의 내용이 '약관'에 해당됨을 이유로 부당한 손해를 면했지만, 임대차 계약의 '약관' 해당 여부가 다른 모든 임대차 계약에 적용될 수 있는지는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통해 주의 깊게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양지훈 변호사(jhyang@iduksu.com)는 법무법인 덕수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위 글의 내용에 대한 추가적인 문의 사항이나 법률 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메일로 연락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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