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 포기 각서, 이혼할 때 한 푼도 못 받나요?"

[양지훈의 법과 밥] 이혼 시 재산 포기 각서

부인 A는 남편 B와 이혼하기로 합의하면서, 남편의 요구에 따라 'A는 위자료를 포기합니다. 재산 분할을 청구하지 않습니다'는 내용의 각서를 작성해주었습니다.

이들은 각서를 작성한 날 법원에 협의 이혼 의사 확인 신청서를 제출했고, 한 달 후 협의 이혼이 성립되었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A는 변호사를 통해 수천만 원 이상의 재산 분할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A는 B에게 재산 분할을 요구했죠. 이 경우 각서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부부 이혼 시 재산 분할에 관한 구체적인 방법이나 액수 또는 비율은, 법률에 의해 정해진 바가 없고 당사자의 협의와 조정에 따라 정해집니다. 다만, 협의가 불가능한 경우 이혼 당사자의 청구에 의해서 법원이 부부 협력에 의해 이룩한 재산의 액수와 기타 사정을 참작하여 재산 분할을 하게 됩니다(민법 제829조의2 제2항).

원칙적으로 이혼 전 미리 재산 분할 청구권을 포기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혼으로 인한 재산 분할 청구권은 이혼이 성립한 때에 비로소 발생하는 것이므로, 아직 이혼에 이르지 않은 경우에는 포기할 대상인 권리가 존재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결혼 초에 부인이 남편에 대해 '향후 이혼 시 재산 분할 청구권을 포기한다'고 약속했더라도, 실제 이혼에 이른 경우 부인은 남편에게 재산 분할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부인이 신혼에 했던 사전 포기는 무효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외적으로 협의 이혼 시 재산 분할 청구권 포기가 허용될 수 있습니다.

다만, 부부가 협의 이혼 중 양 당사자의 합의로 재산 분할 포기 약정을 하는 경우, 그 포기는 약정으로서 인정되고 효력이 있습니다(재판상 이혼의 경우, 포기 약정은 인정되지 않고 법원이 재산 분할을 직권으로 판단합니다).

같은 협의 이혼에 있어서도, 앞서 본 '사전 포기'는 무효지만, '포기 약정'은 협의 이혼 성립 조건으로 유효하다는 것이 법원의 태도였습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혼하기도 전에 미리 재산 분할을 포기할 수는 없지만, 이혼하기로 먼저 합의를 하고 일방이 재산 분할 포기 약속을 하면 이는 유효하다는 것이지요.

포기 각서에도 불구하고 재산 분할 청구권을 인정한 사례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사례의 경우에도 A와 B가 협의 이혼을 하면서 재산 포기 각서를 작성한 것이 '포기 약정'으로 해석되어, A는 재산 분할을 청구할 수 없을까요?

하급심 법원들은 모두 A에게 재산 분할 청구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지만, 최근 선고된 대법원 판결은 달랐습니다. 대법원은 A에게 재산 분할 청구권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보았는데, 이는 A가 작성해 준 각서의 내용과 작성 경위가, 이혼을 앞둔 부부 사이에 재산 분할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통해 작성된 것으로 볼 수 없으므로 각서가 무효로 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부부 사이에 "쌍방의 협력으로 형성된 재산액이나 쌍방의 기여도, 분할 방법 등에 관하여"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만 협의 이혼에서의 재산 분할 포기 약정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대법원 판결은, 재산 분할 포기 각서 등이 내용과 관계없이 형식적으로 존재하기만 하면, 곧바로 '포기 약정'으로 판단했던 하급심 법원과 달리 각서의 작성 경위 등에 주목한 것입니다. 즉, 포기 각서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재산 분할에 관하여 쌍방이 진지하게 논의하고 구체적이고 합리적으로 그 내용을 적시하지 않았다면, 각서는 '사전 포기'로 무효가 된다고 본 것이지요.

특히, 사례에서는 A가 이혼 성립 후 전 남편이 된 B에게 화를 내며 재산 분할을 요구하자, B가 A에게 '독립할 자금이 필요하면 주겠다'는 문자 메시지를 발송했다는 점도, 재산 포기 각서를 무효로 보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재산 분할 포기 약정이 이미 진지하게 합의됐다면, A가 아무리 B에게 재산 분할을 요구하더라도 그 요청을 들어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지요.

헌법상 '혼인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 평등을 기초로 유지되어야'

결국, 부부가 협의 이혼을 하면서 재산 분할 청구권을 일방이 포기하고 이를 약정하기 위해서는, 부부 공동 재산 전부에 대한 분배 의도가 있어야 하고, 분할 대상 재산액과 이에 대한 부부의 기여도와 분할 방법 등을 명확히 하는 등 매우 구체적인 내용으로 합의가 존재해야만, 재산권 포기 약정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 따라, 지난 2년간 협의 이혼한 당사자 가운데 포기 각서의 존재만으로 재산을 분배받지 못한 억울한 경우에는, 재산 분할을 청구하여 법원의 판단을 받을 수 있게 된 점도 고무적인 일입니다. 또 해당 판결은 이혼 후 경제적 자립 능력이 떨어지는 부부 한쪽을 보호하면서 합리적으로 재산을 분배하도록 하여, 헌법상 양성 평등의 원칙에 따라 혼인 관계를 정리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에서, 긍정적인 의미가 큰 것으로 판단됩니다.
양지훈 변호사는 법무법인 덕수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위 글의 내용에 대한 추가적인 문의 사항이 있거나 법률 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메일(jhyang@iduksu.com) 또는 전화(02-567-6477~8)로 연락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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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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