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구 찾아 '계파 싸움'에 불 지르다!

정치 중립 내던지고 노골적인 '진박' 챙기기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정치적 고향인 대구를 전격 방문했다. 4.13총선을 한달 여 앞둔 시점이다. 새누리당 내에서 진박(眞朴, 진실한 친박) 논란과 공천 살생부 파동이 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거침이 없다. 자신의 최측근 의원이 당 대표를 "죽여버리겠다"고 말해 비박(非朴)이 반발하고 있는데도 위축되기는커녕, 보란 듯이 자신의 계파를 챙기고 있는 셈이다. '선거의 여왕'의 자신감인가?

특히 박 대통령은 비박 류성걸 의원(대구 동구갑)과 맞붙는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과 악수를 나눴다. 이 장면은 카메라에 포착됐고, 금세 입소문으로 전해졌다. 이날 행사에서 현역의원, 예비후보 막론하고 대통령과 악수를 나눈 것은 정 전 장관이 유일하다. 행위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고, 의전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에 비춰보면 이는 모종의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오늘, 대통령은 계파 수장이 됐다

박 대통령은 TK(대구경북)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TK는 그의 정치적 고향이고, 기반이며, 자산이다. 그런 TK 지역에서 '배신' 행위가 발생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비판하고, '개인의 정치'를 꾀하는 인물이 20대 총선 국회 진출을 노리고 있다. 이는 물론 박 대통령의 입장과 기준에서 봤을 때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온 후보들이 '진박' 후보들이다. 그 중에서 주목받는 사람들은 이른바 대구 '진박 6인방', '진박 어벤저스'로 불리는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중남구),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동구갑),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동구을), 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서구), 하춘수 전 대구은행장(북구갑),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달성) 등이다. 배신의 정치를 심판하겠다고 나선 이들이지만, 대부분 각종 여론조사에서 '비박' 현역들에게 고전하고 있다.

이른바 '배신의 정치인'을 비롯해 비박계 현역 의원들이 '진실한 정치인'에 비해 약진하고 있는 상황은 정파 수장으로서 두고 볼 수 없는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그러나 너무 노골적이다. 새누리당의 계파 정치를 보는 여론은 싸늘한 상황이다. 친박계의 '비박 살생부' 파문에 이어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윤상현 의원의 '공천 개입' 의혹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계파 수장 정치'에 나서는 대통령의 모습이 수도권 민심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방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있다. 박 대통령은 정치적 오해를 무릅쓰면서 대구 방문을 강행했다. 수도권 민심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 정도 손해는 감수하겠다는 고집스러운 모습이 엿보인다. 역풍을 우려하고 다스리려는 게 아니라, 역풍에 정면으로 맞서 공천 판을 뒤집겠다는 의도로까지 해석된다.

그리고 그간 국회를 비판할 때 수없이 반복 등장했던 화법이 다시 나왔다. 그는 경북도청 개청식에 참석해 "정부가 4대 개혁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완수하고,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이뤄낼 수 있도록 경북도민 여러분께서 앞장서 힘을 모아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국민이 나서달라'는 말의 주어가 '경북도민'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역대 대통령들도 총선을 앞두고 특정 지역을 방문하거나, 특정한 메시지를 내는 등 총선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쳐온 게 사실이다. 대통령이 정치인인만큼, 어느 정도 허용될 수 있는 부분이다. 새누리당이 주도한 탄핵의 불씨가 됐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지지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수준의 발언이 허용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큰 틀에서 보면 박 대통령의 이번 대구 방문 목적도 다르지 않다.

문제는 박 대통령의 대구 방문이 출신 당을 떠나, 당 내의 특정 정파(진박)를 돕는 행위로 해석된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정파의 수장처럼 행동하고, 그것이 정치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세력이 아니라, 세력 내 특정 정파를 지원하는 행위인데, 이는 역대 대통령의 정치적 행위와는 분명 다른 패턴이다. 특정 정파 수장으로서의 대통령, 이례적인 모습이다.

공교롭다. 새누리당 공직후보자추천관리위(공관위)의 이날 2차 공천 심사 결과 김무성 대표 지역(부산 중·영도)의 경선 여부 결정을 미뤘다. '욕설 파문'을 일으킨 윤상현 의원의 공천 심사도 미뤘다. 김 대표의 공천 심사 결과를 미룬 것은 이른바 '비박 살생부' 발언 때문이다. 당 대표의 공천 심사 결과가 미뤄졌다는 것은 당 내에 심각한 계파 갈등이 생겼다는 방증이다. 당은 살생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살생부가 존재할 지도 모른다는 정황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유승민 의원, 비박계, 그리고 김무성 대표에 대한 당의 결정은 곧 나오게 된다. 이날 박 대통령의 대구 방문의 의미를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큰 꿈'을 가지고 있다는 친박 이한구 공관위원장은 어떤 판단을 내리고 있을까? 당에 전운이 밀려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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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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