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난 연말 정산 환급액, 대한민국엔 독이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1년 전 연말 정산 논란을 되짚으며

다시 연말 정산이 돌아왔다. 어느새 연말 정산은 대한민국에서 거의 국민적 행사가 되었다. 연말 정산은 매달 미리 세금을 내고 나중에 지출 내역에 따라 정산하는 근로소득세 체계에서 불가피한 과정이고 다른 나라도 비슷한 절차를 밝지만, 이렇게 지출 항목항목마다 세금 감면에 달려드는 현상은 시대적 촌극에 가깝다. 정부 불신, 세금 저항, 가계 위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작품이다.

작년에 소득 세제에 큰 변화가 없었기에, 아마도 올해는 연말 정산을 둘러싸고 그리 큰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듯하다. 이왕 연말 정산 컴퓨터 앞에 앉은 김에 작년(2015년) 연말 정산 파동의 교훈을 생각해보자.

작년 연말 정산의 기본 골격 :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근로소득세 체계를 보면 대한민국은 '공제의 왕국'이다. 자영자 소득 파악 미비에 따른 형평성 문제를 완화하고자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소득 공제가 상당 규모로 제공돼 왔다. 또 복지가 빈약한 상황에서 가계 지출이 많은 가구에 공제를 통해 세금을 줄여주겠다는 취지도 담겨 있다. 복지 대신 공제를 제공해 온 셈이다.

2013년 귀속 근로소득세를 보면, 근로자의 총급여(과세 소득) 498조 원 중 공제가 301조 원을 차지해 세율이 적용되는 과표 소득은 197조 원에 불과했다. 전체 소득의 60%가 세금 대상에 제외되었다. 근로자가 낸 세금이 22.3조 원인데 공제를 통해 감면된 세금은 두 배가 넘는 50.2조 원에 달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 근로자의 세금 부담 수준을 가리키는 총급여 대비 실효세율은 4.5%에 불과하다(2014년 평균소득 노동자의 실효세율은 한국은 5.0%,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15.6%). 한국의 소득세 최고 한계세율이 41.8%로 OECD 평균 43.6%에 비해 그리 낮지 않음에도 소득세 비중이 GDP 3.7%로 OECD 평균 8.6%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게 된 핵심 이유이다.

소득 공제는 소득세 세원을 대폭 축소한다는 문제뿐만 아니라 역진적이라는 특징까지 지닌다. 상위 계층일수록 공제액이 많고 누진적 한계세율 구조에서 감세 혜택이 훨씬 크다. 예를 들어 똑같은 교육비 100만 원 소득 공제라도, 과표 소득이 면세자인 하위 계층에겐 감세 효과가 0원이며, 6% 세율이 적용되는 중하위 계층은 6만 원, 최고 세율이 38%가 적용되는 계층은 38만 원 혜택을 얻는다. 동일한 공제 금액이지만 공제로 인한 감세액이 역진적이다.

2015년 연말 정산의 가장 큰 변화는 의료비, 교육비, 기부금, 연금 계좌 보험료 등의 소득 공제를 세액 공제로 바꾼 것이다. 세율에 따라 역진적으로 세금 혜택을 주던 방식에서 해당 근로자에게 동일한 감면을 제공한다. 100만 원 교육비의 경우 모두에게 15만 원씩 세금 감면을 제공하니 하위 계층은 이전에 비해 세금을 9만 원 덜 내고, 최상위 계층은 23만 원 더 내게 되었다.

이러한 면에서 소득 공제의 세액 공제로의 전환은 우리나라 소득 세제 개편 역사에서 전향적인 개혁이다. 지금까지 역대 정부가 민생 경제가 어려워질 때마다 소득 공제 항목을 확대해 왔고, 이것이 역진적 효과를 낳았는데, 세액 공제로 전환함에 따라 중간 계층을 축으로 하후상박 방식으로 세금이 조정된 것이다.

작년 5월 기획재정부가 애초 연말 정산 자료를 분석해 발표한 결과를 보면, 애초 연말 정산 변화로 총 1조1461억 원이 증세되었다. 소득 구간별로 보면 5500만 원 이하에서 4279억 원 감세가, 7000만 원 초과 계층에서 1조5710억 원 증세가 이루어졌다. 중간에 있는 5500~7000만 원 구간 계층은 거의 세수 변화가 없었다. 물론 위 수치는 계층별 평균값이다. 개별 가구의 구성, 지출 특성에 따라 5500만 원 이하 구간에서도 증세 사례가 생겼다.

▲ '연말 정산 간소화 서비스'가 제공되는 국세청 홈택스(www.hometax.go.kr) 홈페이지 모습. ⓒ연합뉴스

자녀 관련 복지와 공제를 함께 봐야

뜨거운 논란은 자녀가 있거나 1인 가구에서 발생했다. 자녀가 출생하거나 6세 이하 2명 이상인 가구에서 세금이 늘어 아이를 낳으라면서 세금을 더 매긴다는 비판이, 근로 소득 공제 축소로 3000만 원대 1인 가구 세금이 늘면서 싱글세 논란까지 불거졌다.

싱글세 논란은 소득 공제의 세액 공제 전환, 자녀 장려 세제 도입 등으로 4000만 원 이하 가구의 혜택이 상당한 규모로 커지자 이를 일부 상쇄하려고 근로 소득 공제를 줄였는데, 지출이 적고 자녀가 없는 1인 가구들은 관련 혜택은 못 받고 근로 소득 공제 축소에 따른 세금 확대만 맞게 되었다. 싱글들에게 '사회 연대' 증세를 요청하기 어려운 게 우리나라 현실임을 감안한다면 애초 설계가 정교하지 못했다.

가장 민감한 사안은 자녀 세액 공제 통합이었다. 이 과정에서 아이를 출산하거나 6세 이하가 2명 이상인 가구, 아이가 3명 이상인 가구 등에서 세금이 늘었다.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과 근본적으로 충돌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자녀 관련 세액 공제가 통합되면서 출생 공제, 6세 이하 공제가 사라진 것은 2013년부터 전 계층으로 전면화된 무상 보육, 그리고 지방자치단체별로 진행되는 출산 복지와 연관해 이해될 수 있다. 6세 이하 자녀 2명인 가구의 경우 무상 보육으로 약 600만 원의 자녀 복지를 얻게 된 대신 관련 공제 조정으로 약 10만 원을 더 내게 된 셈이다.

게다가 아이들이 7세가 넘었을 땐 오히려 연말 정산 변화로 세금을 덜 내게 될 예정이었음에도 이러한 중기 효과는 논의에 들어오지도 못했고, 4000만 원 미만 가구에서 자녀당 30~50만 원 지급하는 자녀 장려 세제 도입도 부각되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세금에 대한 차분한 논의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여실해 보여주었다.

6000만 원 이상자(상위 13%)가 근로소득세 83% 납부

결국 정부가 백기 항복하고 보완 대책을 내놓았다. 사실상 5500만 원 이하 계층에선 누구도 세금이 증가하지 않도록 모든 조치가 동원됐다. 출산 공제가 신설되었고, 6세 이하 지원이 추가되고, 3자녀 세액 공제도 증액되었다. 싱글세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근로 소득 세액 공제 공제율과 한도도 대폭 상향했다. 이 과정에서 상위 계층들도 추가 절세 혜택을 얻었다. 이 보완 대책은 2016년 연말 정산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2015년 12월 국세청이 최종 국세통계를 발표했다. 애초 연말 정산 변화와 후속 보완 대책이 모두 시행된 결과이다. 2014년 귀속 근로 소득의 실효세율은 총급여 기준 4.80%로 전년도 4.48%에서 0.32% 포인트 상향되었다.

ⓒ프레시안

소득 구간별로 보면, 과세 소득 6000만 원까지 실효세율이 낮아졌고 이 소득을 넘은 사람부터 실효세율이 올랐다. 과세 소득 1억 원 초과 소득자의 경우 실효세율은 2013년 15.02%에서 2014년 16.56%로 1.54%포인트 올랐다. 실효세율 증가 폭이 가장 큰 구간은 3~5억 원 소득자로 24.17%에서 26.66%로 2.49%포인트 올랐고, 실효세율이 가장 높은 구간은 10억 원 초과 소득자로 2013년 31.73%에서 2014년 33.73%로 2.0%포인트 올랐다. 5억 원 소득자는 이전에 비해 1245만 원, 10억 원 소득자는 2000만 원을 더 냈다.

계층별 세수 몫을 보면, 근로 소득자 1669만 명 중 과세 소득이 6000만 원을 넘는 사람은 221만 명, 상위 13%이다. 이들이 전체 근로소득세 25.4조 원 중 83%인 21.0조 원 납부했다. 근로소득세 세입의 상당부분이 상위계층에서 나온다.

전체 근로자 중 소득세를 내지 않는 면세자도 크게 늘었다. 우리나라는 2006년 면세자 비율이 50%였고 점차 낮아져 2013년에 31.3%까지 줄어 왔다. 애초 작년 연말 정산으로 46%로 상향될 예정이었으나 보완 대책으로 48%까지 확대되었다. 근로소득자 약 1600만 명 중 절반이 세금을 내지 않는 나라가 된 것이다.

ⓒ프레시안

복지와 연동해 공제 줄여가야

연말 정산은 공제를 신청하는 일이다. 우리나라 소득세에선 공제가 여전히 너무 많다. 지금까지 소득 세제에서 공제가 많았던 이유는 소득 파악이 미약한 자영자와의 형평성을 확보하고 빈약한 복지를 대신한 면이 있었다. 경제가 어렵거나 서민 경제 지원이 필요할 때마다 공제가 늘어나곤 했다.

이제는 변해야 한다. 2010년 보편 복지 바람이 불기 시작한 이래 대한민국에서 복지가 확대되는만큼 공제를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 물론 이는 세금 증가를 의미하지만 복지 국가 세력이라면 전향적인 세금 정치가 필요하다. 조금만 세금이 오르더라도 세금 폭탄을 운운하는 건 곤란하다.

복지가 불편한 세력은 세금에 대한 불신을 키워 '작은 정부, 작은 복지'를 강조하겠지만 복지 국가 세력이라면 세금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최소한 복지가 늘어나는 것과 결합해 증세를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지출 불신이 장벽이라면 '복지에만 쓰는 세금'인 사회복지세 도입도 적극 검토하자.

(작년 연말 정산을 분석한 필자의 보고서는 내만복 블로그에서 얻을 수 있다.) (☞관련 자료 : '2015년 연말정산 파동의 평가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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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시민들이 복지국가 만들기에 직접 나서는, '아래로부터의 복지 주체 형성'을 목표로 2012년에 발족한 시민단체입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사회복지세 도입, 기초연금 강화, 부양의무제 폐지, 지역 복지공동체 형성, 복지국가 촛불 등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칼럼은 열린 시각에서 다양하고 생산적인 복지 논의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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