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 남경필이 설득할 사람은 박근혜!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박근혜의 ‘증세 없는 복지’가 근본 원인

새해가 밝았다. 그러나 경기도는 2016년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해 준예산 편성이라는 광역자치단체 초유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남경필 도지사 취임 이후 의회와 도청의 연정(연립정부), 교육청과 도청과 연정, 도청과 시군의 연정으로 도민만을 바라보며 대화와 타협의 정치 실험을 해온 경기도는 의회 점거와 몸싸움, 상호 비방으로 얼룩져버렸다.

준예산 사태에 빠진 경기도

지난해 12월 31일까지 예산안이 처리되지 못하고 경기도를 파국으로 치닫게 한 것은 '누리과정' 예산이었다. '누리과정 예산을 몇 달 치라도 세우자', '근본적인 누리과정 해결책을 마련하자'를 가지고 계속 협의를 해 왔으나 결국 누리과정과 다른 예산을 분리 처리하는 데도 합의하지 못해 준예산 사태에 빠져버렸다.

준예산은 의회에서 예산이 승인될 때까지 인건비와 법정 경비만을 전년도에 준해서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경기도와 경기도교육청은 누리과정뿐만 아니라 일자리 관련 사업, 방학 중 학교 개보수 등 꼭 필요한 사업을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

누리과정 지원금은 만 3세에서 5세 유치원·어린이집을 다니는 아동에게 지원되는 것으로 현재 사립유치원·어린이집의 경우 1인당 22만 원, 공립유치원 6만 원, 방과 후 과정비는 사립유치원·어린이집 7만 원, 공립유치원 5만 원이다. 이와 관련한 경기도 2016년 예산은 유치원 4929억 원, 어린이집 5459억 원으로 총 1조 원이 넘는다.

▲ 6일 서울 시내 한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특별활동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예견되었던 누리과정 사태

누리과정 예산은 2016년에 갑자기 생긴 문제가 아니다. 작년에도 교육청은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수립하지 못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교육청에 빚을 내어 예산을 수립하도록 하였고 그 부족분은 목적예비비 5000억 원으로 메꿨다.

이러한 임시방편적 해결은 2016년에 또다시 문제를 불러왔다. 이는 경기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 광주, 전남 등 3개 시·도 교육청에서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수립하지 못하였고, 17개 시·도 교육청 중 어린이집과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 1년 치를 전액 편성한 곳은 한 곳도 없다.

왜 그럴까? 계속 늘어나는 누리과정 예산을 감당할 돈이 시·도 교육청에는 없기 때문이다. 경기도 교육청의 경우 누리과정으로 인해 2014년 8939억 원, 2015년에는 1조302억 원을 지출했고, 올해는 1659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누리과정으로 인해 도교육청은 벌써 빚만 3조5000억 원에 이르고, 올해도 빚으로 누리과정을 지원하게 될 경우 추가로 1조 원 이상 지방채를 발행해야 한다. 바야흐로 순수 빚 6조 원 시대, 전체 예산의 50%를 부채로 떠안은 교육 기관이 등장하게 된다.

이에 대해 정부는 누리과정에 소요되는 경비는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으로 지방 교육청에 지원하고 있다고 변명한다. 교부금 및 지방세 증가, 학교 신설 및 명예 퇴직 수요 감소, 지방채 발행 승인, 국고 예비비 3000억 원 지원 등 2016년 지방교육 재정 여건이 개선돼 누리과정 예산을 충분히 편성할 수 있는 여력이 있음에도 진보 교육감이 고의로 예산 편성을 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벼랑에 몰린 교육청 재정 상태

2015년 누리과정 예산 수립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경기도 의회는 교육 재정 강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경기도 교육청 재정 상태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경기도교육청의 재정 상태는 누리과정이 아니어도 넉넉하지 못한 상황이다.

노후화된 학교 시설 개선 충당금도 없는 상황이다. 이는 경기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 시·도 교육청의 빚인 지방 교육채 규모가 최근 3년에 5배 가까이 늘어났다. 지방 교육 재정 교부금은 누리과정을 위해 새롭게 마련된 재원이 아니다. 지방 교육 전반을 위해 사용하도록 되어 있어 유치원·초·중·고등학교 교육에 사용해 온 예산이다.

시·도 교육청 예산의 70% 정도를 차지하는 지방 교육 재정 교부금 2013년 이후 내리 2년 동안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 2013년 41조619억 원이었던 지방 교육 재정 교부금은 2014년 40조8681억 원, 2015년 39조4056억 원으로 줄고 있다. 특히 2015년에는 2014년 대비 교부금 규모가 1조4000억 원 줄어든 반면, 누리 예산 소요액은 오히려 5000억 원 늘어나면서 지방 교육 재정은 더욱 악화됐다.

정부는 올해 경기회복으로 내국세가 더 걷히기 때문에 교부금이 지난해보다 1조8000억 원이 늘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또 지자체의 전입금도 담뱃값 인상분을 감안해 1조 원정도 늘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교부금 추계는 3년 연속 틀렸다. 당초 정부는 교부금이 지난 2013년 42조1163억 원, 2014년 45조6340억 원, 2015년 49조3954억 원으로 매년 8% 이상 늘 것으로 전망했지만 오히려 교부금은 줄었다.

그런데 시행령에 '영·유아 보육 지원'이라는 문구만을 추가로 삽입하고 줄어들고 있는 지방 교육 재정 교부금으로 4조 원이 넘는 누리과정 사업도 하라는 것은 억지이다. 누리과정 예산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강구되지 않으면 초·중·고교 등 공교육에 투자할 돈이 줄어들어 전체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3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 집무실에서 준예산 사태 관련 대책 회의를 진행하는 모습. 경기도 의회 여야는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 편성과 관련, 마찰을 빚은 끝에 지난달 31일까지 올해 도와 도 교육청 본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해 준예산 사태를 맞았다. ⓒ연합뉴스

'증세 없는'에 발목 잡힌 복지

이러한 억지는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약을 지키지 않는다는 욕은 먹기 싫고 세금을 더 거둬들일 수는 없으니, 책임을 힘없는 시·도 교육청에 떠넘기는 무책임한 태도다.

대통령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사업이면 이를 위한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증세가 필요하다면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현 정부의 이러한 책임 회피 땜질식 예산 편성은 누리과정뿐만 아니라 복지 정책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고령화 저출산으로 우리 사회는 위협을 받고 있다. 어려운 경제 상황과 취업난으로 인해 청년들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출산은커녕 결혼조차 포기하고 있는 청년이 늘어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안정적인 보육 환경 마련은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몇 달씩 근근이 예산을 여기저기서 메꾸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누리과정 재원 마련이 필요하다.

사실 영·유아를 둔 학부모들에게 있어 누리과정 지원에 필요한 돈의 출처가 교육청인지 국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이 시각 자녀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자녀를 맡고 있는 어린이집·유치원 교사 또한 고용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정부는 작년 내내 지방 교육청 재정 악화에 대한 시·도 교육청의 이야기에는 대꾸하지 않다가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계속 거부할 경우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혼란에 대해 시·도 교육감의 책임, 법적, 행정적, 재정적 수단 등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여 강력하게 대처할 거란 협박만 하고 있다.

일부 어린이집 연합회와 학부모는 정부 책임을 요구하고, 또 다른 분들은 시·도 교육감을 고발했다. 경기도 의회는 새해가 시작되고 열흘이 다 되도록 예산을 세우지 못하고 갈등하고 있다.

진정 정부가 이러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고 오는 25일이면 닥쳐올 보육 대란을 막고자 한다면 적극적으로 대화해야 한다. 국회에서 책정된 목적예비비 3000억 원을 누리과정 예산으로 우선 지원하고 한 달, 두 달이 아닌 근본적인 누리과정 재원 마련을 위해 정부와 정치권, 교육감 등이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책임 있는 약속을 지키는 자세이다. 확실한 국가 책임 보육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박근혜 정부가 누리과정 예산은 책임져야 한다.

남경필 도지사, 교육청이 아니라 청와대를 설득해야

이번 누리과정 예산 편성 과정에서 안타까운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지방 의원과 단체장들의 태도이다. 누리과정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는 여야의 문제가 아니다. 지방 정부와 중앙 정부의 역할과 지방 자치, 지방 재정 자립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경기도 교육청의 재정이 악화하든 말든, 경기도의 교육 환경과 교육 정책은 아랑곳없이 정부 입장만을 대변하는 남경필 지사와 경기도 의회 새누리당 의원들의 정체성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야 지방 자치가 가능할 수 있을까?

최근 남경필 지사는 경기도 예산 1200억 원을 교육청에 편법으로 우회 지원하겠다, 시·군이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면 이후 도에서 예산 지원을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다. 누리과정은 도지사나 시장·군수가 일시적으로 봉합할 사안이 아니다. 도민을 위해 쓰여야 할 예산을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전국적인 보육 사업 경비로 쓴다면, 그만큼의 경기도 예산은 줄어들게 된다.

장기화되는 경기불황으로 언제 경기도 재정이 악화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남 지사의 섣부른 개입은 누리과정의 근본적인 해결을 막는 것은 물론 경기도 교육청과 경기도의 재정 악화를 가져올 것이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경기 교육청이나 의회를 설득할 것이 아니라 여당과 청와대를 설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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