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불법파견' 법률 전쟁의 끝은?

[박점규의 동행] <59> 경영계가 파견법에 목숨 거는 까닭

지난 1월 14일 대법원은 비료를 만드는 전남 여수의 남해화학 회사에게 사내하청 노동자 3명의 체불임금 3억여원을 각각 지급하라는 원심 판결을 최종 확정했습니다. 파견법에 따라 2년이 지나 원청회사에 직접 고용된 사내하청 노동자의 처우는 원청의 동종·유사 업무를 하는 정규직과 동일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번째 판결입니다.

대법원은 "직접 고용 간주 규정에 따라 사용사업주가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되는 파견근로자의 근로조건은 사용사업주의 근로자 중 해당 파견근로자와 동종 또는 유사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있을 경우 그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 등에서 정한 근로조건과 동일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대법원은 현장 운전원으로 일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받아야 할 임금 및 근로조건은 동일한 업무를 수행했던 정규직 노동자(4급 현장운전원)가 노사가 맺은 단체협약에 따라 받아야 할 처우와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노조가 없어서 단체협약이 없다면, 취업규칙에 따라 정규직과 똑같은 급여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설명한다면, 2002년 1월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에 입사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파견법에 따라 2년이 지난 날, 즉 2004년 1월에 입사한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와 동일한 임금과 호봉, 근로조건을 적용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004년 1월 이후 현대차가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정규직에게 임금의 60%만 줬다면 나머지 40%를 추가로 지급해야 합니다. 만약 현대차가 사내하청 노동자를 해고했다면, 부당해고에 해당하므로 노사가 맺은 단체협약에 따라 임금의 200%를 줘야 합니다.

불법파견 사내하청 노동자의 처우에 대한 첫 대법원 판결

이번 대법원 판결을 포함해 세 차례의 대법원 판결로 제조업 사내하청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불가역적 종결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2008년 9월 18일 불법파견도 직접고용 간주 규정이 적용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입니다. 대법원은 예스코 사건에서 "직접고용간주 규정은 사용사업주가 파견기간의 제한을 위반하여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행위에 대하여 행정적 감독이나 처벌과는 별도로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 사이의 사법관계에서도 직접고용관계의 성립을 간주함으로써 근로자파견의 상용화 장기화를 방지함과 아울러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을 도모하기 위하여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 사이에 발생하는 법률관계 및 이에 따른 법적 효과를 설정하는 것"이라고 판결했습니다.

둘째, 2010년 7월 22일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에 대한 불법파견 판결입니다. 당시 하급심에서는 합법도급과 불법파견에 대해 엇갈린 판결이 나왔는데, 대법원은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자동흐름방식의 자동차 조립 생산공정에서는 합법적인 도급이 불가능하다"고 판결해 법적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해 대법원은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다. ⓒ연합뉴스


이 판결 이후 2013년 2월 28일 한국지엠, 2015년 2월 26일 현대자동차 아산공장과 남해화학, 2015년 11월 26일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는 합법적인 도급이 아니라 파견노동자라는 판결이 이루어졌습니다.

한국지엠 판결은 불법파견에 대해 원하청 사용자 모두에 대해 형사적 책임을 인정한 첫 대법원 판결이었습니다. 현대차 아산공장은 직접생산공정만이 아니라 엔진 서브, 품질관리 등 간접생산공정까지 파견관계를 인정한 판결이었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대해 대법원은 "사용사업주가 파견기간의 제한을 위반하여 해당 파견근로자로 하여금 대상 업무를 계속 수행하도록 한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파견기간 중 파견사업주가 변경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직접고용간주 규정의 적용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판결해 하청업체를 바꾸면서 계속근로를 피해가려고 하던 관행에 쐐기를 박았습니다.

불법파견 사내하청 3대 대법원 판결

셋째, 2016년 1월 14일 남해화학에 대한 대법원 판결입니다. 이 판결은 파견노동자의 처우를 명확하게 함으로써 앞으로 하급심에서 벌어질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나아가 이번 판결은 불법파견의 대표 사업장인 현대자동차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규직 전환이냐, 경력 일부 인정 신규채용이냐에 대한 논란을 종결하는 판결입니다.

현대자동차는 2010년 대법원 판결 이후 노사 간의 교섭을 통해 불법파견 문제를 논의해왔습니다. 노동계에서는 불법파견의 핵심인 공정과 근속을 인정해 자신이 일하는 공정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2년 이상 근속을 온전히 인정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차 노사는 세 차례에 걸친 노사합의에서 사내하청 근무 경력을 2~3년에 1년씩 인정해 '경력 일부 인정 신규채용' 방식으로 합의했습니다. 모든 사내하청이 정규직이 되는 것도, 함께 싸운 조합원 전원이 포함된 것도, 자기가 일한 공정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도, 체불임금을 돌려받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노사간의 합의는 조합원 투표에서 모두 부결되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남해화학의 대법원 판결을 인정해 직접 고용된 파견노동자들을 단체협약에 따라 처우할 것인지 노동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노사교섭 이목 집중

1997년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사태 이후 한국의 대기업들은 정규직이 일하던 자리를 비정규직 노동자로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1998년 제정된 파견법의 허술한 규제마저 피해가기 위해 사내하청 노동자를 사용했습니다.

2003년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2004년 노동부에 불법파견을 진정해 1만 명에 달하는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라는 판정을 끌어냈지만 현대차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2005년부터 수차례 파업과 고공농성 등 극한 투쟁이 이어졌지만 불법파견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국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2005년 법원에 정규직 소송을 제기하면서 10년에 걸쳐 불법파견 법률전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민주노총 법률원을 중심으로 법조계 최하 임금을 받는 가난한 노동 변호사들은 현대차의 돈방석에 앉은 재벌 변호사를 상대로 법률 전쟁을 치러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세 차례의 대법원 판결은 앞으로 이어질 수많은 판결에 영향을 미칠 예정입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서울고등법원 판결, 여섯 차례나 선고가 미뤄진 포스코(광양제철소)와 현대제철(순천공장)의 판결이 올 상반기 내에 선고될 예정입니다.

1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정규직 지위 인정 소송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서비스를 비롯해 소송은 제조업을 넘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앞서의 10년 전쟁처럼 앞으로의 10년 전쟁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승리로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재벌들에게 큰 골칫거리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2005년부터 시작된 불법파견 10년 법률전쟁

대규모 소송에 휘말린 재벌들이 선택한 것이 바로 파견법을 바꿔 제조업의 모든 공정에 자유롭게 파견노동자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재벌 회장들 모임인 경총은 "국회는 국민의 여망과 대통령의 당부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노동개혁 5대 법안을 대승적 차원에서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하며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정경유착 서명운동'에 돌입했습니다.

자동차 전자 조선 등 한국 제조업의 핵심은 숙련된 노동력입니다. 그런데 파견법이 통과되면 숙련된 일자리를 기능이 뛰어나고 실력 있는 장년층 노동자들을 월급 절반만 주고 맘대로 부려먹을 수 있게 됩니다. 단순 노동은 기간제 계약직으로 뽑고, 숙련된 노동은 장년층으로 파견 받아서 쓰게 됩니다. 대기업은 신규채용을 할 이유가 사라집니다.

뿌리산업에 파견이 전면 허용되면, 대기업의 계열사인 부품사에서부터 파견이 전면 허용됩니다. 대기업들은 주조·금형·용접·표면처리·소성가공·열처리분야를 외주화해 계열사나 부품사로 넘기고 싼 값에 파견노동자를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대기업 정규직 일자리는 줄어들고, 중소기업 파견직 저질 일자리는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와 구속, 극한 투쟁을 벌이면서 15년을 싸워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의 물꼬를 트고, 노동 변호사들이 대형로펌 골리앗과 싸워 불법파견 판결을 끌어냈는데, 박근혜 정부와 재벌은 파견법을 바꿔 싸움판을 뒤집어엎으려고 합니다.

노조에 가입하고 노동 변호사를 만나 소송을 할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소수입니다. 대부분의 하청 노동자들은 자신이 합법도급인지, 불법파견인지도 모르고 하루하루 힘겨운 노동을 하고 살아갑니다. 파견법이 개악돼 파견이 전면 허용된다면, 정규직으로 향한 바늘구멍만한 기회조차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 딸아들, 후배들의 노동은 더욱 끔찍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 자신이 정규직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파견법을 막아내고, 나쁜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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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점규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에서 선전홍보, 단체교섭, 비정규직 사업을 담당했습니다. 2008년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하면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사회적 기구인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를 함께 만들었습니다. 2010년 11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25일 점거파업에 함께 했고, 이후 한진중공업, 현대차 비정규직, 밀양 희망버스에 함께했습니다. 저서로는 <25일>, <노동여지도> 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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