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강공, 먹힐까?

[주간 프레시안 뷰] 푸틴의 시리아 군사 개입, 방관하는 미국

지난 9월 30일 러시아군이 이슬람국가(IS) 등 시리아 반군에 대한 공습을 단행했습니다. 다음 날에는 1500km 떨어진 카스피해 연안에서 시리아 반군 기지에 대해 26발의 장거리 순항미사일 공격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함께 이란군과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시리아에서 반군 격퇴를 위한 지상 작전을 펼쳤습니다. 탈냉전 이후 러시아가 자국 영토 바깥에서 군사 작전을 펼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특히 미국이 군사 작전을 벌이는 지역에서 러시아가 별도의 군사행동을 벌이는 것은 초유의 일입니다. 이에 대해 메르켈 독일 총리는 '깊은 우려'를 표명했고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중동에서 미국과 러시아 간 전면전 가능성을 우려했습니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의 군사 행동은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을 뿐,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러시아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국과 러시아는 우발적 군사 충돌 방지를 위한 장치는 마련해 놓았다고 합니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미국이 자국의 군사 행동 지역에서 러시아의 군사 행동을 용인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그것은 곧 미국의 군사 패권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이번 사태는 서방 측에 매우 당혹스러운 것이며, 미국에게는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서방 측이 해결해야 할 시리아 내전 사태에 대해 러시아가 군사적 주도권을 잡았다는 것, 이를 통해 중동 지역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에 대해 미국과 서방이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입니다. 앞으로 시리아 내전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요.

시리아 내전 협상에 합의하지 못한 미국과 러시아

지난 9월 24일 <프레시안 뷰>에서 저는 9월 하순 유엔 총회를 통해 미국과 러시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등 관련 당사국 간에 시리아 내전 종식을 위한 국제적 합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습니다. (☞관련 기사 : 시리아 내전 종식 이끌 '푸틴의 한 수')

내전 격화에 따른 대규모 난민 유입으로 유럽이 골머리를 앓고 있고, 사우디 등 걸프 국가들은 예멘의 수니-시아파 간의 내전이 장기화되는 것을 원치 않으며 터키, 이집트 등 이웃 나라들도 아사드 정권 축출보다는 이슬람국가 격퇴를 더 시급한 과제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는 9월초 시리아에 군사력을 배치하면서 미국에 대해 협상에 의한 내전 종식을 압박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뉴욕에서 90분 간 열린 오바마-푸틴 정상회담에서 미-러 공조에 의한 국제 협상 노력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정상회담의 구체적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오바마는 협상의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았다며 푸틴의 국제 협상 제안에 호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자 푸틴은 28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현 국제 상황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하고 이틀 후 전격 공습에 나선 것입니다. 이에 대해 미국은 별다른 군사적 대응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 전투기가 3차례나 터키 영공을 침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9일 터키에 배치된 패트리어트 방공망을 철수시켰습니다. 러시아와의 군사 충돌을 피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5억 달러를 들여 5000명의 수니파 반군을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포기하고 시리아내 쿠르드 무장 세력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로이드 오스틴 미 중부군 사령관은 지난 9월 16일 상원 청문회에서 미군이 훈련시킨 반군 중 현재 시리아에서 활동 중인 숫자는 4~5명에 불과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니까 미국은 내전 종식 협상은 받아들이지 않고 변변한 군사적 대응책도 내놓지 못한 채 러시아 주도의 군사 개입을 방치하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유럽이나 중동 지역 국가들은 내심 협상에 의한 내전 종식을 바라고 있습니다. <슈피겔>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러시아, 이란 등이 포함된 종전 협상을 원하고 있습니다. 한편 지난 11일에는 사우디 국방장관이자 제2왕세자인 모하메드 빈 살만이 러시아 소치에서 푸틴을 만나 회담을 가졌습니다. 그의 방문은 지난 6월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이에 앞서 푸틴은 아랍에미레이트(UAE)의 모하메드 빈 자예드 왕세자와도 회담했습니다. 러시아 언론 보도에 따르면, 양국 관계 강화와 함께 시리아 내전 문제도 논의됐다고 합니다. 그동안 사우디는 시리아 내전 해결의 전제 조건으로 아사드 퇴진을 요구해 왔는데, 이러한 강경 태도에서 한 발 물러났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죠.

(☞관련 기사 : 2 powerful Gulf sheikhs talk Syria with Putin)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푸틴의 강공, 먹힐까

푸틴의 전략은 화전(和戰) 양면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 군의 공습과 이란 군 등의 지상 작전으로 반군을 무력화시키면서 미국에 대해 협상 재개를 압박하는 모양새입니다. 이러한 푸틴의 전략에 대한 서방의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립니다. 크림 반도 불법 점령과 우크라이나 동부 분리주의 세력에 대한 군사 지원에 이어 러시아의 대외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위험한 팽창주의라는 부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 시리아 내전을 단번에 종식시킬 일대 쾌거라는 찬사도 나옵니다. 전자와 관련해서는 다음 <슈피겔>의 기사를, 후자에 대해서는 미국의 한 비판적 지식인의 기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관련 기사 : Russia's Superpower Play: Putin Bets Big on Aggressive Syria Policy)
(☞관련 기사 : Putin’s Lightning War in Syria)

한편 미국의 외교 싱크탱크 포린폴리시인포커스의 존 페퍼 소장은 푸틴의 시리아 공습을 1960~70년대 미국의 베트남 공습에 빗대어 공습만으로는 시리아 내전을 종식시킬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관련 자료 : Is putin really as foolish as we are)

물론 공습만으로 반군을 격퇴할 수 없고, 따라서 내전 종식도 불가능합니다. 맞는 얘깁니다. 하지만 페퍼 소장은 미국과 러시아가 함께 내전 종식을 위해 협력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중동 지역 사정에 가장 정통한 영국 <인디펜던트> 패트릭 콕번 기자의 지적은 새겨들을 만합니다. 그는 "러시아의 시리아 개입을 환영해야 하는 이유"라는 기사를 통해 미국과 러시아 두 강대국이 함께 나설 때만 시리아 내전 종식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사우디, 터키, 이란 등 지역 국가들에게만 맡겨두어서는 각 국가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근본적 해결책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죠.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 두 초강대국이 지역분쟁을 방지했던 것처럼 두 강대국이 나서야 시리아 내전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관련 기사 : Why We Should Welcome Russia’s Entry Into Syrian War)

푸틴의 시리아 내전 개입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현재로서는 예단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러시아의 군사 개입이 일시적으로 성공하는 것처럼 보여도 단지 무력만으로 시리아 내전을 종식시킬 수는 없습니다. 최악의 경우, 러시아가 '제2의 아프간'이라는 수렁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결국 궁극적 해결은 평화적 협상에 의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열쇠는 미국이 갖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미국은 평화협상에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군사 개입이 성공을 거두든가, 아니면 유럽과 중동 지역 국가들의 압박이 있을 때 비로소 미국은 움직일 것으로 보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으로 테러 건수는 오히려 크게 늘어났다는 점입니다.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2001년 1882건에서 2014년에는 1만6818건으로 9배나 늘었다고 합니다. 테러와의 전쟁이 더 많은 테러를 불러온 것입니다. 무력만으로는 테러를 없앨 수 없다는 점이 드러난 셈입니다.

(☞관련 기사 : Terrorist attacks increased 9 times since 'War on Terror' declaration 1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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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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