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법' 파견 천국이 '합법' 파견 천국으로!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 ③] 우리는 불행에 익숙해지고 있다

점심시간. 반월‧시화 공단의 한 식당 앞에 선전물을 배포하는 이들이 있다. 반월‧시화 공단 권리 찾기 모임 '월담'의 회원들이다. 선전물은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공단 노동자에게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관심을 두고 선전물을 읽는 이들은 소수이고, 대다수는 무심하게 걸음을 옮긴다. 밥을 먹고 난 이후 이 잠깐이 유일한 휴식시간인 노동자들은 다른 일에 이 귀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반월‧시화공단은 50인 미만의 중소 영세사업장이 밀집해있는 곳이다. 임금 수준도 낮고, 장시간 노동으로만 간신히 생활을 꾸려간다. 잔업과 특근이 예사이니 몸은 피곤하고, 생각을 나누고 이야기할 공간도 없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뭔지 왜 문제인지 생각하고 말하기에는 하루하루가 버겁다.

의문을 가질 틈조차 없이

우리는 불행에 익숙해지고 있다. 언제부턴가 반월‧시화공단에서는 정규직을 채용하지 않았다. 일자리를 구하려면 전봇대나 생활 정보지의 파견업체, 혹은 안산역 앞의 파견업체를 이용해야 한다. 심지어 친구의 소개로 들어간 회사에서도 계약서는 파견업체와 쓴다. 문자로도 해고당하고, 일감이 없으니 나오지 말라는 이야기에 군소리 없이 돌아서기도 한다.

일이 힘들고 피곤해서 옆 사람과 잡담할 여유도 없다. 같이 술 마실 시간에 집에서 잠이라도 더 자는 게 낫다. 죽으라고 잔업 특근해서 월급 통장에 200만 원 찍히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왜 우리의 삶이 이렇게까지 된 것일까? 집과 회사만을 왔다 갔다 하며 죽어라고 일하는데 삶은 나아지지 않고 미래는 보이지 않는 이 생활은 왜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러나 생존에 매달려 있는 노동자들은 이런 의문을 가질 틈조차 없다.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개혁' 정책을 내놓으면서 이것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이후에는 '청년 일자리 대책'이라고 주장했지만,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이야기했을 때에는 적어도 이 정책이 중소 영세사업장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을 해결하는데 기여할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니 설령 이 대책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라고 하더라도 대기업 정규직들에게만 나쁘게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정부의 말과 다르게 그동안 고통받아왔던 중소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너무나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프레시안(최형락)

편법 파견 천국이 합법 파견 천국으로

제조업에는 파견이 허용되지 않는다. 지금 반월‧시화공단에서 볼 수 있는 파견은 "임시업무에 한해 3개월+3개월 해서 6개월간 파견이 가능"하게 만들어놓은 파견법의 허점을 편법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대다수가 불법파견이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들은 6개월 단위로 해고되거나 업체가 바뀌기도 한다.

단기간 일하다가 해고되면 당연히 실업급여를 받아야 하는데, 이렇게 여러 번 해고당하고 실업급여를 받으면 반복수급자가 된다. 정규직 채용을 회피하려는 기업과 정부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그런데 희생자인 노동자들을 향해 정부는 '도덕적 해이' 운운하며 반복수급자를 색출하겠단다. 그리고 최저임금밖에 못 받는 이들의 실업급여도 '최저임금의 90%에서 80%'로 하향하겠다고 한다. 열악한 조건의 노동자들의 실업급여 수급 조건을 까다롭게 하는 게 어떻게 '노동시장 구조개혁'인가.

여기에 더해 이제는 '뿌리 산업'에 파견을 허용한다고 한다. '뿌리 산업'이란 금형 ․주조․용접․소성가공․표면처리․열처리 등의 공정기술을 활용하여 사업을 영위하는 업종을 말한다. 다시 말해 제조업체도 파견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 힘들게 일해왔던 노동자들을 편법적인 파견으로 사용해왔지만, 이제는 합법적으로 파견을 하겠다는 이야기이다.

반월‧시화공단에서의 불법파견 문제는 너무나 오래된 문제이고 고용노동부가 제대로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고 계속 지적해왔는데, 고용노동부는 관리․감독을 회피해왔고 이제는 관리․감독 대신 아예 그 불법을 합법화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 35세 이상의 기간제 기간 제한을 4년으로 연장해버리면 더이상 반월‧시화공단에 정규직 채용은 없을 것이다.

해고돼도 임금 깎여도 노동자 탓?

지금도 반월‧시화공단 노동자들은 쉽게 해고당한다. 파견직은 말할 것도 없지만, 정규직의 경우에도 물량이 적어지면 기업 마음대로 전환 배치하고 모욕을 줘서 쫓아낸다. 잔업 특근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물량이 적어져서 잔업 특근을 못하게 되면 그것도 공포라서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기도 한다. 그런데 일반해고 요건이 완화되면 그렇게 해고된 노동자들에게로 책임이 전가될 것이다. '너를 해고하는 것은 물량이 적어서가 아니라 네가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노동자들을 소모품으로 여기기 때문에 쉽게 해고하고 심지어 해고하는 순간에도 '네 탓'이라고 하는 것이다.

반월‧시화공단 노동자들은 잔업 특근으로 간신히 먹고 산다. 그러다보니 노동 시간도 매우 길다. 지금 새누리당은 주 40시간 노동에 12시간 잔업을 허용하고, 휴일에 8시간의 특근을 허용하는 법안을 내놓았다. 그리고 휴일 근로 수당에 대해 중복할증을 금지하겠다고 한다. 잔업 특근 다 시켜도 돈을 덜 주겠다는 속셈이다. 호봉제로 임금을 받는 이들이 정년 연장을 하게 되면 기업의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에 임금피크제를 하겠다고 했는데, 호봉제도 아닌 공단 노동자들에게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임금을 깎는 '강제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려고 한다. 지금도 기업 마음대로 개별 동의서를 받아서 취업규칙을 바꾸는 등 위법한 행위를 하고 있는데,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을 기업이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다면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인 취업규칙은 계속 개악될 것이다.

너무나 힘들어서 노동시장 구조개악에 대해 생각도 못 하고 저항할 힘도 없는 이들이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보게 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공단 안에서 알리고 외치고 있다. '더이상 불행에 익숙해지지 말자'고, '더이상 기업이 우리의 삶을 파괴하는 것에 순응하지 말자'고. 그렇지만 공단의 중소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어느 사이엔가 행복해지는 법, 미래를 설계하는 법을 잊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민주 노조 운동이, 노동조합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는 중소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변화의 희망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뀔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 이상 이 침묵은 지속될 것이다.

바뀔 수 있다

민주노총은 아마도 최선을 다해서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막을 것이다. 노동시장 구조개악은 전체 노동자들의 권리를 빼앗고, 기업에 모든 권력을 넘겨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동조합이 최선을 다해 싸우다가도 밀리기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개악을 용인하고 '기업 단위에서 단체협약으로 막아내자'고 후퇴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후퇴하는 순간 노동조합이 있는 곳, 어느 정도 기업의 규모가 있는 곳에서는 노동시장 구조개악의 파괴적 효과가 조금은 감소될지 모르지만 아무런 저항력이 없는 중소 영세사업장에서는 정부와 기업의 의도가 그대로 관철될 것이다. 고통은 다시 힘없는 노동자들에게 전가될 것이다.

이것은 악순환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중소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외치고 민주노총과 함께 싸워야 하지만 아직 중소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살아가기에도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노동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변화에 대한 갈망과 의지를 믿고 더 열심히 설득하기를 바란다.

누군들 생존만을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하는 삶을 바라겠는가. 간신히 적응해온 이 삶이 더 나빠져서 다시 적응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야 하는 삶을 누가 바라겠는가. 그러니 '함께 싸우자고' 손을 내밀고, 그 노동자들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 중소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침묵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더 많이 호소하고 더 많이 조직하자. 우리 노동자들이 이 불행을 딛고 이길 수 있는 길은 더 많은 노동자들이 뭉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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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

'노동개악'을 인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다양한 사회 단체 활동가들이 11월 14일 민중총궐기를 앞두고 총 다섯 꼭지의 글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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