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삼성을 떠났나?

[프레시안 books] <초일류 사원, 삼성을 떠나다>

얼마 전, 한 지인이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그만뒀다. 조그마한 외국계 회사로 이직했다. 그는 적응이 힘들다고 말했다. 일이 힘든 게 아니었다. 정시에 퇴근하는 문화, 일이 없으면 오후에 퇴근해버리는 문화가 힘들다고 했다. 불안했단다. 일찍 회사를 나가버리는 삶이. 집에 들어가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순간이 힘들다고 했다.

나로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세상은 넓고 할 일, 아니 즐길 거리는 많다. 그에게 "네 시간을 즐겨라"고 했다. 그는 "노력하겠다"고 했다. 세상에. 저녁이 있는 삶을 얻고 나자, 저녁을 즐기기 위해 노력한다니. 도대체 그 기업의 무엇이 그를 이토록 바꿔놨을까. 영화를 누구보다 깊게 사랑하고, 진중권과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통독하던 그를.

<초일류 사원, 삼성을 떠나다>(티거 Jang 지음, 렛츠북 펴냄)를 보고 어렴풋이 그의 직장 생활상을 상상할 수 있게 됐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국내 최대의 재벌 삼성그룹에 입사했던 저자가 4년 후, 퇴사하기까지 이야기를 담담한 필체로 정리한 에세이다. 카카오 브런치북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이다. 이미 온라인에서 해당 글을 읽은 이가 적잖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업 문화라는 건 어떠한가가 선명히 머릿속에 그려진다. 면접을 통과해 연수원에서 군대와 다름없는 '교육'을 받는다. 신입사원으로서 눈치를 키운다. 하계 수련 대회에서는 마치 북한의 김일성 찬양 대회와 같은 행사를 마무리한다. 시키는 일을 한다. 기껏해야 보고서의 줄 간격을 맞추고, 자료 문구의 색깔을 뭐로 할지까지 세세히 관리해야 하는, 뭐 그런 일이다. 이런 일을 위해 저자는 국내 일류 대학(명시되진 않았으나, 대략의 추론이 가능할 정도로 단서가 뿌려졌다)이란 곳을 나와, 좋은 '스펙'을 쌓기 위해 그토록 노력했다.

그리고 야근이 운명처럼 다가온다. 미처 이를 고민할 새도 없이. 아침 7시 반이면 회사에 도착(!)해, 새벽까지 일하는 일상이 1년 내내 이어진다. 그 사이 총기 있고, 무엇이든 다 할 것만 같았던 신입사원은 대리로 진급한다. 그리고 그도 선배들의 퀭한 눈을 갖게 됐다.

▲ <초일류 사원, 삼성을 떠나다>(티거 Jang 지음, 렛츠북 펴냄.) ⓒ렛츠북
자부심과 성취욕을 애써 주입하며 버틴 '삼성맨'으로서 저자의 시간은 무동력 보트를 타고 항해하는 50대 남성의 모습을 바라본 후 끝난다. 입사할 때보다 더 성대한 축하를 받으며 저자는 그렇게 "안정적인 기계보다 불안정한 사람"이 되기 위해, '오롯이 나로서 살기 위해' 평일 오후 한강변을 산책하는 자유인이 된다. 그리고 "생활이 살아지는 게 아닌, 생활을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 일대기의 곳곳에 저자는 자신이 읽은 책, 본 영화, 들은 노래 내용을 집어넣어 읽는 이의 주의를 환기한다. 총기 있는 비유와 깔끔한 글로 우리나라에서 재벌 회사의 사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압축한다. 조어는 신선하고, 문장은 발랄하다. 짬 나는 시간에 쪼개 읽기 좋게 내용은 부담 없다.

예전 취업문을 두드릴 때가 생각났다. 이미 졸업은 했고, 돈은 필요했다. 이른바 '면접 알바'라는 짓도 했다. 언론사뿐만 아니라 아무 대기업이고 원서를 넣었다. 면접비라도 받으면 며칠 밥값이 됐다. 한 대기업 면접을 보게 됐다. 아침 8시, 난 늦었다. 이미 그곳 강당에 앉아 있던 엄청난 수의 면접 대기자의 눈이 나에게 집중됐다. 관리자는 혀를 찼다. 이곳은 내가 있을 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그곳에 취업한 친구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분명 업무는 9시에 시작하는 데, 8시에 출근해도 죄인인 것처럼 고개 숙이는 삶의 이야기를. 우리의 대기업 비즈니스맨 삶이란 이런 것이리라. 피곤에 전 모든 이가 똑같은 복장을 하고, 똑같은 생각을 하며 서로에게 눈치를 주는, 그 안에서는 완벽한 조직. 이 책은 <미생>과 비교되지만, 이 책에 그려진 삶은 미생으로 미화할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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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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